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철 May 13. 2022

[북리뷰]《NO-ISBN, 독립출판에 대하여》

전라남도 담양: 엔커(ENKR), 2021. "기대 이하지만 의미있는"

버나드 셀라 , 레오 핀다이센 , 아그네스 블라하(2021), 『NO-ISBN, 독립출판에 대하여』

(김재경 , 노다예 옮김), 전라남도 담양: 엔커(ENKR)


1. 기대 이하의 책, 하지만 의미있는 책


 기대가 너무 컸던 책이었던지라, 꽤나 불만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출판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함께 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제목이 던져주는 첫인상에 비해, 잘 정리되지 않은 내용들이 살짝 짜증을 돋운다. 여기에 말끔하지 못한 번역이 그 짜증을 한 스푼 얹으며, 외래어표기법을 철저히 무시한 번역이 다시 한 번 짜증 두 스푼을 올려 놓는다.

예를 들어, 안 뫼글린 델크루아(Anne Mœglin-Delcroix)와 같은 프랑스인의 이름을 '앤 모글린 델크로이스'로 표기하면 국적 자체를 미국으로 혼동하게 된다. 심지어 독일어 잘롱(salon)도 살롱으로 표기했다. 책 전체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 표기는 엉망이다. 그런 사소한 디테일의 차이가 범작과 명작을 가른다.


 '자기출판에 대하여(On Self-publishing)'란 부제가 '독립출판'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에서, 나와 이 번역본은 접점을 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후반에 나온 디자인학계의 논문에서는 독립출판의 개념을 북아트(book art 또는 artist book)로 보기도 했지만, 최근의 국문학이나 서지학 논문에서는 크게 3종류로 분류하는 듯하다.

주류 출판시장의 질서에 편입하지 않고 독자적인 유통을 통한 독립출판(independent publishing), 저자가 스스로 출판과 유통을 감당하는 자기출판(self publishing), 북아트나 1인출판사와 같이 대량생산에서 벗어난 소규모 출판(small publishing) 등이 대표적인 3분류법에서 손꼽히고 있다.

 여기에 영화계의 독립영화씬이나 대중음악의 인디씬과 마찬가지로, 정리되지 않은 날것들이 현장에서 혼용되면서 잠정적으로 사용하는 씬(scene)이란 개념을 원용해서 아무렇게나 정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률로까지 정리된 영화계와는 달리, 태생부터 자본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대중음악의 인디씬과 비슷하게 독립출판의 개념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일관된 의도로 개념을 꿰어낸 것이 아니라, 그 혼란스런 개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한 인디출판, 출판산업구조로부터 독립한 자기출판, 대량생산체계에서 독립한 소규모출판에 더해서, 북아트로서의 자기출판이나 카피레프트운동의 일환으로서의 해적출판뿐만 아니라 검열로부터 독립한 금서의 출판이며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내부출판서껀 온갖 것들을 아우르며 출판문화사 전반에 걸쳐 꽤나 혼돈스런 고민을 하고 있다. 


2. 좋은 역서는 이렇다.


 기본적으로 좋은 역서를 만나려면, 글재주가 좋은 저자의 말끔한 문장이 존재해야 한다. 연구가들의 혼란스런 문장으로 점철된 글은 번역을 해도 그 조잡함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번역가가 원문의 언어와 번역되는 언어와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명사가 문장의 중심이 되는 언어와 술어가 문장의 중심이 되는 언어의 차이는 꽤나 큰데, 원어의 문장습관을 그대로 번역해버리면 번역된 언어를 쓰는 독자들에겐 몹시 이질적인 문장들이 된다. 그래서 번역이란 일이 쉽지 않다.

 보통 전문서의 번역서가 보여주는 혼돈도 여기서 시작한다. 우선 연구가의 정제되지 않은 원문도 문제지만, 이를 '충실하게 직역'하는 것이 혼란을 가중한다. 여기에 '전문용어'의 '정확한 번역'이 요구되면서 번역가의 일은 더 힘들어진다. 원어를 번역어로 연구한 선행연구가들의 합의된 개념까지 섭렵하지 못하면, 번역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다운즈브러(Peter Downsbrough)의 발언, "나는 아티스트북이란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를 그냥 책이라고 부르길 선호한다"나,

 로런스 위너(Lawrence Weiner)의 "책은 책이다. 아티스트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는 발언은 혼란스런 개념의 미정립 상태에는 1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마음 편한 울림을 전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서점에 가는 이유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