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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방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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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짐 Oct 08. 2018

프롤로그 : 나의 첫

지극히 개인적이고 적당히 개방적인 1인의 기록

2010년 1월, 나는 전주에 머물고 있었다. 학업은 끝났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고 학교는 벗어났지만 취직은 하지 못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포용할 만큼 단단하지 못해서 비틀거리던 시기였다.

출판 제작과정을 배우겠다고 주말마다 전주와 서울을 오갔다. <방과 나>는 수업을 마무리하며 만든 책이자 나의 첫 독립출판물이다. 짧은 일기와 소설을 묶었다. 일기 쪽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적당히 개방적인 1인의 기록'이라는 가관인 부제를 달았다. 소설 쪽에 단 부제는 더 가관이라 밝힐 수가 없다.

편집 디자인도 직접 했다. 따라서 엉성하다. 디자인이랄 게 없이 텍스트만 있는데도 폰트니 줄 간격이니 모조리 엉성하다. 표지의 가운데 정렬부터 맞지 않는다. 인쇄가 다 된 후에야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총 서른 권. 적은 분량이고 적은 부수다. 물론 적은 비용이 들었다.


3개월 전에 이 책을 재인쇄하려고 했다가 무산됐다. 브런치에라도 올려볼까 싶어 다시 책을 펼쳐보았다. 디자인만 엉성한 줄 알았는데 글은 엉망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라리 디자인이 군더더기 없다. 반면 글은 욕심부린 티가 역력하다.

다시 보기 부끄러운 글을 굳이 드러내는 건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0년은 내게 변화무쌍한 해였다. 독립출판물에 눈을 떴고 졸업장을 땄다. 논밭뿐인 가평에 잠시 살았고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안산에 원룸을 구했다. 새끼 고양이를 데려온 것도 직장을 얻은 것도 그 해의 일이다.

굵직한 사건들의 시작점에 내 책이 있었다. 초라하고 어설픈 나의 첫 번째 책이 있었으므로 다음 책은 더 잘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당시 내가 가장 가까이 여겼던 말은 옥타비오 파스의 '모든 글은 독자를 가진다'는 글귀였다. 과거엔 이 말이 지독한 채찍 같았다. 치열하게 검열하라는 뜻으로 새겼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보니 보잘것없는 글로 남았다. 이제는 순수하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모든 글은 독자를 가진다. 잘 썼든 못 썼든 나의 해묵은 기록들도 첫 독자를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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