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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n 15. 2023

'오정희 보이콧'에 대한 단상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오정희에 대한 보이콧을 바라보며

1.

 내가 기억하는 소설가 오정희의 첫인상은 그저 고3 아들 때문에 쩔쩔매는 아줌마였다.  야간자율학습 전에 아들이 먹어야 할 도시락을 전해주기 위해, 같은 반 아이에게 아들 도시락을 건네달라며 어쩔 줄 몰라하던 동네 아주머니였을 뿐이었다. 

 한 달 뒤쯤에서야 그 아줌마가 소설가 오정희라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누나의 책장에 소설집이 꽂혀 있는 꽤 대단한 작가라는 걸 말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했을 때가 1999년이었다. 전공기초수업에서 오정희의 소설을 꽤나 높게 평가했던 은사의 발언에 꽤나 놀라기도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그때 처음으로 오정희의 소설을 읽었었는데, 도저히 그 아줌마와는 매치가 되지 않았었다.



2. 

 아침에 일어나 인스타그램의 피드들을 살피다 보니, 서울국제도서전과 관련된 피드로 이런 기사가 링크됐다.

 도대체 뭔 소리인가 검색을 해보니, 이것 참 낭패스럽기 그지없다.

 "하여튼 이놈의 빨갱이 새끼들, 무슨 꼬투리 하나 잡아서 사람 조리돌림 하는 건 여전하네~"라며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가, "아이고, 이 할머니도 도대체 생각이란 걸 하고 하시나?"란 반응으로 변하고 말았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힘은 겁나 세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15인 이내로 위원을 구성하는데, 책임이 막중하다. 문인들 중에서도 한 자리 정도밖에는 들어갈 수 없다. 책임감이 참 막중하다.

 소설가 오정희는 원로 문인으로 꽤나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나 '여성 문학'의 계보에서는 몹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런 양반이 문예위원 시절에 꽤 큰 사고를 치신 게다.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06141124001


3.

 학창 시절 서정주의 친일과 친군부 행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을 국어학 은사에게 한 적이 있었다. "미당은 시밖에 모르시던 천상 문인"이라며 답을 얼버무리고 마셨던지라, 꽤나 집요하게 재평가를 해야 하지 않나고 술김에 덤벼보기도 했었다. 

 기사를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는 "노인네가 명예직으로 들어간 자리에서 뭘 모르고 거수기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모욕을 주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20여 년 전의 은사와 몹시 유사한 태도로 말이다. 스스로에게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사안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문인'은 그저 '순수하게 예술하는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써온 글은 그 자신에게 귀속되며, 그리하여 그 자신에게 귀속된 글에 의해 작가로서의 정체를 새롭게 생겨난다. 문예위원으로 위촉된 오정희는 자연인 오정희가 아니라, 소설가 오정희로 작동하길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소설가 오정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70줄을 바라보는 동네 할머니인 자연인 오정희가 나와 앉았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가장 먼저 발언하고, 가장 책임감 있는 발언을 해주길 기대했던 위원이 오정희가 됐을 테다.

 하지만 2017년 6월부터 11월까지 직무대행을 했던 오정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블랙리스트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됐던 박명진 6대 위원장이 사퇴한 뒤로 공석이던 자리를 대행했지만, 그 직무대행을 꽤나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근예술위원 중에 최고 연장자였기 때문에 직무대행을 권유받았다는 것이다.

 문예위가 전라도 나주에 있고, 오정희는 오랫동안 강원도 춘천에 있었기 때문에 상근 업무의 부담이 컸을 수는 있다. 그래서 비상근으로 직무대행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최소한의 대행'만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문예위가 제대로 된 블랙리스트 사태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2017년 11월 6대 황현산 위원장의 취임 이후에서나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명의의 사과문이 처음으로 나온 것도 결국은 2018년 5월이 되고서야 가능했던 이유일 테다.

<이미지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5881.html



4. 

 오정희 본인의 입장에선 지금과 같은 치욕이 꽤나 부당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추천받아 위촉된 여러 자리 중에 하나였던 비상근인 문예위원으로 뭘 그리 잘못한 게 있었나 억울할 수도 있게다. 

 그런데 마치 모래시계를 뒤집듯이 뒤집어 놓고 보면, 여러 자리를 추천받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문인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그 자리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는 반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할 책무가 있다. 

 아들의 저녁 도시락을 직접 챙겨서 서울대에 보내고, 나중에는 그 학교의 교수로 만들어낸, 아들 잘 키운 동네 할머니인 것만이 아니라서 말이다.



#오정희 #서울국제도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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