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철 May 10. 2023

"오래된 책의 번역이 더 나을 때의 당혹스러움"

[리뷰]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외). 서울: 범우사. 1994. 

1.

 이번 고전도 번역서인지라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 참 망설였습니다.

 퍼블릭 도메인의 얇은 책인지라, 처음에는 딱 사회계약론만 다룬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역본과 문예출판사의 역본을 살펴보았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살펴본 두 책은 인쇄 상태나 편집 디자인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동네도서관에서 범우사 역본을 빌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만, 산책하닥 들른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 한 권 사들고 왔습니다.



2.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는 범우사의 책들을 꽤나 많이 읽었습니다. 세계문학이나 한국문학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해 주었기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듯합니다. 포켓북 ‘범우문고’나, 국판 ‘세계문학선’ 같은 것들을 말입니다. ‘범우고전선’으로 엮인 책들도 있었더군요. 사회계약론이 여기에 들어갔습니다.


3.

 옛날 번역서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라틴어로 쓴 책이 영어로 번역되고 그것이 다시 일본어로 중역된 다음, 우리말로 번역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1:1 번역이 이루어지는 요즘의 책들이 더 낫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책에서는 그 공식마저도 또 엎어지고 말았네요. 1975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태일/최현의 역본은 읽기 편하게 잘 번역되었습니다. 아마도 3판까지 내면서 다듬고 또 다듬었을 테지요. 무엇보다 루소의 저작은 라틴어/고대그리스어가 아닌 거의 현대 프랑스어로 쓰였다는 점이 깔끔한 번역작업을 가져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프랑스어로 된 PDF파일을 가져다 놓고, 구글 번역기에서 영어로 바꿔 비교해 보기도 했습니다. 원문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읽기 쉽게 ‘번역’을 했더군요. 번역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어밀리아 호건의 『노동의 상실』에서 ‘불성실한 직역’의 세계를 경험한 뒤였던지라 더 크게 느껴졌나 봅니다. 함께 고전 읽기를 하는 분들이 옮겨 주신 후마니타스의 김영욱 역본에 비해 읽기 수월했다는 점에도 좀 놀랐습니다.



4.

 번역서를 읽다 보면 ‘이 역어의 원어는 무엇인가?’와 ‘원 문장은 무엇인가?’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곤 합니다. 정말 번역을 잘하는 이들은 독자의 이런 점을 절대 놓치지 않더군요. 권두의 ‘일러두기’를 통해 주요 역어들을 정의하고 시작하기도 하고, 처음 등장할 때 병기를 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문장 역시 병기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이 오래된 책이 그런 친절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제1권 6장(Livre premier chapter VI) ‘사회계약에 대하여(Du Pacte Social)’에서 일반의지를 비롯해 도시국가(Cité), 공화국(République), 정치체(corps politique), 국가(État), 주권자(souverain), 권력체(Puissance), 인민(peuple), 시민(citoyen), 신민(sujet)을 일별 해주고 있긴 합니다만, 그런 친절이 계속되진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주석을 달아가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원래 책에 줄을 긋는 것도 싫어해서 플래그를 사용하는데요, 원 없이 낙서를 해봤습니다.


#범우사 #사회계약론 #장자크루소 #이태일최현옮김 #번역서를읽는다는것 #잘된번역

매거진의 이전글 수기 읽기_"그저 수기, 그래서 착취와 학대의 포르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