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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현대의 모닥불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모닥불이 있나요?

by pdcafe

어둠이 찾아오고 밤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불빛을 찾습니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오를 때, 우리는 안도감을 느끼며 서로를 향해 모여들지요. 모닥불은 맹수의 접근을 막아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준 고마운 도구였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시작되는 자리였습니다.


고대 인류는 불 앞에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날 사냥에서 있었던 일을 공유하며 공을 세운 부족원을 칭송했습니다. 다른 부족과의 낯선 만남을 이야기하며 위험천만했던 상황을 빠져나온 무용담을 자랑했겠지요. 신비한 꿈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간의 믿음도 나누었지요. 이야기는 그저 흘려보내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를 묶는 끈이었습니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의 저자들은 이야기를 ‘트로이의 목마’로 비유합니다. 트로이 사람들이 근사한 목마를 보고 성 안에 들이고 싶어했던 것처럼, 이야기는 매력적인 외양으로 들어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메시지를 심어 놓지요. 영웅담을 들으며 우리는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그러는 사이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공동체의 기억이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강조했습니다. 인간 언어의 특이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지요. “사자는 우리 부족의 수호령이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허구였지만, 집단이 그것을 믿는 순간 더 강력한 협력과 연대가 가능해졌습니다. 신화, 종교, 국가, 제도까지—인류의 문명은 결국 이야기의 산물인 셈입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인간 DNA에 각인된 본능입니다. 불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책과 방송, 영화와 유튜브라는 새로운 모닥불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를 갈망합니다.


저에게 모닥불은 라디오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라디오를 끼고 살았습니다. 큰집에 가면 늘 기다리는 것이 있었지요. 바로 작은 방에 놓여 있던 큼지막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였습니다. 다이얼을 돌릴 때마다 들려오던 지직거림, 그리고 점차 또렷해지는 목소리. 그 순간은 어둠 속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만큼이나 짜릿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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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cafe의 브런치입니다. 라디오 전문 PD로 책읽는청주 독서캠페인을 기획했으며 지금은 대한민국 독서캠페인 리딩코리아(Reading Korea)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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