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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Nov 01. 2021

[북리뷰] 미자 리, 원주

독립출판물, 2020. "기대했던 책이 아니라서 실망했다"

1. 원주요? 글쎄요...


2003년 9월 26일 강원도민일보 김상수 기자가 쓴 기자 칼럼의 한 부분을 소개해볼까 한다.

"원주하면 '이것'하고 특별히 내세울만한게 얼른 떠오르지 않는 인구 30만을 눈 앞에 둔 고만고만한 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다. 시비를 삼자면 반론이 없지않겠으나 보통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구태여 꼽자면 아직 원주시민들 조차 덤으로 봐야할지, 짐으로 쳐야될지 손익계산이 끝나지않은 것으로 비쳐지는 군도(軍都)라는 점 정도일까."

'원주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말일 테다. 


그렇다보니 미자 리의 <원주> 프롤로그에 나오는 문장, "원주에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모르겠다"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 문장때문에 이 책을 사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신의 '원주살이'는 어떠했는지 내게 전해주오란 생각이었다.


1978년 4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원주에서 살았고, 1995년 10월부터 2004년 2월까지도 원주에 주민등록을 두고 살았으니 "너는 어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원주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1996년 이후로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보니, 가장 오래 산 동네로 따지자면 서울사람이라 해야할 테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란 정체성의 질문이 어디 그런 류의 문제랴.


그런데 사람들이 "원주는 뭐가 유명해요?"라고 물어볼 때면 나 역시 뭐라 답할 게 없었다. 

일단 "그 동네는 뭐가 유명하냐?"고 물어본다는 건, 역설적으로 유명한 게 없는 동네란 이야기다. 유명한 게 있으면 먼저들 물어보기 때문이다. 

춘천하면 닭갈비나 호반의 도시 같은 것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인제라면 심산유곡으로 유명하고, 태백과 정선은 탄광촌과 카지노로 유명하며, 강릉과 속초 그리고 동해쯤만 해도 바다로 유명하다. 그래서 보통 "앗! 그 동네면 00로 유명하지 않나요?"라고 먼저 묻기 마련이다. 당최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없을 때에야 비로소 "거긴 뭐가 유명하냐"고 묻게 된다. 원주가 그런 동네다.


치악산국립공원이 있지만, 원주사람들에게 가야산국립공원이나 주왕산국립공원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가 타지인들에게서 나온다. 북한산국립공원이 서울시내에 있다는 것도 모르니 말해 무엇하랴.

 치악산 배를 들이밀어 볼까 싶으면, '나주 배'를 당해낼 수가 없다. 도토리묵으로 만든 묵사발을 등판시켜볼라치면, 당장 영월에도 밀리게 된다. 

 그나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거라곤 추어탕이 있다. 그런데 1998년 울산에서 남원식 추어탕을 먹으며 원주식 추어탕도 유명하단 소식을 부산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나로써는 추어탕 홍보도 쉽지 않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추어탕의 기억이라서 말이다.



2. 기대했던 책은 아니다.


 2013년 반 년 정도 원주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유년시절의 원주와는 아주 달라진 원주지만, 구시가는 어떻게 변화하지도 못하고 세월의 무게에 눌려서 압사당하고 있었다. 

 원주역에서 분기해서 남부시장에서 다시 합류하는 중앙통의 A, B, C도로 곳곳을 뒤지며 저지레를 치고 다녔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그 흔적을 더듬고 다녔다. 명륜1동의 산동네며, 일산동의 주택가며, 학성동 집창촌이며, 주무대였던 단계주공아파트 주변서껀 원주 시내 전역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뿐이랴. 차가 있으니  어린 시절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시 외곽 지역까지 돌아볼 수 있게 됐었다. 서원주역에게 이름을 빼앗긴 간현역과 간현유원지, 이제는 폐선이 되어서 폐역이 되버린 반곡역, 말끔하게 새단한한 대안리공소, 오랜 세월을 그 시골에서 잘도 버텨준 용소막 성당과 풍수원 성당 같은 곳까지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원주를 떠나 있던 원주 사람에게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책을 기대하고 효자동에서 개최된 소규모 독립출판페어에서 덥석 사들고 나왔던 것이다.

 프롤로그 이후부터는... 아... 몹시나 당혹스러웠다. 

2021년 10월 23일 효자동 베어카페에서 열렸던 독립출판북페어, 책보부상에서 만난 미자 리의 책, <원주>


  인디자인이나 겨우 배워서 어떻게든 조판한 조악한 편집이야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글이 책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기본적인 점검이 부재한 '편집력 부재'의 상황에는 아연실색하게 된다. 그리하여 막말로 "개나 소나 출판하는 일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하게 된다.


 물론 <원주>가 글로써도 그렇게 조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백'이란 제도를 통해 자아를 재정립하고, 그 지점에서 자아의 재출발을 이룩하는 글쓰기의 썩 괜찮은 표현물이기도 하다. 원주라는 이렇다할 것 없는 중소지방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도 제법 잘 녹아있다. 저자에겐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쓰고, 다른 창작활동에도 매진할 수 있길 응원한다. 그렇다고 해도 책을 사서 읽은 독자 입장에선 책에 대해 그리 후한 평가를 할 순 없다.



3. 제목이 "원주"라면 기대하게 되는 것들.

 어떤 텍스트가 되었건 제목은 많은 것을 함축해서 전달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미술작품 중에 "무제"라던가 일련번호 형태의 제목들을 보게 되면, 한숨부터 나오게 된다. 물론 제목이 달려도 한숨이 나오긴 마찬가지인 추상화는 논외로 하자.

 여하튼 제목 짓는 일은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일이다. 너무 노골적이고 단선적이면 키치(kitsch)로 몰릴 수 있고, 너무 숨기게 되면 제목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예로 들 때면, 거의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줏어 쓰는 김훈 선생의 소설 《칼의 노래》첫 문장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어미 하나, 그 무엇도 허투루 선택할 수 없다.


 제목에 도시 이름이 들어가는 텍스트의 경우는 그 도시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정서적 공간성에 기인한다. 그것이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서사라면 더욱 그렇다.

도시명이 영화제목으로 인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도시가 자아내는 고유한 파노라마와 분위기, 즉 로케이션에 있다. 도시(명)가 영화내용을 결정짓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해당도시와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
김우성, "지명[地名]을 제목으로 한 영화 뭐가 있었나", 인터뷰365

 에세이의 제목이 다른 것 없이 도시 이름 그 하나로만 된다면, 더더욱이나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주 가이드북 아니고 원주 에세이"라고 홍보하기에도 이 책의 원주에 대한 탐색은 너무 모자르다.



4. 독립출판을 우려한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문학계를 위시해 출판계엔 일대 요동이 일었다. 

 이명원의 <타는 혀>를 시작으로 문학비평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하더니. '주례사 비평'으로 전선이 확대되는가 싶다가, 어느새 '출판 권력'에의 비판으로 확전되었다. 특히나 문학에서는 '등단 시스템'으로 작가를 시장에 공급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이 문학권력과 출판권력들에 의해 특혜화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팔리는 책에 대한 출판사의 분별없는 출판과 점차 베스트셀러 순위화에 익숙해져가는 도서시장에 대한 반감도 커져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여기에 인터넷서점인 예스24의 출현과 인터파크의 인터넷서점 시장 진출로 소비자 행동에 격변이 일던 시기이기도 했기에, '서점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가 됐다.

 1990년 후반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인터넷소설의 인기도 위기를 부채질했다. 문학적 성과는 1도 이룩하지 못하는 글들이 양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책이 팔리니 출판사는 책을 찍어 팔았던 것이다. 아무나 베스트셀러 작가 선생님 소리를 듣는다며 개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출판계의 엄숙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 보다 더 거셌다.

 그렇다 보니, 권력에 의해 오염된 기존 체제에서 '독립'하여 저항 활동으로서의 출판 활동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발생하게 됐다. 마치 1960년대 국전을 통해 미술가들을 서열화하고 등단시키는 미술계의 관행에 저항해, 국전이 열리는 덕수궁미술관 담벼락에서 반대 전시회를 개최했던 것처럼 말이다.


 독립출판과 자비출판을 혼동하는 경우들이 참 많다. 

 독립(indie)라는 문화적 코드가 워낙 다양한 곳에서 다채롭게 쓰이다 보니 그렇다. 이현령비현령하기 딱 좋은 개념이기도 하다. 일전에 서울책보고에 독립출판의 정의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기본 개념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로 남에게 훈계질을 하는 답변을 받곤 꽤나 분노한 적이 있었다. 20년이 지나도록 그 개념은 여전히 표류중인 듯싶다.


 2001년 충무로 인쇄사에서 정년퇴임한 교사의 자서전과 문집을 짬뽕한 듯한 원고를 편집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유통할 생각도 없었던 자비출판이다 보니, 그 조악한 책을 찍어내는데에 손을 보탰다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은 없었다. 그런 식의 출판행위가 충무로 인쇄골목에서는 꽤나 오래된  일거리 중에 하나였다는 걸 그때서야 처음 알게 됐었다. 기존의 출판사를 통한 출판이 요원한 이들의 자기위로는 제법 오래된 욕망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잡지 에디터 생활을 하면서는 고민이 많아졌다. 라이센스 잡지의 한국어판을 작업할 때에는 그나마 나았지만, 함량미달의 잡지를 만들 때엔 자괴감도 컸다. 정말 아무나 막 책을 찍어내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출판사의 출판 행위는 기존의 관습에 부합하기 때문에,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좋은 글은 좋은 출판사에서 좋은 편집자를 만나 좋은 책이 되곤 한다. 하지만 평판이 낮은 출판사에서 펴낸 막무가내의 책들은 외면받기 십상이다. 기존의 권위와 관행과 질서를 언제나 혁파해야 할 대상으로만 볼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독립출판을 하더라도 제발 부탁이니 혼자서 글 쓰고, 편집하고, 제책하는 일은 자제했으면 한다.  

 2000년 여름의 나는 홍대에서 만들어진 인디밴드들의 조악한 카세트테이프를 참 열심히 듣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음반 제작 환경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문턱이 높은 녹음실이 언감생심이었던 인디씬에서는 개러지밴드의 하우스레코딩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활동하다가 기존의 음반회사와 다시 작업해 정식 음반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엄청 달라졌다. 기본의 문턱은 낮아졌고, 오히려 하이파이한 작업을 위한 고가의 시설들이 생기는 판이다. 물론 음반시장 자체가 개판이 된 건 좀 더 살펴봐야 할 문제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싱어송라이터라고 해서 하우스레코딩을 하는 경우는 없다.

 독립출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좋은 글은 출판사들에 의해 재출간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슬슬 자비출판에서도 출판사와 편집자, 편집디자이너의 분업이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글에 비해 뛰어난 물성을 자랑하는 책들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할 테다.

 그러니 제발 부탁이니 독립출판도 분업시스템을 좀 활용했으면 좋겠다. 혼자서 조악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독립출판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좀 버리길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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