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실습2_반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대안 찾기
근래에 읽었던 몇 권의 책을 모아봤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좌파 지향적인 저자들의 책들을 하나 둘 펼쳐보다 보니 그들 사이에 하나의 맥락이 생겨버렸다. 차별을 시작으로 착취와 수탈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각자가 들여다 보던 것들이 마침내 이들을 통섭하는 노철학자의 사상과 만났기 때문이다.
이 책들 이외에도 분명 더 나은 책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이 관계망 속에 들어와서 더 좋은 울림을 선보일 수 있는 책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한정된 독서경험이 내보일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이정도일 뿐이다.
1.
마침내 지구가 직면한 지금의 위기 상황을 '경제 그 이상으로서의 자본주의'가 망치고 있다고 설파하는 낸시 프레이저의 현실인식은 큰 도움이 된다. 이태전부터 ESG경영에 대해 공부하면서, '역시나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깔끔하게 도식화하진 못했었다.
마침내 앞선 독서들에서 파악했던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들이 하나의 씨줄로 교직되기 시작했다. '답이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지만, 그래도 '눈앞이 캄캄했던 현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위안을 주었다.
다만, 이 비정상을 교정할 수 있는 그럴듯한 지도이념이 부재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던 바와 같이, 그리하여 낸시 프레이저 역시 『좌파의 길』에서 반복해서 인용하고 있는데, 폭식의 우로보로스와 같은 '카니발 캐피탈리즘'을 대체할 새로운 이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낸시 프레이저는 "사회주의는 현재 지구를 파괴하면서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사람답게 살 기회를 좌절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진정한 대안의 이름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라며 근거 박약한 희망을 품고 있지만, 나로서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노철학자 역시 놓치지 않고 언급한 "사회주의는 ‘단순한 당위’나 유토피아적 꿈이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꽤나 거대한 장애물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해 나아가야 하고, 그 해결방안으로 익숙하지만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던 옛 것을 일신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수는 있을 테다. 다만, '식인 자본주의'가 싸지른 똥이 너무 커서 치워낼 수 없겠다는 슬픈 예감을 거둬들이기 힘들다.
작년 여름에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면서, 반차별주의의 전선이 단일쟁점정치의 영역에서 작동할 수는 없겠구나 예감했었다. 차별은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몹시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이 아닌 지금의 세상'을 '차별'이란 시점에서만 잘라본 단면을 살펴봐도 이리 복잡하다. 그걸 해결하는 길이 그 '단면'에서 깔끔하게 완수될 순 없다. 단순히 차별금지법 제정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단일 쟁점 정치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다.
연초에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책을 좀 읽어 보고 싶었다. 먼저 필 존스의 책을 읽었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이철수/이다혜의 책을 찾아 보았다.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차별'이었다. 두 책은 과욕의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수탈하기 위해 노동을 상품화하고, 그 상품화 과정에서 '돌봄노동'을 더욱 차별하면서 그 과정을 가능케 하고 있음을 분석해주었다. 노동의 문제에서도 차별의 외양으로 시작된 착취와 수탈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지만, 그 해결방법은 역시나 보다 포괄적인 '지도이념'이 필요해 보였다.
'젊은 영국 빨갱이'의 대안에서는 워낙 철지난 낭만주의적 태도가 엿보여서 아연실색했고, '원숙한 한국 빨갱이'의 소책자에서도 그리 희망적인 대안을 찾을 순 없었다. 가슴에 고구마가 하나 더 쌓였습니다.
비거니즘에 대한 개론서를 찾다가 접한 에바 하이파 지로의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로는 "비거니즘이 과연 식습관 그 이상으로 기능하는 희망적인 개념적·정치적 잠재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막상 그 대안은 그 기반을 공유하는 좌파 운동에서 찾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단일쟁점정치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통섭하는 지도이념이 필요함을 이 책에서도 은연 중에 희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문제의 복잡성을 미시적으로 드러냈지만, 여전히 답지의 공란을 채우진 못해 답답함은 더 켜졌다.
그리하여 찬찬히 들여다 볼 다음 책들이 몇 가지 눈에 들어온다. 가장 높은 확률로 다음 순위에 오를 책은 아마도 동네서점 '그날이오면'에서 뒤적거려봤던 <실현가능한 사회주의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 태생의 영국 학자가 1983년에 초판본을 쓰고, 1991년에 재판본을 내놓은 이 책은 2001년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됐다. 분명 철지난 책일 텐데, 그래도 미련스레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