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에 있는 회사에 근무할 때 가끔 영업부 직원을 따라 경주 고객사에 갔었다. 같이 간 친구 중에 일부는 갔다가 오는 도중에 복권 파는 집에 들러 복권을 산다. 그곳이 복권명당이라고 한다. 복권을 사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얼마나 복권 사는 사람이 많던지 그 가게에서 샀지만 낙첨된 복권을 모아 별도로 추첨해서 명절 때마다 소형차를 선물로 주기도 한단다. 처음에는 가게 이름 때문에 소문이 나고,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당첨 건수도 올라 복권 명당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확률과 관련 있는 것들은 모수가 많아지면 당연히 당첨 확률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운에 의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위에는 어느 정도 데이터가 모여야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너무나 많다. 1년에 100만 명 중 하나로 발생하는 빈도라면 인구 10만 명의 도시에서는 10년에 한 건 발생할까 말까 하는 데 인구 1,000만 명의 도시에서는 매달 1건 이상씩 발생하는 것이다. 또 모수가 많이 모이면 정확해지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의료분야이다.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병은 발견하기도 어렵고 치료하기도 어렵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질병이 발견되고 또 각종 약품과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관련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사들도 단시일 내에 양성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국가고시를 통과하여 의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상당 기간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등을 거쳐 독립하기 때문에 그동안은 선배 의사의 지도와 조언을 받으면서 경험을 쌓는다. 그러고 나서도 어느 정도의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른바 용하다는 명의로 소문나기 위해서는 또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의사가 되는 나이나 개업의가 되는 나이도 증가 추세에 있다.
이러한 지식을 쌓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그동안에 실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 AI의 도입이 아닐까 생각된다. 관련 지식을 모아 제공하는 것은 AI를 따를 수가 없을 것이다. 법과 관련된 분야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에만 의존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게 변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구 대비 의사 수가 우리나라 인구만 보면 결코 적지 않다. 인구가 매년 50만 명에서 100만 명이 새로 태어날 때 매년 3,500명의 의사가 배출되었다. 현재는 20만 명의 인구가 태어나는데 5,000명이 넘는 의사가 새로 배출된다. 물론 당장은 의료 수요가 많은 노령층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의료 수요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의사는 정년도 없고 아무런 제한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고령인구가 대부분 없어질 30~40년 후에는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넘쳐나는 의사 문제로 우리 후손들은 또 한차례 홍역을 겪을 수 있다. OECD 평균은 2020년 기준 10만 명당 13.6명인데 이 추세로라면 우리나라 의사 수는 OECD 평균의 거의 2배인 25명을 넘게 된다. 만일 출생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면 그 숫자는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물론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현재의 노년 세대가 죽을 때까지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대부분 세대 간의 문제를 품고 있다. 연금 문제가 그렇고, 복지 문제가 그렇고, 또한 의료문제도 그렇다. 이제라도 강압적, 고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긴 호흡으로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대가를 우리 후손들이 짊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문제는 정원 확대와 함께 첨단기술의 활용을 위한 노력이 함께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철밥통을 깨트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법률과 교육을 포함한 사회 기득권인 대부분 분야에 해당된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의 철밥통을 스스로 깨뜨릴 수가 있을까. 그러니 더더욱 대화와 숙의가 필요하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보니 동네마다 복권명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복권에 관심이 없다 보니 보지 못했던 것이다. 가는 동네마다 복권 명당이 있다는 것은 결국 복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다. 혹자는 우리 모두를 복권에 의존하도록 하는 여러 요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재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회의 어른이란 이런 때 방향을 제시하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미래의 비전을 밝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의 지식과 관념에 사로잡혀 어른을 무시하며 키우지 못했고 스스로도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강호에는 인물도 많고 인재도 많다. 어디엔가 강태공처럼 긴 세월을 버티면서 세상에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잠룡이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그 큰 나무와 같은 어른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