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음악방송들을 보면(군인들은 정말 음악 방송을 많이 보게 된다.) 음원차트가 예전보다 매우 많아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주요 방송사와 음원 판매 사이트마다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판매되는 노래들의 순위를 매긴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차트 Top 1위~100위 곡들을 한꺼번에 다운로드하여 들었던 것 같다. 요즘은 어떨까? 객관적 수치를 기반으로 한 차트들이 많아졌지만, 주변을 보면 딱히 그들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는 현시대의 우리가 더 이상 단순한 순위라는 '팩트'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을 우리는 원한다. 잘 팔리는 노래가 아니라, 내게 맞는 곡으로 스타일링을 받길 원한다. 여기서 '스타일링'은 정확히 무엇을 한다는 말일까? 마스다 무네아키 씨의 저서인 '지적 자본론'에 의하면 그것은 '새로운 Life Style에 대한 제안'이다.
많은 사람들도 아는 것이지만, 21세기에 들어 'Design'이라는 말은 단순한 제품의 외관 꾸미기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2차 산업 때의 디자인 개념이다. 인류의 산업은 3차, 4차로 넘어오며 범주가 확장되었고, 그에 따라 Design의 패러다임 또한 넓어졌다. 3차 산업(서비스업)이 발달되었을 때, 디자이너들의 역할은 소비자들의 니즈(Needs)를 모아 재화 혹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4차 산업(정보 산업)이 생겨나면서 어떻게 변했을까? 정보가 넘쳐나게 되었고, 소비자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파악아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Design의 역할이 나온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를 '제안'이라고 부른다. 아주 낯선 개념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내가 어떤 물건을 만들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이 원하던 것임을 깨닫는다.
즉, 21세기의 디자인은 고객들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캐치하여 제품 혹은 서비스로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흔히 보이는 말인 Innovation인 것이다. 저자인 마스다 무네아키는 그가 만든 츠타야 서점으로 그 라이프 스타일 혁신을 보여주려 했다. 음악, 영화, 책을 합친 MPS(Multi Package Store)를 구현함으로써 말이다. 그는 다른 서점에서 쓰는 것처럼 십진분류법으로 책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 혹은 그 내용에 따라 22종으로 새로운 분류법을 만들어 책을 진열했다. 고객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려 한 것이다.
'Life Style' 제안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우리 근처에 많은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그가 만든 것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었다. 새로운 플랫폼이었고 이 조그만 기계는 인류의 생활 방식을 10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바꾸어버렸다.
Human Scale 단위로 침투한,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이 결국 혁신(Innovation)을 부른다.
광고를 통해서도 이 경향을 알 수 있다. 스마트 기기 광고는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화질이 어떻고 카메라 화소가 어떻고도 중요하지만 요즘의 광고 트렌드는 이 기기를 사면 당신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어필하는 것이다. 가전제품도 마찬가지이다. LG에서 선보이고 있는 시그니처 가전제품 시리즈나 무선 청소기인 코드 제로 A9이 그 예시다. ING 생명이 오렌지 라이프로 사명을 바꾼 이후에 낸 광고에서도 자신들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보다 당신의 삶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가.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 자본론』을 기업인 혹은 판매자에게 지침을 주려고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생산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최상의 가치는 '고객 가치'이다. 고객의 가치, 편안함을 극대화하려면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하고 이 정보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idea를 내어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지적 자본이 나온다. 이 자본은 어떠한 재화의 개념과는 다르다. Big data를 정리하여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낼 수 있는 Concierge(안내원)의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문득, 소비자들에게도 무엇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의문이 든다. 우리는 과연 저들이 제공하는 사과를 아무런 의심 없이 먹어도 되는 걸까? '의심'. 이것이 소비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일 것이다. 이 의심은 제안을 곧이곧대로, 수동적으로 수용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뭔지. 저것(제품이든 서비스든)이 내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지적 자본을 쌓아야 하는 건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필수적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키워드는 '고객 가치, 라이프 스타일 제안, 자유'이다. 글을 쓰다 보니 세 번째 키워드 '자유'에 관한 언급이 빠진 것 같다. 『지적 자본론』에서 자유는 다양한 동의어를 품고 있다. 창조성, 클라우드, 병렬형, Human Scale, 질적 향상, 협업... 지적자본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정보가 빠르게 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Human Scale의 병렬형 조직 운영이 클라우드에 있어 질적 향상에 연결된다는 것이다.
잠시 이야기가 새었지만, 아무튼 저자의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현재에도 유효하다 생각한다. 처음에 말한 음원 차트 얘기다. 옛날엔 나도 멜론 차트에서 참고해서 노래를 들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유튜브에 로그인을 하면 알아서 내가 그동안 듣던 곡들과 유사한,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곡들을 찾아다 주기 때문이다. 순위라는 'Fact'만으로는 충분함을 느끼지 못하던 내게 이 곡 추천들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
정말 오랜만에 나를 고취시키는 책을 만났다. 눈이 뜨이면서 생각이 넓어지는 그 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있어 기뻤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