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어주었어.

어쩌면 나는 영원이고 당신은 순간일지도 몰라.

by 행성인 D




방이 있어.

아주 작은 방이라 원형 테이블에 의자 두 개면 방이 꽉 차. 문은 두 개나 있어. 하나의 문은 깨끗하고 노란 페인트칠이 되어 있어. 다른 문은 방치되어 있어. 문은 먼지가 가득하고 삭막해. 노란 문은 내 오른쪽 벽에 있고 방치된 문은 내 정면 벽에 있어. 앉아있을 때 방치된 문을 보는 게 편하지만, 난 일부러 고개를 돌려 노란 문만 봐.


누군가 노란 문을 누가 두드려. 그건 당신이야. 가끔 나는 이 문을 열었던 것도 까먹고 마주 앉은 당신을 봐. 어쩔 때는 당신이 문을 두드리기 전에 달려가서 문을 열어주기도 해. 오늘의 나는 당신이 문을 두드릴 때까지 기다렸어. 처음 두 번 두드리고 다시 두 번 두드렸을 때, 나는 그제야 일어나서 노란 문을 천천히 열었지. 당신이 웃으며 나를 봐. 두 손에는 예쁜 찻잔을 들고서. 그 미소를 보니 나는 망설이고 싶지 않아. 당신 손을 덥석 잡고 테이블 앞으로 데려가 당신을 앉혔어. 당신이 가져온 찻잔에 정성스럽게 우려낸 차를 담아내며 당신 앞에 놓아주었지. 당신은 또 웃었어. 행복해. 당신이 이 방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린 많은 얘기를 했어. 날씨 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차에 대해서도, 당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서도. 영원할 것 같던 순간에 빈 찻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났어. 이제 곧 당신은 저 방치된 문을 열고 이 방을 나갈 거야. 나는 당신의 손을 다급하게 붙잡았어. 그거 알아? 나는 이전에도 당신을 이렇게 붙잡았어. 그래도 당신은 조심스럽게 내 손을 놓으며 무정하게 문을 열고 나갔어. 나는 화를 내었고 애원했고 협박을 했지만, 언제나 당신은 저 방치된 문을 열고 나가. 이제 왜 저 문만 방치되어 있는지 알겠어? 손잡이가 더러우면 이 방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늘 당신은 이 방을 나가. 나는 떠나는 당신을 보지 않으려 노란 문만 노려보았어. 눈가가 뜨겁고 울컥 속이 뒤집혀도 끝까지 방을 나서는 당신을 보지 않았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 당신은 또 가버렸어.


있잖아. 나는 늘 당신이 떠날 때마다 화가 나. 우는 내가 싫고 빈자리를 알게 한 당신이 미워. 어제 당신은 아이의 모습으로 그전에는 노인의 모습으로 더 그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동물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어. 난 당신이 어느 모습이든 문을 열어주었는데, 당신은 내 앞에 잠시만 앉았다가 가. 어쩌면 나는 영원이고 당신은 순간일지도 몰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연속인거지. 이럴 거면 아예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거 봐. 당신이 또 노란 문을 두드려. 이번에는 열어주고 싶지 않아. 당신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멍하니 창문 밖을 보는데 당신은 노란 문 밖에서 자꾸 문을 두드려. 당장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는데도 당신은 떠나지 않아. 결국 떠날 거면서 왜 자꾸 오는 건지 이해가 안 돼.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이 방에 들이지 않을 거야.


해가 뜨고 져. 당신은 문을 두드려. 이상한 게 뭔 줄 알아? 당신이 문 밖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크게 외롭진 않았어. 가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끊기면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차도 마시지 않고 계속 울었어. 방은 더 좁아지는 것 같고 당신이 진정 존재했었는지 계속 의심하게 돼. 불안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져버렸어. 모든 게 다 엉망이야. 당신을 이 방에 들이기 위해 예쁘게 꾸며두고 당신이 늘 가져온 물건들을 소중히 두었는데 가끔 이렇게 망가져버려. 나는 울었어. 깨진 찻잔을 보면서. 그때 당신이 문을 두드려. 난 당신 때문에 엉망이 됐어. 하지만 당신 없이는 난 존재할 수 없어. 그래서 문을 열었어. 잘 청소했던 방이 아닌 엉망진창인 방으로. 문 앞에 당신이 서 있어. 당신은 내 얼굴을 하고 있었어. 당신이 내가 됐어. 나는 당신이 됐고. 당신은 내 손을 이끌고 나를 테이블 앞에 앉혔어. 깨진 찻잔이 순식간에 당신의 손길로 새것이 되었어. 그리고 우려냈던 찻물을 담은 채 내 앞에 놓였지. 당신이 내 눈가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어. 나는 순식간에 풀어지는 마음으로 차를 마셔. 찻잔을 내려놓고 우린 많은 얘기를 나눴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 안 나. 그냥 좋았어. 재밌었어. 그리고 당신이 일어나.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당신은 이제 이 방을 나설 거야. 나는 차분히 봤어. 우리면 우릴수록 진해지는 찻물을, 수많은 당신이 지나가고 내가 꾸민 방을. 나는 이제 알아. 나와 당신은 한순간일 수 없어. 당신은 결국 떠나지만, 이 방에는 남는 게 있어.


방치한 문 앞으로 걸어가던 당신이 뒤를 돌아보았어. 왜냐하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거든.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지나쳐 문 손잡이를 잡았거든.


문을 열어주었어.


당신은 언뜻 놀란 듯 나를 보다가 웃어. 나도 웃었지. 지금 당신은 떠나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또 내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 거야. 난 이제 당신을 예의 있게 보내줄 수 있어.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당신을 용기 있게 맞이할 수 있어.


마지막 문을 나서기 전 당신이 나를 보았어.


“또 올게.”


나도 알아. 당신이 나를 찾아올 거란 거. 그런 당신을 성숙하게 맞이하며 보내줄 앞으로의 내 모습도 알아. 당신은 방을 나섰고 나는 문을 닫았어. 이제 이 문도 페인트 칠을 좀 해야겠어. 문 손잡이도 깨끗하게 닦아내야지. 내 방을 들리는 당신의 처음과 마지막이 아름답도록.


그러니 또 와. 사랑아.






당신의 이름을 한 사랑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