[동네책방] 그날이오면_서울시 관악구 대학동

대학가 서점과 인문학 서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by 안철

우리 동네 서점인 '그날이오면'이 이사를 했습니다.

서림동(신림2동)에서 대학동(신림9동)으로 옮겨간 건데, 서림동으로 이사오기 바로 전 옆 건물로 돌아온 겁니다.

김동운 대표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아무래도 제일 처음 문을 열었던 장소가 이곳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돌고 돌아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이 잘된 일인가 싶기도 하면서도, 문을 닫지 않고 다시 대로변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꽤나 축하할 일이겠다 싶긴 합니다.



1. 대학가 서점의 의미


1996년에 동국대에 입학해서 2003년에 졸업했다.

충무로역에서 동국대 후문 쪽으로 걷다 보면, 녹두사거리라 부르던 조그만 교차로가 있었다. 그곳에 녹두서점이란 작은 책방이 있었는데, 녹두서점이 있어서 녹두사거리라 불리게 됐는지 녹두사거리에 차려진 서점이라 녹두서점이 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신간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을 종종 구입하곤 했는데, 지금도 자주 꺼내 보곤 하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권도 그곳에서 샀다. 구내서점도 있었지만, 녹두서점과 구색에서 꽤나 차이가 났다. 강원대나 한국외국어대와 마찬가지로, 구내서점은 거의 학교앞 문방구처럼 교재 위주로 책들을 갖췄더랬다.

지난 해 여름 동국대 창업보육센터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오랜만에 그 동네를 찾게 됐었다. 녹두서점은 보이지 않았다. 2011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DSC03671.jpg 2023년 7월까지 서림동에서 운영되었던 그날이오면. 간판에는 신영복 선생이 써준 글씨를 사용했다.



2. ‘그날이오면’의 의미


서울대 학생들에겐 대학동(구 신림9동)의 녹두거리와 그날이오면이 그런 의미었다고 한다.

아니 그 이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빈대떡집이었던 녹두집을 중심으로 서울대생의 뒷풀이골목으로 융성했던 녹두거리에서 그날이오면은 연락을 위한 메모판이 걸린 만남의 광장이기도 했고, 금서 취급 당했던 인문학서적을 구할 수 있는 지식의 오아시스였으며, 당대의 시대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세미나가 이루어지는 아고라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대선 전이었던 1997년, 서울 시내 3곳의 인문학서점 대표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고초를 겪은 3곳이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고려대 앞 ‘장백서점’, 성균관대 앞 ‘풀무질’이었다. 야심차게 대공사건으로 엮어보려던 경찰의 움직임이 꽤나 민망한 헛발질로 끝나버린 사건이기도 했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선 꽤나 공포스런 경험이었을 테다. 1994년쯤이 되면 시중 서점에서도 고등학생이 《공산당선언》을 한 권 사들고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었다. 1997년에도 ‘이적표현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공안당국에 의해 이뤄지면서, 다른 곳에서도 다 팔고 있었던 책을 가지고 시비가 걸렸으니 꽤나 낭패스러웠을 테다.


서울대를 다녀본 적도 없고, 신림동에서 살기 시작한 것도 30대에 들어서부터였으니, 나로서는 그날이오면에 대한 이런 소식들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집에서 관악중앙도서관으로 운동 삼아 걸어갈 때 주황색 간판이 보이는 작은 서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에 띄지 않게 됐다. 망해서 없어졌다 싶었다.

이해찬의 광장서적도 부도가 나서 사라진 마당에, 조그만 동네서점이야 오죽하겠나 싶었다.

2008그날이오면오마이뉴스.jpg 대학동(구 신림9동) 시절의 그날이오면.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그날이오면’에 대해 다시 주목하게 된 건, 지난해 출간된 이시바시 다케후미(石橋毅史)의 책 때문이었다. 유유출판사가 경악할 수준으로 제목을 오도한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원제는 本屋がアジアをつなぐ로, ‘책방지기들이 아시아를 잇는다’쯤이 될 수 있겠다.)에서 광주의 녹두서점, 그날이오면 그리고 풀무질을 다루고 있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구 신림9동 현 대학동에서 구 신림2동 현 서림동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됐으며, 과거에 그런 고초를 겪었다는 것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김동운, 유정희 부부가 운영하던 그날이오면은 현재 김동운 대표 혼자서 지키고 있다. 김 대표의 아내인 유정희 대표는 관악구 구의원을 거쳐서 서울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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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네서점과 바로대출제


‘그날이 오면’을 처음 찾았던 날은 작년 10월 2차 백신을 접종한 날이었다.

관악구에 있는 동네책방 두 곳에서는 최은영의 《밝은 밤》의 재고가 없어서, 지도를 검색하고 찾아가 보았다. 마침 한 권이 평대에 누워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심하게 좁은 책방에는 20대때의 나라면 눈이 돌아갈 만한 책들이 빼곡했다. 90년대 대학가 책방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책 제목을 이야기하면 책방지기가 귀신같이 책을 찾아내서 건내는, 그 아날로그 시스템이 적용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DSC03673.jpg 서림동 시절의 내부 모습


두 번째 방문부터는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 보고는 싶은데, 막상 내 돈 주고 사기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책은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도서관에 없는 신간인 경우는 희망도서로 신청해야 한다. 11월인데도 관악도서관의 희망도서 예산이 모두 소진되었으니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를 이용하란 안내에 따라서, 이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해 보게 됐다.

1인당 1회 5권, 1개월 10권까지 신청이 가능한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는 ‘그날이오면’에게는 꽤나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한다.

http://lib.gwanak.go.kr/menu/subpage_03/sub12.php


관악구는 2019년 6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전국 최초는 아니지만 서울시 최초인 건 사실이고, 전임 유종필 구청장 시절부터 확장해온 도서관 정책은 꽤나 틀이 잘 잡힌 모양이다. 2021년에는 행정안전부 지역혁신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시행되는 동네서점 바로대출제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이었다. 이용자는 많지 않으면서도 시스템 구축에 따른 비용이나 책방들의 업무 강도 증가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날이오면’ 김동운 대표에 따르면, 실제로 제도 도입 초반에 관악구 참여 서점들의 대표님들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김 대표가 앞장서서 설득하고 참여를 유도해서 지금은 꽤나 도움이 되는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고 전한다.

동네서점바로대출제 업무협약을 통해서 진행되는 사업이라서, 연초에 공고되는 절차에 따라 신청해야만 해당 서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지원대상의 가격은 다음과 같다.

가. 관악구 관내 중ㆍ소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서점

나. 관악구립도서관의 도서납품 조건에 맞게 도서정리 등 납품이 가능한 서점

다. 도서판매를 주종으로 하고, 서적을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매장일 것.

☞ 단행본을 미 취급하거나, 특수목적의 도서만 취급하는 서점은 제외 됨.

https://www.gfac.or.kr/html/notify/notify11_view.html?pk=1610698076170-fea45eff-04cb-4100-932b-6ca27bd75f7e&sub=0


처음 시작할 2019년에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했었으나, 그 문턱이 꽤나 낮아진 참이다. 한국서련에서 진행하는 ‘지역서점 인증제’에 따른 인증서점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라서 소규모 책방들도 도전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관악구의 사업형태가 기본형태로 인정된 분위기라서, 바로대출제를 시행하는 자치단체들의 경우에도 심하게 높은 허들을 적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도서납품을 노리고 사업자등록만 한 유령업체들에게는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서점”과 같은 물리적 제한 규정을 명확히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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