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책이 '그 책방'에 있을 거란 기대감
동네책방에서 책 한 권을 사들고 왔다.
내가 사는 서울 관악구는 주거지역 14.62㎢에 48만 명이 모여 산다.
사람들은 관악구라고 하면 봉천동과 신림동이란 동명밖에 알지 못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관악구의 법정동은 신림동과 봉천동 그리고 남현동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작구가 관악구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사당동의 일부가 조금 관악구에 남게 됐는데, 그곳이 남현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다 보니 신림동은 한때 13개의 행정동으로 나뉘었는데, 2008년 신림(숫자)동의 행정동명을 고유명사로 바꾸면서 11개로 줄었다. 봉천동도 마찬가지로 11개의 행정동이 현재는 9개로 줄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0.98에 23,272㎢명이 살고 있는 구 신림2동, 현 서림동에 살고 있다.
우리 동네, 그러니까 서림동에는 두 곳의 서점이 있다. ‘일등서점’과 ‘그날이오면’으로 관악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도서관의 ‘동네서점 바로대출제’가 시행중인 서점들이다. 나는 주로 ‘그날이오면’을 이용하는데, 종종 구하기 쉽지 않은 책을 바로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하기 쉽지 않은 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수요가 무척 적은 책’이고 다른 하나는 ‘절판된 책’이다. 수요가 적은 책은 규모가 작은 동네서점이 입고하기 힘들고, 절판된 책은 입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유를 모두 갖춘 책도 있어서, 이런 책은 찾기 쉽지 않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과 같은 책이 그렇다. 교보문고에서 검색되는 총 3권의 책 중에서 2권이 절판되어 재고가 없다. 시진의 단 1종만이 아직까지 명줄을 부여잡고 교보문고 매장에 1권씩 꽂혀 있는 형국이다.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된 발터 벤야민 선집에도 1권 섞여 있는데, 이 선집이 절판되었다.
‘그날이오면’에서는 선집 1질이 놓여 있었는데, 이 책 한 권만이 팔렸다. 난처하단 표정을 보였던 김동운 대표는 이내 “이걸 말고 딱 그것만 편집해서 나온 책이 있을 겁니다.”라는 말을 건네고 서가 깊숙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더니 집어 들고 나온 책이 바로 사진 속의 책이다.
이 맛에 ‘그날이오면’을 찾게 된다.
사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길지 않은 논문이다. 그래서 한 권 분량의 책이 되려면 다른 논문들도 함께 엮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부록까지 얹여야만 한다. ‘도서출판b’의 ‘b판고전 11’에 들어가는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은 그 한 편의 논문만을 옮겨 놓았다. 그래서 작고 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필요했던 건 딱 이 한 편의 글이었기에, 차라리 안성맞춤이다.
관악문화재단의 ‘동네서점 바로대출제’가 1월 3일자로 재개됐다. 4일 저녁에 신청한 책이 5일 오전에 승인이 나서 들렀다가, 책 두 권을 들고 돌아왔다. 제법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