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덱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살펴본 책
애머런스 보서크 저/ 노승역 역. 서울:마티. 2019.
Amaranth Borsuk의 책 원제는 아주 단순한데, 그냥 《The Book》이다. 주저리주저리 길게 서술하지 않는다.
제목은 중요하다. 영미 출판계에서는 그 책의 정체성이 설명될 수 있는 아주 간결한 제목을 선호하는 반면, 언제부턴가 국내 출판계는 서술형의 제목을 선호하는 일본 출판계에 동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키워드 중심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책을 찾는 일반적인 고객 경험(consumer experience)이 출판산업에 피드백을 준 것이리라 생각된다. 다만 번역서의 서술형 제목들이 텍스트가 제공하는 정보의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 될 터이나, 간혹 그 경계를 아득히 넘어버리는 경우가 잦은 편이라서 꽤나 문제가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과거였고, 현재이며, 미래에 될 것’에 대해 체계적으로 풀어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구성도 그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문제는 코덱스라는 물성에 점착된 ‘책’의 정체성은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에 그리 깔끔하게 3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서크는 사물로서의 책(the book as object), 내용으로서의 책(the book as content), 아이디어로서의 책(the book as idea), 인터페이스로서의 책(the book as interface)으로 4가지 시선으로 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았다. 그래서 내용과 제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꽤나 불편한 제목이 되고 말았다.
지금 전 세계인이 책이라고 부른 사물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구에서는 Beechtree tablet에서 파생된 어원을 통해 book, buch, boek와 같은 형태의 기표를 가지거나, 남구에서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libro, livre와 같은 기표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형태적 기의는 코덱스(codex)라 불리는 일반적인 사물(object)의 형태를 지닌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어원의 문제를 좀 잘 설명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은 그 점이 좀 부족하다. 로스 킹의 『피렌체 서점 이야기』에서 그리스어 비블리온, 라틴어 리베르, 페르가메나, 벨룸, 파기나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사전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겪은 뒤라서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조금은 띄엄뜨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93쪽의 삽화를 통해 완벽하게 설명되는 코덱스의 형태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로스 킹의 책을 통해 충분히 살펴본 내용들이 마찬가지로 띄엄띄엄 설명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책에 관한 입문서로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개론서로서는 몹시 불충분하다.
12쪽
우리는 덜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읽을 뿐이다. 인간이 언어와 또한 글과 교류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휴대용 독서 수단이 필요하다. 책이 우리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의 뒤표지에도 선언적으로 표시된 이 문장에는 꽤나 동감하고 있는 편이다. 책을 처음 샀을 때 스키밍을 할 때도 그랬지만, 다른 글들을 쓰면서도 이 문장은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읽고 있지만, 그게 코덱스의 형태를 띠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코덱스의 형태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전달이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도 가능해졌기 때문에 더더욱 코덱스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65쪽
책을 사슬로 고정하는 관행은 18세기 내내 이어졌으며 문화적·종교적 삶에서 코덱스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상징했다. 책 한 권 한 권은 힘겹게 만든 유일무이한 물건이었으며 소수의 독자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동아대백과사전이나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정도였다. 일반 가정에서 이 사전의 전질을 들여놓는 경우는 좀체 없었기 때문에 공공도서관이라도 찾아가야만 펼쳐볼 수 있었다. 그 공공도서관의 숫자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시단위쯤이면 시립도서관과 교육청의 공립도서관이 각각 한 군데씩 운영되었고, 군 단위가 되면 군립도서관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저 읍내 교육청 공립도서관이 유일한 도서관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폐가식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사전 등을 열람할 수 있는 ‘정기간행물실’은 늘 붐볐다. 자주 들춰보게 되는 사전들은 열람대에 고정되어 있는 경우도 흔했다.
108쪽
인쇄기가 금세 필사본 생산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상상하지 않도록, 필사본이 르네상스 시대에도 구텐베르크 이후로도 400년간 널리 쓰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적사가 로제 샤르티에 말마따나 필사본은 몇 가지 중요한 이점–이를테면 검열을 받지 않았고 제작비가 저렴했으며 교정할 수 있었다-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유통되었다.
하지만 불과 40년 만에 코덱스가 처한 환경은 엄청나게 변해버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코덱스의 물성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19세기까지도 필사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변화해서 코덱스의 물성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인터넷서점의 등장과 전자잉크의 발명 그리하여 전자책과 그 단말기들의 등장으로 인해 촉발된 “종이책의 종말”이란 예언은 20년이 넘도록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될 의문이 아닐까 싶다.
217쪽
우리는 코덱스를 손에 들 때마다 신체적이고 체화된 상호 작용의 역사, 이 책을 어떻게 인식하고 다뤄야 할지 우리에게 가르친 역사에 무의식적으로 의지한다. 코덱스가 이토록 인기를 얻은 것은 휴대할 수 있고 제작 비용이 낮고 평균적 인체에 적합한 물리적 도구로 쓰임새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코덱스의 디자인은 물체 표면에 내려놓고나 높이 들어 올리거나 얼굴에서 30~60센티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텍스트나 이미지를 보거나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기에 알맞다. 흥미로운 구절을 찜해둔 채 다른 구절을 들춰 보려고 페이지 사이에 손가락이나 서표를 끼워둘 수도 있다. 저자나 나중에 이 책을 읽을 독자나 미래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여백에 메모를 남길 수도 있다. 책은 우리에게 적합하고 우리는 책에 적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북을 중심으로 기술된 제3장 아이디어로서의 책은 전반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논의가 지속된다. 북아트 또는 아티스트북이라는 개념에 대해, 출판문화계나 미술계나 어느 쪽이 이렇다 하게 연구를 완결지은 것이 아니라서 말이다. 여기에 독립출판의 설익은 개념이 참전하게 되면, 피아식별이 안 되는 전선의 혼재가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끔찍한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면 책을 읽어도 독자의 이해는 ‘어둠의 다크니스’로 빠질 수밖에 없다. 늘 그렇지만, 설익은 밥은 쉬이 소화될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전자책을 중심으로 기술된 제4장 인터페이스로서의 책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전자잉크를 중심으로 한 전자책 단말기의 시대는 빠르게 저물고 있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와 같은 범용성 높은 휴대용 디바이스로 미디어가 전환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고객경험(CX) 자체가 아예 다른 곳에서 형성되고 있는데, 여전히 30년 전의 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