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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r 17. 2023

동네책방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

또는 동네책방이 사진에 찍힌다는 것에 대한 고민들.

 경의선책거리에서 열린 최재훈의 사진전 <동네책방기행>에 다녀왔습니다.     

 두 가지가 궁금했습니다.     


1.

 첫째로는 포토그래퍼가 동네책방을 찾아가서 '무엇을 찍을 수 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인상적인 파사드, 특히나 야간에는 실내 조명 속의 인물이 파사드에 녹아들면서 꽤나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특히나 잘 지은 '집'일수록 파사드 사진은 예쁘게 잘 뽑히는 편입니다. 다소 정적이고 심심한 구도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모두다 똑같은 구도의 사진이 자주 올라오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오브젝트가 됩니다. 서점이라고 다르지 않더군요.

 그 다음으로는 그 장소의 아이덴티티가 압축되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장소적 맥락 속에서 자연스레 풍경이 녹아드는 인물들이 프레임 내에 들어가면 썩 맘에 드는 사진이 나오곤 합니다. 역시 그런 공간들은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점에서 꽤나 비슷한 이미지가 중첩되는 경향이 있지만, 마찬가지로 포기하기 힘든 피사체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촬영자의 개인 감성에 호응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프레임 속에 프레임이 되는 창호가 가장 흔한 감성적 요소가 되곤 합니다. 그에 못지 않게 창호를 관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도 선호도가 높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경우에도 비슷한 사진을 자주 보게 됩니다만, 가끔씩은 "어, 거기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며 다시금 눈여겨 보게 되는 사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사진을 동네책방에서 찍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그럴듯한 파사드가 나오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파사드가 나오더라도 그럴듯하지 못한 곳도 많습니다. 실내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책방 역시 자영업인지라, 한정된 공간에서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내 풍경의 스테레오타입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서가와 좁은 통로와 같은 클리셰는 이제 찾기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전시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볼 수 있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를 하고 찾아가 봤습니다만, 역시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컸습니다.

 

2.

둘째로는 그 반대 방향에서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동네책방은 내객에게 어떤 공간을 제공해야 할지, 그리하여 ‘어떻게 찍혀야 할지’에 대한 고민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어서, 치솟는 필름값으로 인해 셔터를 누를 수 있는 피사체를 엄선하게 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찍지 않을 수 없는 피사체’를 발견하지 않으면 필름카메라는 좀체 가방 밖으로 나오질 못합니다. 그저 스케치용 똑딱이만으로 대충 찍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 관악구 '새고서림'을 찾았던 겨울밤에 파사드 사진을 찍으면서 '눈발이 날리면 더할 나위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울 중구 '소요서가'를 들렀던 가을 낮에는 '밤이 되면 진짜 좋은 사진이 나오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겨울 초입에 들렀던 전북 군산의 '마리서사'에서는 덧문 안쪽으로 비켜들어오는 사양에 매료되어 셔터를 누른 적도 있습니다. 그날 사서 장전한 필름이 제대로 물리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러서 사진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아예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았던 가을 초입 해질녘의 속초 동아서점의 경우도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누가 어떻게 찍어도 대충 뽀대나는' 사진이 나올 만한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파사드'라는 점과 '특정 시점'이란 점입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콘트라스트 속에서, 맨 얼굴이 아닌 '분식된' 파사드를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원론적으로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고, 책을 사는데 굳이 사진을 찍어야 할 순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예쁘게 사진이 찍혀야 할 공간이 될 필요도 딱히 없습니다. 파리의 부키니스트나 1950년대 명동 헌책방처럼, 그 기능에만 충실해도 안 될 건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 찍지 마세요'라는 책방들의 입장이 못마땅하지만, 아예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서 찍을 생각조차 안 하게 되었습니다. 꼭 벤치마킹해 볼만한 점이 있는 책방이라면, 책방지기에게 양해를 구해서 똑딱이 스케치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의 소비사회에서는 재화를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소비감각이 끝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소비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이상한 욕망이 드러난 시대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올리지도 않을 사진을 열심히 찍곤 합니다. 휘발성 강한 기억을 보전하기 위한 보조도구로 사진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진이라도 남겨놓으면 나중에 다시 보면서 '경험을 반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간단한 메모 정도로밖에 할 수 없었던 경험의 기록과 반추가 스마트폰이란 문명의 이기 덕분에 사진이라는 엄청난 정보집적력의 미디어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공간에 대한 경험'을 반추한다는 점에서 포토제닉한 공간은 몹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각 책방에 3장의 사진이 전시됐습니다. 파사드, 실내 스케치, 특정씬 정도 루틴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겨우 그 3장의 이미지를 완전히 차별성 있게 구축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3.

 경주에서 동네책방을 하고 있는 양상규의 책,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백도씨, 2020)에서 '포토제닉한 공간'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시인선 장시 선반을 실내 포토존이라 생각했다면, 실외 포토존은 단연코 버스 정류장 콘셉트의 주황색 의자다. 기실 이 의자가 어서어서를 꾸미는 데 든 비용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실내처럼 실외 공간에도 레트로한 느낌을 주는 오브제를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의자가 떠올랐다. - 59쪽
사진만 찍는 손님도 환영하고, 포토존을 고민하여 조성하는 나였지만 책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다른 손님들을 방해하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는것이 철칙이었다. 더 이상 공유 화보의 패러디 사진을 찍는 장소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 110쪽

 마찬가지 이유로 많은 책방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를 몹시 저어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은 아닙니다. 한 권 들여놓고 그걸 팔아야 하는 입장의 동네책방에서는 그 상품을 훼손할 수 있는 '촬영행위'에 대해 예민해질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책을 들여다 놓고, 그 책을 소개하기 위해 어떤 디스플레이를 하는지도 '영업비밀(보통 북큐레이션에 대한 지적재산권이라고 주장하는데, 법적으로는 무의미한 주장으로 오히려 부정경쟁방지법 상 영업비밀이라 주장하는 것이 법적 보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에 해당한다면서 극도로 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SNS를 통해 홍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없진 않지만, '사진만 찍는 손님 아닌 손님'들은 사양하고 싶은 책방지기들도 제법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떻게 찍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카메라를 꺼내드는 내객들이 불편해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다보니 "책을 구매한 뒤에야 실내공간 촬영이 가능하다"는 이상한 룰을 만들어 강요하는 책방도 생기고, 그 결과 쓸데없는 감정싸움이 인터넷 공간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정성스레 꾸민 공간을 꽁꽁 싸매서 사진 안 찍히게 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 될 텐데, 아예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 보니, '책방연희'의 책방지기 구선아가 쓴 책, 『퇴근 후 동네책방』에서 제안한 동네책방 사용안내서(인스타그램 태그 #동네책방사용설명서를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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