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새고서림_서울 관악구 조원동

1인 독립출판사의 독립출판물만 다루는 독립서점

by 안철

새고서림은 현재 영등포구 당산로1가로 옮겼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saego_seorim/



1.

관악구는 꽤나 큰 도시다. 인구만 해도 50만 명이다.

인구 100만을 넘는 기초자치단체는 겨우 4곳, 50만을 넘는 곳은 스무 곳 남짓이다. 그렇다 보니 드넓은 관악산(관악구의 거의 절반)을 끼고 있으면서도, 인구밀도는 전국 15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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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서울이란 메트로폴리스에 포섭되다 보니, 그냥 서울의 일부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마치 서울 사람들이 강원도 원주나 영월이나 태백이나 삼척을 그냥 강원도쯤으로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원주 옆이 영월이고, 영월 옆이 태백이고, 태백 옆이 삼척이라서 말이다. 그런데 원주사람에게 물어본다면, 태백이나 삼척 쪽에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하튼, 1962년에야 비로소 영등포구의 일부로 서울시에 편입된 이 산골동네는 1980년대까지도 도시 인프라는 빈약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땅장사 대상이었을 뿐, 밀려드는 철거민들과 도시빈민들에게 제대로 된 인프라가 제공될 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림픽을 목전에 둔 1980년대 중반부터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달동네가 밀리고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 난리는 60년대 지어진 주택들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테다.

이젠 어엿한 거대도시이지만, 관악구엔 법정동이 세 개밖에 없다.

남현동, 봉천동, 신림동.

이중에 신림동은 여러 개의 행정동으로 분리되어 있다. 과거에는 신림1동에서 신림13동까지로 분동했지만, 2008년에 11개로 재조정되며 이름을 바꾸었다. 과거 신림5동이 신림동의 이름을 잇고 있으며, 새고서림이 위치한 조원동은 신림8동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2.

구 신림8동 현 조원동에 자리잡은 신림종합시장은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1977년에서 1978년 사이에 만들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이 오래된 시장건물의 한 켠에 새고서림이 위치해 있다. 근처에 사는 것이 아니라면, 당최 발걸음이 닫기 어려운 위치다. 새고서림의 책방지기조차도 거기까지 찾아간 내 노력이 꽤나 놀라운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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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소개에 따르면, 다섯 평 남짓한 이 공간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서점을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출판 ‘새’벽 ‘고’양이의 ‘책’이 ‘숲’처럼 쌓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명했다는 책방이름에는 그리 부족한 공간은 아니다 싶다.

창가에는 다른 곳에서 나온 독립출판물(주로 가가77페이지에서 나온 책들이었다)이 놓여 있었고, 좌측에는 새벽고양이의 작업물들이 놓여 있었다. 문가쪽에도 이런저런 독립출판물의 책장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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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서가라고 보기에는 심하게 빈약했다.

하지만 자신의 1인출판사의 작업공간이자, 그곳에서 작업한 독립출판물을 취급한다는 기본 콘셉트를 생각한다면, 공간에 대한 위화감은 크게 낮아진다. 마치 수공예 장인이 자신의 조그만 공방 한켠에 매대를 만들어 놓고 판매도 곁들이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용도라면, 안 될 것도 없겠다 싶다.

패키징은 참 마음에 든다. 이염에 주의하라는 경고 문구가 새겨진 종이봉투의 세심한 배려(더 세심했다면 이염 걱정이 없었어야 하려나?)도 좋았지만, 꼼꼼하게 스티커로 실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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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출판사 새벽고양이의 프로젝트 메이지 시리즈의 하나인 무로우 사이세이(室生犀星)의 <쓸쓸한 물고기(寂しき魚)>를 사들고 나왔다. “기발하지만 쓸데없음”에 대한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대부분의 기발하지만 쓸데없는 상품들은 고객경험(CX)에 대한 고민이 전무한 상태, 그리하여 자기 생각 안에 갖힌 경우에 자주 나타나곤 한다. 이에 대한 고민은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1을 통해서 더욱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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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메이지도 마찬가지다.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근대문학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근대문학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근대문학의성립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Literature에 대한 역어로 文學이 성립하고 novel에 대한 역어로 小說이 성립됨에 있어서, 일본이란 완충지대의 역할, 특히나 메이지시대의 일본의 역할은 컸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의 문학이란 거의 걸음마 수준이었다. 한문에서 벗어나 일본어의 문어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했으며, 그리하여 일본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초기 작품들이 나오던 시기였다. 그런 연유로 일본문학의 벨에포크는 쇼와 연간으로 늦추어 잡을 수밖에 없고, 읽어볼 만한 일본근대문학이라면 쇼와 초기에 이르러서야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의 일본문학이라니... 아무리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로운 번역 작업을 하기 위함이라지만, 21세기 한국의 독자가 기다리는 시장에서는 당혹스러운 포지셔닝이 아닌가 싶다.

내 일본어능력은 빈약하다. 그저 히라가나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이지만, 문부과학성의 상용한자 2,136자 정도는 알고 있어서 일본어의 내용 파악에 큰 어려움은 없다. 어설픈 일본어 실력으로도 번역문장의 원문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때가 종종 있다. 유려한 번역 문체를 접할 때면 원문에서는 어떻게 쓰여졌을까를 더더욱 궁금해한다.

일본문학 번역의 어려운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양국에서 공용되는 한자어들이 참 많다 보니, 간혹 일본에서만 쓰이는 한자어들이나 한국에서는 이미 순화어로 대체된 한자어들이 갑툭튀하는 경우들이 있다. 거기에 미묘한 어휘의 어감을 양국의 언어로 다 이해해야만 제대로 된 번역이 이루어질 수가 있다. 그런 점들이 문학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 부르는 이유가 될 것이며, 언어구조의 유사성까지 보이는 일본어 문학을 번역하는 것이 더욱 까다로운 이유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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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아오조라분코(青空文庫, 저작권이 소멸된 일본문학의 텍스트를 수집해서 공개하는 공공 프로젝트)에서 찾아본 무로우 사이세이의 <寂しき魚>가 맛깔나게 잘 번역되었는가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특히나 무로우라는 이름이 그냥 무로라고 표기된 것만으로도 뒷목이 당겨온다. 외래어표기업에 따른 일본어 표기에서 장모음은 표기하지 않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무로우의 이름은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무로(室)와 우(生)라는 각자 다른 문자의 결합이라서 말이다. 다만 메이지시대에 쓰였던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에는 장모음 ō가 존재한다. 그 결과, 무로우 사이세이의 로마자 표기는 헵번식 표기의 오류로 Murō Saisei가 됐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Muro Saisei가 됐다. 우리 어문규정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내 이름은 An Cheol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내 여권의 이름은 40년 전부터 써왔던 Ahn Chul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 간극이 존재하기에 표기 오류를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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