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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pr 24. 2022

내가 서점에 가는 이유1

찾는 책이 책방에 있을 거란 기대감

찾는 책이 책방에 있을 거란 기대감

1. 2000년 수전 손태그을 처음 만나다


수전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서울:도서울판 이후, 2002.

 불과 스무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통념은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특히나 저작권 보호에 대한 생각은 상아탑 내에서도 카피레프트운동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무시됐다.

 강의를 맡은 교수들은 참고 자료로 책을 사볼 리가 없는 수강생들을 위해, 자신의 책 여러 권에서 좋은 논문들만 골라 구내 인쇄집에 제본을 맡기곤 했다. 그렇게 제본된 책 아닌 해적출판물 속에서 수전 손태그를 처음 만났다. 제대로 기억하진 못하지만 <은유로서의 질병>을 가지고 쓴 누군가의 논문(가라타니 고진의 <병이라는 의미>였다 싶다.)이 제본 속에 끼어있었지 않나 싶다. <해석에 반대한다>와 더불어 간접적으로 알게 된 수전 손태의 두 편의 비평은 문학청년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1964년과 1971년에 발표된 이 오래된 비평들을 2000년에야 알게 되어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다는 것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더랬다.



2. 오래된 책을 서점에서 만난다는 것.

위에 책은 2010년 5쇄, 아랫책은 2013년 8쇄인 것을 신림동 인문학서점인 '그날이오면'에서 구입했다.

이 두 권의 책을 모두 갖추고 있는 서점은 그리 흔치 않은데, 아무래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일 테다. 기껏해야 제법 규모를 갖춘 교보문고에나 꽂혀 있다. 반 년전쯤에 가봤던 '니은서점'의 서가에도 꽃혀 있었던 걸 기억하는데, 인문학서점을 표방하지 않는다면 쉽게 갖출 수 있는 책은 아니란 것이겠다.

"역시 그날이오면에 오니 이 책들이 있군요?"라며 딴에는 치켜세우는 공치사를 건냈지만, 돌아온 말은 "그만큼 안 팔리는 책이었다는 것"이란 꽤나 씁쓸한 대답이었다.

관악구의 공공도서관에는 이 두 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침울한 현실이 맨얼굴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엄청난 책더미 속에서도 서가 구석에서 바로 책을 꺼내주는 김동운 대표의 내공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런 것이야말로 책방지기의 귀감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 서울:도서출판 이후, 2002.

3. 찾는 책이 책방에 있을 거란 기대감


동네서점 바로대출제로 종종 찾아가게 되는 '그날이오면'에서는 "00이 있을까요?"란 주문이 바로 해결되는 경험을 해왔다. 최은영의 『밝은 밤』을 시작으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이어 수전 손태그의 오래된 책들을 망설임 없이 바로 서가에서 찾아주었다. 물론 인문학서점에 어울리지 않는, 얼토당토 않은 책들을 대뜸 찾은 건 아니라서 일테다.

"모름지기 서점이란 고객이 찾는 책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꽤나 물색없는 말을 김동운 대표에게 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서점들이 20년전 방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 책의 유통 방식 역시도 중앙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른 소매업과 마찬가지로 큐레이션이라 쉽게 부르는 편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거대한 유통공룡들 사이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차별화에 진력할 수밖에 없고, 그 차별화는 전문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답은 없기 때문이다. 구독경제와 같은 '엄선(嚴選)의 제안'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인문학서점이라도 수년간 서가에 꽂혀서 주인을 만나지 못할 책까지 다 갖추고 있기는 힘들다. 지금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이 있을까요?"란 말에 척하고 책을 내주는 서점을 만난다는 건 꽤나 설레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4. 고객이 찾는 책을 갖춘다는 것의 의미

 '그날이오면'이 갖추고 있는 서적의 수는 2만권. 그중 5천권은 창고에서 보관중이다. 그 작은 서점에 그렇게 빡빡하게 책을 채워넣으니 그 숫자가 된다. 눈대중에 서툰 나로써는 그렇게까지 많은 양일 줄 가늠할 수 없었다. 5월초에 찾아갔던 대전의 한 서점에서도 나의 눈대중은 그 절반에 그쳤더랬다.

 2만권의 책을 갖춘다는 것은 3억원 정도의 재고 서적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 팔릴지도 모르고, 팔리더라도 다시 또 갖춰놓아야 하는 챗바퀴, 그리하여 계속해서 밟지 않으면 쓰러지고야 마는 자전거처럼 그 액수의 책을 늘 쌓아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머리가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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