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 2022. "비거니즘, 도서정가제 그리고 단일 쟁점 정치"
피터 싱어의 『왜 비건인가?』를 읽으면서, 몇 편의 논문을 살펴봐야만 했다.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 논문을 몇 편 읽어 본 이후에야 그의 책이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비거니즘에 대한 첫번째 접근치고는 최악의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첫 삽을 너무 거창하게 떴다는 낭패감은 언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특히나 '식습관 그 이상 more than a diet'으로 진중하게 고민해 볼 문제이기도 했다. 2020년 영국 노리치 노동법원은 윤리적 비거니즘은 철학적 신념으로 종교적 신념과 마찬가지로 직장 내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비거니즘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원제목인 <Veganism: Politics, Practice, and Theory>를 확인하고서야 책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에서 드러나듯이, 비거니즘의 개론서라기보다는 비거니즘을 둘러싼 학제간 비평을 다루는 메타비평서였다. 이번에는 중간을 건너 뛰고, 심화과정으로 들어간 것 같아 헛헛함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훌륭한 저작은 즐거운 독서 경험을 제공해주었다.
비거니즘 메타비평적인 이 문헌은 유사한 억압 구조의 담론(특히 페미니즘 담론)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평적 공격의 저열한 의도를 잘 드러내 주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나타나는 분열 양상(흔히 포스트-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자기전복적 이데올로기)도 잘 포착하고 무엇은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날카롭게 분석해주었다.
페미니즘은 말할 것도 없이, 비거니즘에 대해서도 항상 백안시했던 입장(마치 1장의 서두에 던져진 질문을 던지는 바로 그 사람들의 입장)에 서 있었던 나로서는 그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다만 비거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중간 단계를 생략한 것 같아 찜찜하긴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살펴봐야 할 것들이 알차게 조명되고 있어서 든든한 느낌이 훨씬 컸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와는 정반대의 경우로, 꽤나 즐거운 독서가 됐다.
무엇보다 단일 쟁점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단일 쟁점 정치가 보이게 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배제’와 ‘독선’이다. 태생적으로 명확한 ‘선’을 긋게 되면서, 그 선을 경계로 밖에 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또한 선 안쪽의 ‘우리’에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단순화한 행동강령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 ‘독트린’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면서 ‘믿음’으로 격상하기도 한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면 꽤나 멍청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는 그런 ‘딴지’가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때론 ‘신성모독’으로까지 승화한다. 그런 반응을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숨이 턱 막힌다.
그런 면에서 에바 하이파 지로의 책은 허경의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만큼의 근본적인 인사이트를 변화시켜주었다. 언제나 ‘나는 맞고 너는 틀릴’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 백 명이 봤을 때엔 내가 틀리고 너가 맞을지라도, 언제나 나로서는 내가 맞아야만 하기 때문인데, 그게 인간이 사유를 통해 인식을 유지해 나아가는 방식이라서 그렇다. 다만 좀 더 완성된 인간이라면 내가 모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회의적 태도를 갖추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 아침에 확인한 인스타그램 피드들에는 전민일보에 기고한 이지선 ‘잘익은언어들’ 대표의 칼럼이 제법 올라 왔다. 다소 고루한 글이었다. 에바 하이파 지로의 책에서 끊임없이 지적되는 ‘단일 쟁점 정치’의 맹점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그리하여 30년 전부터 확립된 독트린이 얼마나 무용한지 제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복마전의 책 생태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오히려 도서정가제의 무용성이 쉽게 드러난다. 이게 그저 도서정가제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일본이 강력한 자율규제로 도서정가제를 유지하고 있어도 ‘마치노혼야’가 3분지1로 줄어드는 걸 막을 수 없었던 것이나, 프랑스가 랑법을 통해 40년간 도서정가제를 시행해 왔으나 ‘유통’이란 괴물에게 번번히 뚫리고 있다는 것이나, 120년 전통의 독일 도서정가제의 유통 질서도 독서 인구 감소와 서점 감소의 함정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나, 같은 맥락에서 문제점을 해결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관련 헌법 소원 청구인측 변호사의 주장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플랫폼 이코노미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유통 구조의 변화로 인해, 책 생태계에 등장한 새로운 공룡들에게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도서정가제’라는 단일 쟁점 정치가 눈멀게 하고 있다.
출판 공룡들과 아마존에 의해 박살 났던 미국의 책 생태계가 어느새 또 복원되는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가볍게 일축되기도 한다.
또한 “도서정가제가 없이는 할인을 해도 손해 보지 않을 대형 출판사, 대형 온라인 서점만이 살아남는 구조”라는 나이브한 사고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완전 도서정가제를 시행해도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룩한 공룡들은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최근 무료 배송 정책과 맞물린 도서가격과 관련된 논란을 살펴보면, 이제 ‘책값을 정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가 있는지 명확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도서정가제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 ‘당의정’에 불과한 상태로 몰리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교보문고의 BM이 도서 도매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세미나에서 접했던 교보문고의 ‘선진적인’ 도매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 교보가 작정하고 출판생태계를 독점하자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돈 안 되는 오프라인 대형서점을 굳이 ‘1년에 하나씩 출점’하는 것으로 고민할 필요 없이, 유통을 먹어버리면 된다는 비즈니스 마인드에 기겁했다.
1년 전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마지막 피드에 잔뜩 화가 나서 댓글을 단 적이 있었다. 분명 다양다기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돌출하고 있는데, 억지춘향이 격으로 ‘어쨌든 결론은 버킹검...이 아니라 도서정가제’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각국의 도서정가제를 설명하는 피드에서는 드러내고 싶은 이야기만 드러내고 숨기고 싶은 것은 슬쩍 뭉개는 방식으로 기술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유효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단일 쟁점 정치’의 프로파간다가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 동의해주기엔 내 머리가 너무 굵어진 탓이 컸지만, 그렇다고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한 것도 아니라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대안 없이 딴지만 거는 반동분자’는 어디에서고 필요 없으니 말이다.
완전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현실적 이해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즉 해결이 절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미화. 『동네책방 생존탐구』. 서울:혜화1117. 2020.
출판평론가 한미화는 그의 책에서 한 챕터를 할애해 동네책방의 도서 유통 구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른바 ‘공급율’이라 부르는 도매가의 문제를 집어냈다. 그렇다 보니 그 다음 챕터의 제목은 ‘피할 수 없는 이야기, 도서정가제’가 됐고, 그 시작은 바로 위의 발문으로 시작됐다. 도서정가제를 ‘동네책방만을 위한 아전인수 논리’로 만들어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해진다.
‘현실적 이해 관계’의 복잡하고 중요한 측면이 바로 유통의 측면에서 ‘도매의 독과점’이다. 이미 네이버와 쿠팡에 의해 과점이 이루어진 전자상거래에서 유통 플랫폼의 과도한 권력은 쉽게 노출되고 있다. 가격을 결정하는 것조차도 그들에게 달렸다. 플랫폼 노동을 통한 긱이코노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공정거래법의 저 너머에서 아주 새롭고 몹시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철 지난 단일 쟁점 정치의 구호로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입맛이 개운치 않은 글을 정리하고 나니, 오전이 다 지나갔다. 허탈하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의 문제와 ‘이 와중에 겨우 이따위 글이나 쓰고 앉았나’라는 글 자체에 대한 불만족이 겹쳤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같은 문제를 두고 계속해서 고민해 보기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디딤돌을 내어놓을 필요는 있다. 그 디딤돌을 박아 넣은 것쯤으로 만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