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는 『트럼프 2.0 시대』 (박종훈, 글로퍼스, 2024)의 179~189쪽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 중에 반면교사를 삼아 우리가 심사 숙고해야 할 내용이 있어 올립니다. 많은 분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고 발전의 길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2024년 7월 영국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에서 야만의 나라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나을 정도로 심각한 폭동으로, 여러 나라가 영국 여행 자제령을 내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반난민 극우 폭동이라고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영국이 급속하게 가난해지면서 실업자가 된 청년들이 외국인 이민자와 난민에게 분노를 풀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폭동은 정말 심각해서 경찰차를 불태우거나 전복시키고, 경찰을 향해서 불꽃이 달린 로켓을 쏘기도 했고, 지나가던 차들을 막고 운전자를 확인해서 백인이 아니면 어떻게든 멈춰 세운 다음 부수거나 불을 지르기도 했다. 영국 정부가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폭동을 선동한 천여 명을 체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일단 대규모 폭동은 잦아들었지만, 인종 차별 범죄가 급증하고 여성들이 야간 외출을 극도로 꺼리는 등 지역 사회의 두려움이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폭동은 왜 일어나게 된 걸까? 폭동의 발단은 어린이 댄스교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었다. 2024년 7월 29일 영국의 북서부에서 17살 청년이 흉기 난동으로 어린이 세 명이 숨지고 열 명이 다쳤다. 범인이 무슬림이라는 추측이 SNS로 퍼지면서 폭동 사태가 일어났다. 근거 없는 추측만으로 영국 전역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 법원이 원칙을 깨고 이 청년이 르완다 부모에게서 태어난 영국 웨일스 출신이라고 신원 공개를 했다. 종교가 정확하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르완다는 개신교가 50%, 가톨릭이 44%이고 이슬람이 2%가량이므로 무슬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그러나 어차피 이민자의 자녀가 아니냐는 여론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폭동이 거세졌다.
이번 폭동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SNS를 통해 공격 대상을 특정하고 실제로 이민자 센터나 수용 시설 30여 곳을 공격했고, 20여 개 도시로 확산되면서 그야말로 전국에서 24시간 폭력 시위가 이어졌다. 근거 없는 정보가 확산되고 시위대가 다음 공격 대상을 알린 수단이 SNS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영국총리가 거짓 정보 확산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며 SNS를 비판하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가짜 뉴스에 속아서 반난민, 반이민 폭동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 이 폭력 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영국이 최근 너무나도 가난해졌다는 점이다. 그 가난의 원인이 유럽 연합(EU) 가입 때문이라고 오판하는 바람에 오히려 영국 경계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하는 브렉시트라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것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다.
브렉시트 이전 영국은 난민의 최종 종착역이었다. 많은 난민이 자신들이 살던 중동 지역이나 아프리카를 떠나 처음 유럽으로 건너올 때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영국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일자리가 많은 편이었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았다. 영어를 익히고 나면 자녀들이 다른 나라로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존재했다.
영국인이 분노한 이유는 유럽 대륙 국가들이 영국으로 향하는 난민을 막아 주기는커녕 오히려 영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 대륙 국가들에 대한 영국의 뿌리 깊은 불신은 브렉시트가 일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정작 브렉시트 후에 영국 경제난이 더더욱 심각해졌다.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연합과 무역 장벽이 생기는 바람에 통관 절차가 복잡해지고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유럽 연합 국가들이 영국을 공급망에서 아예 배제해 버리는 경우가 늘었고,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 지역 본부를 영국에서 유럽 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이 늘어났다. 심지어 영국 기업조차 본사를 유럽 본토로 옮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브렉시트 전만 해도 여러 EU 국가에서 많은 인력이 들어왔는데, 브렉시트로 인력 공급이 안되다 보니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의 경계 성장률이 15년 동안 2~8% 감소한다고 예견했고, 영국 예산책임처OBR는 영국의 GDP가 해마다 4%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의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2007년에 5만 달러가 넘어 당시 미국의 4만 7000달러보다 많았지만, 2022년에는 4만 6000달러밖에 되지 않아 미국의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7년 동안 영국은 평균적으로 가난해졌을 뿐만 아니라 빈부 격차도 훨씬 더 커졌다. BBC는 영국의 절대 빈곤이 3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지는 2023년에 절대 빈곤 상태의 인구가 1,200만 명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에서 절대 빈곤이란 중위 소득의 60% 이하를 뜻하는데, 식량, 주거, 안전한 식수 등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상황이 매우 심각한데. 가디언지는 영국 어린이의 3분의 1 수준인 430만 명이 빈곤 상태에 빠졌다고 우려했다.
영국이 전체적으로 가난해지고 빈부 격차가 계속해서 커지는 것이 이번 폭동 원인의 하나다. 영국의 주간지 스펙테이터의 기사를 보면 폭동이 일어난 20여 개 도시에서 지난 13년 동안 일자리 상황이 개선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로더럼의 경우 실업률이 16%에서 18%로, 하틀풀은 21%에서 23%로 증가했다. 하틀풀은 인구 중 4분의 1이 실업자인 셈이다. 청년 실업률로는 거의 두 명 중 한 명이 실업자인 상황이다. 폭동은 소강상태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문 제가 되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다.
이민자 문제도 심각하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민자와 난민 유입의 반대였는데 브렉시트 이후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와 난민이 오히려 폭증했다. 영국 정부의 이민 통계를 보면 합법적 이민자의 경우 브렉시트 직전인 2015년 65만 명(EU 출신이 아닌 이민자는 36만 명)이 2022년 120만 명으로 무려 2배 가까이 증가(EU출신이 아닌 이민자가 93만 명으로 3배 증가)했다. 브렉시트 이전에는 유럽 연합 소속인 남유럽이나 동유럽에서 온 이민자도 많았는데, 브렉시트 이후에 이들이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가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아프리카나 중동 등에서 수많은 저임금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난민도 증가했는데 2023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6만 2000명은 영국에서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민자의 영국 입국 목적이 일자리인데 이것은 결국 영국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일자리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값싼 노동력이 대거 유입되자 이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청년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게 됐다. 기성세대는 이미 숙련 노동자거나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있는데 비해, 청년들은 경력이 없기 때문에 값싼 외국인 노동력이 들어오게 되면 피해를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영국의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고 정작 영국의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는 등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국 청년들의 분노가 계속 쌓여갔던 것이다.
이번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시위 주동자와 가담자를 엄벌하는 강경책으로 폭동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의 폭동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외된 영국의 저소득층 문제, 특히 청년 실업 문제를 풀지 못하면 영국은 빈곤과 폭동의 악순환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영국과 굉장히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경제 성장률이 크게 낮아지면서 특히 청년들을 중심으로 실업률이 크게 높아졌고, 이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만약 경제 문제와 난민 문제를 둘 다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유럽 곳곳에서 영국과 비슷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유럽의 정치 지형도 크게 요동칠 수 있는데 유럽 의회와 유럽 각국 선거에서 반이민, 반난민은 물론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극우파가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좌파와 우파 모두 이민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써 왔기 때문에 유럽 청년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극우파 정당에 투표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만일 좌파와 우파 모두 이런 청년들의 요구를 계속 무시한다면 앞으로 극우파가 정권을 잡는 경우가 늘어나 이민에 대한 장벽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세계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세계화의 물결마저 더욱 크게 후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트럼프의 당선은 유럽의 극우 세력을 더욱 자극한다. 당장은 유럽의 극우파가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반난민, 반이민 정책을 앞세운 트럼프가 당선된 것을 환영하겠지만 트럼프가 첫 임기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게 되면 유럽도 경쟁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쓰며 미국과 대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제 질서의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화 바람 덕분에 고속 성장을 해 왔던 만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자국 중심주의로 선회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국가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민 정책에 대한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미 자기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부족한 노동력을 해외에서 들여오는데 거부감이 적지만, 외국의 값싼 노동력과 경쟁해야 하는 미숙련 노동자인 청년들은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인 만금 벌써부터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데. 지금 한국 기성 정치권은 필리핀 가사 도우미와 외국인 고용 허가제 등 온갖 방식으로 해외 노동력을 수입하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처럼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언젠가 영국과 같은 큰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첫 단추부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줄어드는 노동력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