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넥서스(Nexus)는 연결, 연계, 관계, 집합체 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무언가의 중심을 뜻하는 허브(Hub)와 비슷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허브가 그 자체가 중심이라는 의미가 강하다면,
넥서스는 여러가지 다른 것들과 이어져 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요.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를 통해 인간이 현재까지 만들어낸 네트워크의 정점인 AI가 과연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네트워크가 될 수 있는가 고민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수 세대에 걸쳐 인간 네트워크는 점점 강력해 졌지만 점점 지혜로워진 것은 아니었다고 진단하죠.
네트워크가 진실보다 질서를 우선시할 경우 막강한 힘을 가지는 대신 그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기 쉽다고 경고합니다.
오늘의 주제인 '영원한 딜레마'는, 사람들이 정보에 대해 생각하는 순진한 정보관과
그 정보가 모인 집합체인 네트워크가 서로 어떻게 상호 충돌하는지 살펴보는 이야기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에서 허구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신화와 종교, 민족과 국가가 형성된 과정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허구적 실재인 이야기를 공유한 사람들이 특정한 공동체를 이뤄왔다고 설명하지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허구적 실재가 사나나 호랑이, 인간 개개인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고,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넥서스에서 말하는 정보 네트워크의 개념은 돈, 기업, 국가같은 허구적 실재가 서로 연결된 것을 말하지요.
정보와 정보 네트워크의 상호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정보에 대한 '순진한 관점'을 계속 지적하는데요.
정보에 대한 순진한 관점은 이를테면 모든 일에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면 세상은 발전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보에 대한 순진한 관점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정보는 진실의 원재료가 아니라고 단언하지요.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가 성공하려면 진실 발견과 '질서 유지'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거죠.
따라서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는 별개의 두 가지 기술을 개발해왔습니다.
순진한 정보관에 따라 약제, 매머드, 핵물리학 같은 것들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을 배웠지요.
동시에 네트워크는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강력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배웠다는 건데요.
즉,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 외에도 허구, 환상, 선전, 때로는 새빨간 거짓말까지 이용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정보를 많이 취득할수록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보가 많다고 해서 진실이나 질서가 보장되는 것은 아닌데요.
그 이유는 정보를 사용하여 진실을 발견하는 동시에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진실보다 허구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두 과정은 종종 충돌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종교는 항상 자신의 종교가 인간이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반복해 강조합니다.
객관적이고 영원한 진리라고 주장하지요.
그런데, 세계를 지배한 종교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종교 이야기를 무시하고 종교는 인간이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라는 진실을 밀어부친다면 사회질서가 흔들리게 되겠죠.
따라서 많은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그들이 속한 사회의 본질을 모르도록 요구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합니다.
즉 무지가 힘이 된다는 것이죠.
만일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면 어떻게 될까요?
진실을 담은 정보가 중요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진실이 동시에 사회를 결속시키는 '고귀한 거짓말'을 방해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경우 진실과 질서가 부딛칩니다. 사회는 진실 추구를 제한하여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예가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진화를 이해하면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한 종들의 기원과 생물학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신화가 흔들리게 됩니다.
많은 정부와 교회가 진화 교육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면서 질서를 위해 진실을 희생시키는 쪽을 선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와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정보 네트워크가 진실 추구를 허용하고 심지어 장려하되 이런 조치를 권력 창출에 도움이 되지만
사회질서는 위협하지 않는 특정 분야로 한정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힘은 막강하지만 지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네트워크가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데요.
예를 들어 나치 독일은 화학, 광학, 공학, 로켓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양성했습니다.
훗날 미국인들이 달에 갈 수 있었던 것도 대부분 나치의 로켓 과학 덕분이었는데,
이 과학적 힘 덕분에 나치는 매우 강력한 전쟁 기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치의 이런 전쟁 기계는 잔혹하고 광기 어린 신화를 실현하는 데 사용되었지요.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은 로켓을 마음껏 개발할 수 있었지만,
생물학과 역사에 대한 인종주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할 자유는 없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 정보 네트워크의 역사가 단순히 승리의 진군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수 세대에 걸쳐 인간 네트워크는 점점 강력해 졌지만 점점 지혜로워진 것은 아니었다는 건데요.
네트워크가 진실보다 질서를 우선시할 경우,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지만 대신 그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인간 정보 네트워크의 역사는 승리의 진군이라기보다는
진실과 질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던거죠.
유발 하라리는 이런 역사를 토대로
21세기의 우리가 석기시대 조상들보다 균형을 잘 맞춘다고 보기 어렵다고 단언합니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의 사명 선언문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단순히 정보 기술의 속도와 효율을 높인다고 해서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건데요.
오히려 진실과 질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더 시급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수만 년 전에 이야기를 발명했을 때 이 교훈을 얻었지요.
그리고 인류가 두 번째 위대한 정보 기술인 '문서'를 생각해냈을 때 이 교훈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넥서스, 다음 이야기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