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유발 하라리는 오래전부터 이야기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넥서스에서는 이야기의 본질을 '연결'의 관점에서 파헤치고 있지요.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허구적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주관적 현실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대규모 인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지요.
공통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로 짜인 네트워크는 사피엔스를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 되게 했습니다.
고대인들은 이야기와 상호 주관적 현실을 공유하는 무리들끼리 하나의 부족을 이룰 수 있었지요.
침팬지들도 인간과 똑같은 식욕과 성욕 등 객관적인 물질적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존재였지만
인간처럼 대규모 집단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큰 집단을 연결해 주고 집단의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결정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사피엔스처럼 종교를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고 국가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를 연결 장치라고 이해하면 우리 종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진실을 알면 힘이 생길까요?
유발 하라리는 진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힘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거죠.
거대과학의 전형인 원자폭탄 개발을 예로 들어볼까요.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물리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우라늄 광석을 채굴할 사람, 원자로를 만들 사람, 건설 노동자, 광부,
물리학자에게 음식을 제공할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직접적으로만 약 13만 명을 고용했으며,
그 프로젝트를 위해 일한 사람을 다 합치면 수백만 명이 넘었다고 하죠.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방정식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라늄을 채굴하는 수천 명의 광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원자폭탄만이 아니라 우주선 발사 같은 거대과학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면
수백만 명의 협력을 이끌어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석기시대에 매머드 사냥에 나서는 한 부족의 무리를 살펴볼까요.
사냥에 성공하려면 우선 매머드에 대해 정확히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냥에 나서는 사람들의 용기도 필요합니다.
죽음을 감수하고 매머드에 덤벼들 용기가 있어야 사냥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겠지요.
이 때 이야기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만일 어떤 주문을 외우면 죽은 사냥꾼들이 사후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면 어땠을까요.
사냥 원정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아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주문이 객관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죽은 사냥꾼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그렇지만 그 주문은 살아 있는 사냥꾼들의 용기와 연대 의식을 북돋워 사냥의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머드 사냥법과 주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원자폭탄 제조의 비밀을 알고 있는 핵물리학자는 모르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우주에 대한 진실을 알린다고 해서 사회 절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방정식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설명해주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정치적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 방정식에 통달한 사람들이 공동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인간 네트워크를 묶어주는 것은 허구적인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신과 돈, 국가와 같은 상호주관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인 경우가 많다는게 유발 하라리의 결론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데 허구가 진실보다 어떻게 우월한지 이야기합니다.
첫째, 허구는 얼마든지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진실은 대체로 복잡하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진실이 표현해야 하는 현실이 복잡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민족에 대해 생각해보면, 민족이 집단적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상호주관적 현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대중 연설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집단적 상상 속에서 존재해온 상호주관적 현실'이라고 한다면 과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지요.
정치인들은 오히려 민족은 창조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위임받은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겠지요.
이스라엘부터 이란, 미국부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 단순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왔습니다.
둘째, 진실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편안하고 듣기 좋게 만들게 되는데,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게 되지요. 반면 허구는 지어내기 나름입니다.
모든 민족의 역사에는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어떤 이스라엘 정치인이 선거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비극을 이야기한다면, 표를 별로 얻지 못하겠지요.
반대로, 불편한 진실은 무시한 채 유대인 역사에서 영광스러웠던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에 따라 현실을 미화하면서 민족 신화를 만들어낸다면, 그 정치인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마찬가지겠지요.
자기 민족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오직 진실만을 고집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필수적이지만 선거에서 승리하는 전략은 아닙니다..
유발 하라리는 플라톤이 언급한 '고귀한 거짓말'을 말합니다.
플라톤이 이미 <국가>에서 이상적인 국가의 헌법은 '고귀한 거짓말'에 기반해야 한다고 상상했다는 건데요.
사회질서의 기원에 대한 허구적 이야기가 바로 고귀한 거짓말입니다.
이 고귀한 거짓말은 시민의 애국심을 확보하고 법에 의문을 갖지 못하게 만들지요.
'모든 사람은 흙에서 태어났으니 땅이 어머니이고 따라서 모국에 효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사회 구성원들이 잉태될 때 신들이 금, 은, 동, 철 등 다양한 금속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금으로 된 통치자와 동으로 된 하인들 사이의 위계는 태생적인 것이다. ' -플라톤 <국가>
플라톤의 유토피아는 실제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여러 시대의 수많은 정치체제가 시민들에게 이 고귀한 거짓말의 다양한 버전을 들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