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욕으로부터의 벗어남
전남 곡성군 옥과면에는 백제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 관음사가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내륙에 있는 관음 성지이자 백제 시대 사찰로는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이곳에는 5개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 두 번째 이야기다.
곡성 관음사에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조성된 석조 어람관음(魚籃觀音)보살상이 있다. 관음보살은 원래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는데 대승경전의 하나인 ‘묘법연화경(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소개되고 있다. 이 부분은 독립하여 ‘관음경’으로 부를 만큼 동북아시아에서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관세음보살이 크게 유통되던 시기가 당나라 초기인데 그때 당태조의 이름이 이세민으로 이름에 ‘세(世)’라는 글자가 들어가 이것을 부르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세’라는 글자를 빼고 ‘관음보살’이라고 줄여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전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33가지 형태로 변화하여 중생을 구제하는데, 대표적으로는 눈과 팔이 천 개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과 석굴암의 정교한 조각의 보살상 중 하나로 유명하게 된, 얼굴이 11개인 ‘십일면관세음보살’이 있다. 이것의 구체적인 중국판 변형 중의 10번째 관음보살이 잉어가 든 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의 어람관(세)음이다.
중국에서 어람관음은 28번째 마랑부관음과 유사한 전설을 갖고 있는데 그 전설은 아래와 같다.
당나라 현종 때, 살아있는 물고기 바구니를 든 아름다운 미녀가 산시성 금빛 해변에 찾아와 물고기를 파는데, 잡아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풀어놓아 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팔려고 해서 팔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반해 청혼했다. 청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까닭에 그녀는 "보문품**을 하룻밤에 다 외우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라고 조건을 제시했으나, 다음날 아침에 20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보문품"을 다 외웠다. 20명의 남자와 결혼할 수 없었던 처녀는 "금강경***"을 하룻밤 새에 외울 것을 새로 제시했고, 이것도 외우는 사람이 열 명이나 생기자, 그다음 날에는 경전의 양이 훨씬 많은 "법화경"을 외우도록 요구했다. 그러자 그다음 날에는 단지 ‘마랑’이라는 사람만이 그것을 외울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처녀는 마랑을 신랑감으로 정하고 그다음 날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결혼식 날 아침에, 그 아름다운 물고기 장수 처녀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다. 마랑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외운 경전을 매일 독송하면서 점차 불교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
몇 달 후, 한 스님이 갑자기 문을 찾아와 그 물고기 바구니를 든 소녀가 실제로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역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대승경전(불경)을 암송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반신반의하자 마랑은 스님의 지도에 따라 관을 열었다. 관 속에서 금빛 쇄골 한 쌍이 있었다. 그래서 생선 바구니(어람) 속의 미인은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설이 마침내 퍼졌다.
중국에서의 어람관음상은 물고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 있거나 혹은 힘차게 헤엄치는 잉어를 타고 있는 형상이다. 일본의 것도 유사하다. 그런데 곡성 관음사에 있는 석조어람관음상은 잉어를 꽉 잡고 있는 형상이다. 심지어 등 뒤에는 힘차게 꼬리 치는 꼬리지느러미가 새겨져 있다.
석조어람관음상은 우리나라에서 곡성 관음사가 유일하지만 그림으로는 양산 신흥사가 유명하다. 섬세한 선으로 표현된 그림으로 아마도 비단에 그려졌다면 지금쯤 일본에 있을 것이다. 다행히 사찰 벽면에 그려져 있었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사찰의 벽을 장식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아무튼 어람관음상은 우리에게 가장 질기고 깊은 욕망 중의 하나인 색욕(정욕)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암시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도 숨이 끊어지면 결국 하루아침에 송장이 된다. 욕망이라는 그물에 잡힌 물고기가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입으로 들어가듯이 그러한 욕망(색욕)에 사로잡히면 결국 윤회의 덫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수많은 화마와 고난 속에서도 아직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나에게까지 모습을 나투신 어람관음보살의 뜻을 새겨서 더 열심히 정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 잡아본다.
* 대승경전 중에 가장 늦게 전래된 경전으로 번역본에 따라 27품 또는 28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글 법화경의 경우 글자수는 7만 자이다.
** "보문품"은 대승경전인 묘법연화경(법화경)의 한 장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줄임말이다.
*** 금강경은 대승경전인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줄임말로 32품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