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박사 출신의 어느 스타트업기업 대표님이 개발사업계획서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만났다. 공학박사답게 사업의 취지와 배경에 걸맞은 내용으로 꼼꼼하게 잘 작성하셨다. 내용을 보면 선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 더 좋은 점수를 받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의견을 보태기로 했다. 목적에 따라서 보고서의 내용을 변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첫 번째는 전문성에 대한 검토다. 전문 분야의 전공자가 만든 개발계획서라서 전문 용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 도표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소위 ‘보고서가 있어 보이는’ 점은 있지만, 전공 분야가 일치하지 않는 심사위원이 있다면 보기가 조금 난해한 부분이 있다. 이번 개발 사업용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으나 일반인을 위한 자료를 만든다면 조금 수준을 낮춰서 쉽게 표기하고 너무 전문적인 내용은 가급적 그림과 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나머지는 생략하여 알기 쉽게 표현하면 좋겠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신문 기사는 중학생이나 혹은 60대 정도의 문화 이해력이 있는 사람에게 맞춘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번째는 설명 내용에 대한 상세함에 대한 것이다. 사실 우리 고객들은 직접적으로 와닿는 최종 결과에만 관심이 있고 중간 과정이나 공정에는 그다지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발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고생해서 만든 공정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개발 과정이나 공정을 세세하게 소개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은 고객 신뢰도를 올리는 측면에서 확실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애써 개발한 내용이나 공정 노하우가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사진이나 개발 결과를 같이 곁들여 설명하는 것은 동종 업계로 하여금 경쟁자가 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개발계획서를 포함해서 모든 자료에는 원료나 공정 중심의 자세한 설명은 대폭 줄이고 최종 결과나 우수한 특성 중심으로 표현하되 반드시 필요한 수준의 내용만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세 번째는 숫자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까 하는 것이다. 특성을 나타내는 숫자는 개발자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1,500 GPa의 강도를 갖는 재료를 개발했어.’ ‘300mG까지 민감도를 낮췄어’ 이런 숫자들은 해당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고 의미에 대해서 감동을 받거나 할 수 있지만 전문 분야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 수치가 의미하는 혁신성을 잘 느끼지 못하여 직관적으로 잘 안 와닿을 수 있다. 따라서 숫자는 단순히 숫자로 표기하기보다는 퍼센트(%)로 표현하여 기존 재료 대비 몇 %가 향상(또는 상승)했는지를 표현하는 것이 더 직관적이고 이해가 쉽다. 특히나 숫자가 보안이 필요한 경우는 더더욱 노출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개발사업계획서의 경우는 전문적인 경우이므로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자료의 경우는 민감한 숫자를 전부 없애서 불필요한 노출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일반 소개 자료일 경우에는 가급적 민감한 공정의 노출이나 데이터의 표기는 억제하고 ‘250% 향상’과 같은 긍정적인 표현을 자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개발사업계획서에도 퍼센트로 표현된 내용을 슬쩍슬쩍 끼워 놓으면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네 번째는 보고서 디자인에 관한 것이다. 공학을 전공한 분들은 보고서의 디자인보다는 내용의 완성도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은 상대적으로 디자인에 신경을 덜 쓴다는 말이다. 화면으로 검토를 끝내는 것보다 사업계획서를 출력하여 눈으로 외관이나 오자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쪽수 표기도 꼭 해야 한다. 그림이나 표의 배치도 어떻게 표현하느냐,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이해도가 달라질 수 있다. 잘 작성된 보고서의 경우 제목만 모아서 읽어봐도 이해되도록 정렬이 잘 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이번처럼 기승전결의 구체적인 내용이 뒷받침되는 경우는 검토가 수월하다.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는 검토 자체가 어려워진다. 기초가 튼튼해야 높은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것과 같다.
아무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