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융·복합형 인재와 오타쿠형 인재

by 대한


학교 다닐 때 나를 되돌아본다. 그리 활동적이지는 않았지만, 공부하는 것은 좋아했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싫어하는 과목은 없었다. 대부분 과목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졌다. 공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다음에도 그랬다. 소위 ‘국영수’ 필수 과목이나 물리-화학-생물(아, 고등학교에서는 생물이 없었다)의 과학 과목은 물론이고 웬만한 인문 과목이나 음악, 미술 등의 예술 과목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심지어 역사 과목은 시대를 부문하고 좋아하기까지 했다. 대부분 과목을 좋아하다가 보니 싫어하는 과목이나 포기하는 과목이 없어, 그런 행동을 하는 다른 친구들이 유달라 보이기는 했다.



공고의 경우 전체 교과목의 반 정도가 실습으로 채워져 있고 나머지는 인문 과목과 이론 과목(그 당시 공고에는 실습을 제외한 모든 전공과 관련된 과목을 그렇게 불렀다)으로 구성되어 강의로 구성되는 교과가 귀하기는 했다. 몸이 둔해서 실습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을 핑계로 싫어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전공 관련 이론 과목도 다 좋아했으니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반면에 자신의 한계도 잘 알았다. 문예반에 가서 보니 나보다 훨씬 글도 잘 쓰고 생각의 깊이가 깊은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 되고, 도서부에 가서 보니 책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박학하고 깊이 있게 읽어내던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것들은 내가 둔했던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음악, 미술을 비롯하여 영어와 수학 등 전 분야에서 나타났다. 심지어 몇몇 친구는 그 당시에 보기 어려웠던 영화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과 관람 후기를 장시간 들려줘서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는 팝송에 대해 계보와 곡의 배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식견을 자랑해서 나의 마음을 위축시켰다. 심지어 그 친구는 외국 가수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부르기도 잘했다.




그런 기억을 되돌아보면 학교 성적을 제외하면 나는 그저 평균 수준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래서일까. 연습장(노트)을 들고 많은 사람에게 ‘삶에 대해서’ 묻고 다니곤 했다. 왜 사는지, 어떤 것이 행복한 것인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큰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시작한 메모 습관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다듬게 되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또 그렇게 묻고 다니다가 불교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불교가 나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 주고 큰 영향을 주었다.




또 다른 기억은 책과의 만남이었다. 도서부 가입과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책을 통해서 옛 선인들과 위인들, 그리고 그 시대의 석학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을 읽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독서 습관과 책과의 만남에 대한 즐거움이 오랜 세월 동안 내 부족함을 채워주고 다방면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내 저변을 넓혀 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거부감이 없이 전분야를 좋아했던 까닭에 여러 분야 책을 읽었던 것은 남에게 박학하게 보이는 데 성공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우리 속담에 ‘열 가지 재주 있는 사람이 빌어먹는다’는 것이 있다. 이 말은 한 가지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한 가지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곳저곳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런 방식이 잘 맞았다. 공장에서는 같은 제품을 계속 생산 중이었고, 제품은 같은 형태로 진화했던 시절이었다.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를 잘 만들면 됐고, 전자회사는 전자 제품을 잘 만들면 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일본에서 ‘파이(π)형 인간’의 중요성이 설파되기 시작했다. ‘파이(π)’의 가로획은 상식을 뜻하고 세로로 뻗은 두 기둥(儿)은 2개의 전공을 뜻했다. 즉, 전공이 하나가 아니라 2개의 전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으로 하면 융합을 뜻하는 말이었다. 심지어는 세로 기둥이 3개인 ‘3파이형 인간’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지금은 매우 보편적인 생각이지만 40년 전에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나에게는 한 줄기 희망으로 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지리 과목 담당이었는데, 어느 날 ‘유역 변경식 댐’에 대해서 북한의 장진강, 부전강 수력발전소를 예로 수업하던 중이었다. 내가 손을 들어 최근에 북한이 중국과 합작하여 장진강 하류 지역인 압록강 수계에 있는 운봉댐 상류에 새로운 댐을 건설하려고 하는 기사가 있는데 그 댐이 건설되면 미칠 혜산 지역의 지하자원 개발과 관련된 질문을 했었다. 선생님은 그 최신 사례에 대해서 모르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혜산시의 지하자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셨는지 아니면 중학교 1학년 생이 묻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하여 적당히 얼버무려 대답했는데 대신에 학기말 성적표의 회신란에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 까닭에 다양성에 대한 내 생각이 다소 위축되었지만 ‘파이형 인간’이라는 주장이 나온 이후 내가 갖는 다양성에 대해 어느 정도 자존감이 회복된 것이다.




세월은 언제나 바뀐다. 현재는 융합형, 복합형 인재가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오덕후(오타쿠)형 인재(한 분야에 강하게 집중 또는 열중하는 사람)가 각광받을 때가 온다.(사실 오덕후형 인재는 언제나 각광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융·복합형에만 집착할 일은 아니다. 모든 것에는 각각의 쓸모가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고집이 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알 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어느 한 가지를 고집하는 것은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맞을 수 있지만 다른 경우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세상은 변한다. 고정된 실체는 없다. 영원한 진리도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 속에서 보니 오타쿠도 파이형 인간도 결국에는 다 필요한 존재다. 융·복합형 인재도 오타쿠형 인재도 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어느 한 가지를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군다나 그 ‘고집의 확신’이나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남에게 사상을 강요하는 것은 더더욱 옳지 않은 방법이다. 세상이 다시 오타쿠의 세계로 바뀌더라도 나는 내 자신을 잘 알아차리고 ‘주워진 조건에서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빛이 어두울수록 밝은 지혜는 더 빛날 테니 걱정은 매어놓고 오늘도 전진, 전진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버릇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