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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출신 대표님의 발표(2)

by 대한


‘대표님, 이건 장점이 아닙니다. 균일한 분산 공정을 개발한 것은 장점이 아니고 그러한 공정을 통해서 균일한 특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죠. 그런데 고객의 입장에서는 균일한 특성보다는 공정 수를 줄여서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춘 것이 아닐까요….’ 발표자료 점검에서 나온 이야기다. 고객에게 직접 설명하는 자료라면 고객의 입장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고객은 대체로 본인이 원하는 품질의 제품을 가성비 있게, 빠른 납기로 받기를 원한다. 게다가 보기 좋고(디자인 우수), 선택의 여지가 많고(다양한 옵션), 다른 기능을 추가하여 부품 수를 줄이거나 공정을 생략할 수 있다면 좋아한다. 요즘에는 그런 내용에 스토리를 입혀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내면 금상첨화가 된다. 그래서 환경 문제나 환경 보호, 에너지 절감, 민원 등의 사회 이슈에 대응 등의 이야기를 같이 해서 고객을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어야 한다.

반면에 발표자료는 고객이 아니라 심사위원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심사위원은 고객일 수는 있지만 엄밀하게 보면 사업이 추진하는 문제에 대해 정답을 채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사업에서 요구하는 정답을 가정하고 그 모범답안에 맞도록 내 발표자료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기 주관성이 뛰어나고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큰 경영자일수록 자신의 의견과 모범답안 사이에 갭(차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간혹 이러한 갭이 신선한 충격을 주어 의외의 가능성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은 아주 낮다. 대부분 심사위원과 다툼을 벌이거나 내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다가 보니 나타난 현상이라고 애써 자위하는 일로 마무리하곤 한다. 객관식이라면 틀린 것이 당연시하게 여기지만 주관식의 경우는 출제자의 의도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뭐가 틀렸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피드백이 중요하고, 사전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과 사전 검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자신이 주장하려는 내용을 대폭 줄이고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이 과제의 차별성이 무엇인가요? 이 과제가 갖는 이 사업과의 정합성은 무엇일까요? 이 과제의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기대효과는 무엇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대표님이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사업 기획자나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대표님이 좌불안석이다. 자신이 설정한 방향이 틀렸다는 사실과 이미 초안을 제출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얼른 수정을 해서 다시 제출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다시 제출해야겠다는 마음에 미팅을 서둘러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알고 나면 사실 작성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본인도 공학박사이고 본인이 애써 개발한 기술적 내용을 본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좋은 구슬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실이 있으면 꿰어 나타내기가 쉬운 것이다.

얼마 전 그 대표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9대 1의 경쟁률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을 했는데 선정되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심사 경쟁은 선거와 비슷해서 결국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다. 내가 잘해도 상대가 강하면 떨어지고 내가 약해도 상대가 더 약하면 선정된다. 경쟁률이 높아도 이야기가 길어질 뿐 결국 내용은 동일하다. 이번에는 상대의 경쟁력이 조금 낮았다는 이야기다. 이번 사업을 통해서 그 대표님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해 본다.

마침 국가적으로도 선거철이다. 선거의 결과를 떠나서 이번 선거로 우리나라 국민이 더한층 성숙해지고, 모든 구성원이 마음과 뜻을 모아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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