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개문발차한 자칭 '아트북 플랫폼'을 다녀오다.
구로구 고척동의 고척스카이돔에 자리 잡은 서울아트책보고를 다녀왔다.
<서울형책방 성과보고회>를 핑계로 사전 개방중인 이곳을 다녀왔는데, 앞으로 갈 길이 멀어보였다. 이런 식이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다.
'오세훈이 싸지른 4대 똥'으로 서울시 신청사, DDP, 세빛섬, 고척스카이돔을 꼽는다. 공공건축물이 가지 말아야 할 길들을 아주 정석대로 밟아간 이 네 건축물 중에서 현재 사면을 받은 곳은 DDP 한 곳 뿐이다. 야구 비시즌의 고척스카이돔은 지독스러울 정도로 괴괴했다.
서울형책방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궁금했지만, 이번에는 ‘아트책’이란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고 공간을 구성하는지도 사뭇 궁금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서는 “그림책, 팝업북, 사진집, 일러스트북, 미술작품집 등 시각적 요소를 가진 예술 책으로부터 책 자체가 예술작품이 되는 책, 그리고 아티스트의 책까지”를 ‘아트책’의 개념으로 포섭하고 있다. 여기서 출발한 공간의 개념은 “아트북을 기반으로 전시, 활동, 체험프로그램 등이 가능한 아트북 플랫폼”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 보면 이런 선언과는 사뭇 다른 공간을 만나게 된다. 당혹스러움을 넘어 낭패감이 느껴진다.
작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다녀오고 나서 쓴 리뷰에서 아트북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트북의 개념은 ‘아트에 관한 책’이었다. 미술관에 가면 흔히 접할 수 있는 미술(art)에 관한 책들 말이다. 미술비평서, 미술이론서, 작품도록 같은 형태들로 출간되며, 'art book store'란 간판을 달고 있는 부속 서점에서 주로 팔았다. MMCA서울의 미술책방이나 SEMA의 The Reference x SeMA가 art book이라며 팔고 있는 책들은 거의 다가 그렇다.
그런데 책이란 미디어나 책이란 물성을 대상으로 한 미술도 존재한다. 이것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아트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영어로는 Artist's book이나 Book art라고도 한다.
여기에 전통적인 북디자인을 벗어난 책도 아트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제도화된 판형을 벗어나고, 텍스트가 우위였던 책에 이미지의 지위를 역전시킨 형태의 전도적 북디자인 역시 아트북이란 이름으로 포섭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서울아트책보고의 ‘아트책’은 건축이나 영화와 같은 시각예술에 관한 비평에까지 너무 폭넓게 책을 그러모으고 있어서, 도대체 개념이란 걸 고려하고 수집하고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한히 확장하고 있었다.
‘독립출판’에 대한 개념을 심기 위해 서울책보고를 찾았다가, 되레 욕이 나올 정도로 무개념의 혼돈을 겪었던 때가 반복되고 있었다. 개념의 기원은 은폐 혹은 파악하지 못한 채로 ‘자명한 그 무엇’으로 정의definition의 책무를 타자에게 전가하는 근대적 행태를 또 만나는 듯하다.
입점서점 11곳이 “아트북 전문서점 11곳”으로 호명할 수 있는 대상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해당 서점의 서가에서 본 적 없는 책들이 빼곡이 꽂혀있는 서가를 바라보다 보면, 도대체 내가 어디에 와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아무리 ‘예술 책’이라는 개념으로 막되먹게 확장했다고 해도, 이런 책들도 책장에 우겨 넣을 수 있을까 싶은 경우도 많았다. 책이란 것이 문자를 정착시키는 미디어이다 보니, 문자로 이루어지는 예술 그러니까 문학literature과 교직하게 되는 숱한 책들이 서가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시각적인 것’만 묻으면 죄다 그러모을 태세다.
고척스카이돔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접근성도 굉장히 떨어져서, 오로지 서울아트책보고를 들를 목적이 아니라면 방문할 이유가 없는 곳이다. 인스타그래머블한 핫스팟도 아닌 곳에 대중적이지도 않은 ‘아트북 플랫폼’을 만들어낸 만용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책보고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서가를 구성하고 있어서, 딱히 중고서적을 구입하기 위해서 들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도, 기념품 삼아 읽을 리 없는 책을 사들고 올 수도 있다. 심지어 2호선 잠실나루역과의 연결성이 몹시 높고, 인도교가 놓여진 잠실철교와 한강공원으로의 연결성도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책보고 일방문객수는 5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안양천변 돔구장에 덩그러이 놓여진 이 ‘독고다이’는 얼마나 힘을 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열람실(자료보고)에서 두 권의 책을 찾아 보았으나 찾아낼 수가 없었다. 입구의 데스크에 앉아 있던 사서로 보이는 직원에게 두 권의 서지 정보 프린트를 건네며 찾아 달라고 해봤지만, 직원마저도 찾아낼 수 없었다. “아직 정리가 끝난 것이 아니라서 죄송하다”는 답변을 들었으나, 서가를 정리하는 방식을 보면서 아무래도 영영 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도서관에서는 수서 작업을 하면서 RFID칩을 심어 넣는다. 도난방지 기능이 가장 크고, 엉뚱한 서가에 꽂혀서 유실된 도서를 찾아내는 데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아예 도난되었거나 망실된 책이 아니라면, 도서관 이용자의 요청이 있은 지 1~2일 내에 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여간 손이 가는 작업이 아니란 것이 문제다.
서울아트책보고 열실에서는 주제-언어-일련번호로 구성된 3체계의 분류번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어로 씌여진 사진책이라면 PI K000식으로 표시하고, 독일어로 된 사진책이라면 PI G000으로 분류번호가 매겨진다. 하지만 서가에 배열하는 것은 한국어 책을 우선 배열한다. 중간중간 책의 표지가 보이도록 놓기도 했는데, 이럴 경우에는 일련번호의 순서를 뛰어넘는다. 매번 RFID 스캐너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면 어디에 책이 꽂혀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공공시설은 경제적인 가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치적 고려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렇게 들어선 고척스카이돔이기도 하거니와, 그 천덕꾸러기 시설을 좀 더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서울 남서부에 그만한 공공문화시설 하나쯤 더하는 것도 분명 의미는 있다.
그런데 지역사회에서라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명확한’ 성격의 시설이 되어야 할 필요는 있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도대체 정체를 확정할 수 없는 지금의 서울아트북보고로는 서울시민은커녕 구로구민에게조차 자리잡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