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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덕후 공PD Jun 13. 2020

야마모토 타로 -1부-

#신흥후퇴국_일본  #불편한_진실

윗사람 또는 우에노 히토(上の人)     


  21세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3~4년쯤의 일입니다. 일본과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이었죠. 동종업계의 동년배 일본인과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게 됩니다.


  쉽진 않았어요. 외국인과의 협업이 힘든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두 회사의 이해를 조정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죠. 한 회사의 높으신 분이 “OK”사인을 내도, 다른 회사에서 “not OK”면 그걸로 “not OK”가 되는 겁니다.      

같은 일을 한다 해도 최종 목표는 다를 수 있죠. 누구는 해외와의 협업 실적이 더 중요할 수 있고, 누구는 공적보다는 실익이 더 중요할 수 있으니까요.   


  서로의 문화가 달라 충돌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죠.

한국 회사는 한국 회사만의 일처리 방식과 절차가 있고, 일본 회사는 또 그들만의 고유한 직장문화가 있으니까요.      

  정작 힘든 건, 어느 회사에서, 다른 회사의 사정과 문화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나올 때 일어납니다. 놀랍게도 한국 회사에서도 일본 회사에서도 언제 어디선가 꼭 그런 사람이 등장하죠. 그것도 ‘높으신 분’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우리만 ‘높으신 분' 또는  ‘높은 사람'이란 표현을 쓰는 게 아니구나.

  일본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우에노 히토(上の人; 윗사람, 높은 사람)'

  '에라이 히토(偉い人;윗사람, 잘난 사람)'     


  한국이나 일본이나 좋은 뜻으로 쓰는 표현은 아니죠.

  

  언제나 이분들이 말썽이었습니다.

  실무자끼리는 서로의 '윗사람'과 '우에노 히토'를 부끄러워했죠.

한국인과 일본인 실무자들은 각자의 회사에 '공동의 적'을 두고 의기투합하기 일쑤였죠. 한국에서는 소주에 곱창전골을 먹으며 '윗사람'과 '우에노 히토'를 욕했고, 일본에서는 꼬치구이에 일본 소주를 먹으며 욕했습니다.

  

  그렇게 가까워진 일본인 친구들은 지금도 여전히 좋은 친구입니다.       

좋은 친구들은 또 귀신같이 좋은 친구들을 소개해줍니다.

  그렇게 연이 닿은 한 일본 기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인이 걱정하던 한미 FTA     


  2004~5년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가 상당히 진행된 시점이었죠.

  ‘잃어버린 10년'이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에 돌입한 때였으니까요. '잃어버린 20년'이 되어간다는 공포감이었습니다.


  그래도 국가 전체 GDP와 1인당 GDP에서 한국과 일본의 비교는 큰 의미가 없었죠. 일본은 여전히 1인당 GDP 3만 달러 후반 대였죠.(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게 문제지만) 한국은 2만 달러대 진입이 목표였으니까요.

  일본은 겉으로 보기에, 기세는 꺾였다고 해도 도무지 따라잡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경제 선진국이었습니다.      


  새 친구는 경제를 전공한 미디어 종사자였습니다. 경제 전문지 기자였죠.

  당시 그 친구 최고의 관심사는 '한미 FTA'였습니다.      

  한국에서 일반 대중에게 아직 한미 FTA 논의가 본격화되기도 전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틈만 나면 한미 FTA를 어떻게 전망하냐고 물어댔습니다.

솔직히 놀랐죠. 한미 FTA는 고사하고 FTA 자체를 잘 몰랐으니까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가 체결한 북미지역의 FTA 이후, 멕시코의 경제가 급속히 몰락했다는 정도. 한국 최초의 한 칠레 FTA 이후, 한국 농업계의 타격 정도가, 알고 있던 FTA 지식의 전부였으니까요. 나도 미디어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스스로 생각보다 무지하다는 강렬한 자각을 했습니다.      


  일본인 친구는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이었습니다.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신흥국이 미국 같은 슈퍼 파워와 FTA를 체결하는 것은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죠.      


"달러를 맘대로 펑펑 찍어내도 망하지 않는 경제구조의 나라  미국과 완전한 자유무역이 한국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


"우리나라(일본) 같은 경제 규모의 나라도 미국이나 EU와의 FTA 체결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데, 한국이 과연 한미 FTA를 감당할 수 있는 거야?"     

  빈정거림이 아닌 진지한 걱정이었습니다.

  일본인 친구는 한미 FTA 체결 후의 한국의 미래를 걱정했고, 그보다 더욱 심하게 일본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이제, 한미 FTA의 결과에 대해서는 전 세계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한국이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큰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요.

  15년 전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경제를 전공했고 경제 미디어에서 일하던 일본인 경제 전문 기자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신흥후퇴국 일본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빈정 상했습니다  


 몇 번이고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든 팀이 있습니다. 그 팀 팬이, 올 시즌 성적이 좋지 않다고 징징대는 모습처럼 보였거든요. 우리 팀은 한참 순위가 뒤져있는데 말입니다.


  당시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

  2005년이면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상상보다는, '대체 우리는 언제 1인당 GDP 2만 달러 시대가 올 수 있을까'를 간절히 기원하던 때였죠.

  실제 한국이 1인당 GDP 2만 달러를 돌파한 시기는 2010년대가 시작되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때, 일본인 경제 전문기자가 자국 경제를 걱정하며 했던 말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일본은 더는 선진국이 아니야. 그렇다고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도 아니지. 일본은 신흥 후퇴국이야”  


신흥 후퇴국.

물론 통용되는 경제용어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20년이 가시화되던 당시, 일본의 몇몇 뜻있는 경제학자들이 버블 붕괴로 후퇴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를 빗댄 자조 석인 농담이죠. 전 세계 선진국 중 유일하게 일본만이 경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친구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경제만이 아니야. 일본은 정치적으로도 쇠퇴하고 있는 것 같아. 아무도 사회정의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 이러다간 사회문화부문에서도 쇠퇴할지도 몰라”     


  정말 아니꼬웠습니다. 부자 주제에 조금 돈을 잃었다고,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하다니. 게다가 당대는 한국의 방송과 신문 잡지를 비롯한 문화계가 일본의 문화를 열심히 관찰하고, 때로 베끼는 것도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거든요.      

  일본에 소개되는 한국 콘텐츠라고는 욘사마의 겨울 연가. 정말 대단한 인기를 얻긴 했지만, 딱 이거 하나였습니다. 그 후로 일본이 K-POP 1세대 아티스트의 해외 주무대가 되긴 했지만요.       


  2,000년대 중·초반에 예견했던 신흥 후퇴국 일본.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본인이 이걸 모르고 있죠.



일본의 소비세가 얼마?     


  일본이 신흥후퇴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

  명백한 증거는 일본의 소비세입니다.      


  현재 일본의 소비세는 10%입니다. 물건을 사든 서비스를 구매하든 가격의 10%가 세금이죠.

  10%의 세금. 비싸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도 모든 물건과 서비스에 10%의 부가가치세가 붙죠. 일본의 소비세와 우리 부가가치세는 같은 간접세입니다.      

  소비세는 부자도 서민도 똑같이 내는 세금입니다. 그래서 이런 간접세를 얼마나 낮추느냐가 그 나라 경제의 체력인 동시 정부의 실력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부가세의 도입 이후, 거의 반세기가 흘렀지만 전혀 인상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아예 소비세가 없었습니다. 일본의 소비세 신설과 증액은 일본의 경기 하락의 시계와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1989년 버블 붕괴가 가시화되며, 일본의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집니다. 태평양 전쟁 패망 이후, 최초로 3%의 소비세가 신설됩니다.

  3%의 소비세는 큰 부담은 아니었습니다. 서민의 감각으로도 '젠장, 뭐든 조금 더 올랐구먼'하는 정도였죠.      


  경기는 계속 하락했습니다. 인플레보다 무섭다는 디플레의 연속이었죠.

  1997년이 되면 소비세가 5%로 인상됩니다.

  이제 제법 부담이 되기 시작하죠.      


  2014년, 아베 정권은 소비세를 8%까지 올립니다.

  일본인도 일본을 찾는 관광객에게도 꽤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그나마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8%의 소비세를 면제해주는 각종 정책이 속속 발표됩니다. 그전까지 외국인 소비세의 면제는, 백화점 등의 대형매장에서 1만 엔 이상의 지출을 하는 경우 정도로 제한적이었습니다.      

  아베 정권은 소비세를 면제 범위를 대거 확대합니다. 중소규모 매장과 5,000엔 이상이면 단기 외국인 체류자에게 소비세를 환급해 주는 거죠.

  하지만 일본인과 장기 체류 외국인은 해당이 안 됩니다. 단기 외국 관광객의 부담은 줄었지만, 일본인의 부담은 늘었습니다.      



소비세 10% 시대, 비극이자 희극

30년 동안 소비세가 무려 3배 이상 오른 겁니다!!!!!!

  2019년 마침내 소비세가 10%까지 늘어납니다.


  가뜩이나 디플레를 맞던 일본 내수시장은 휘청거렸죠. 국민소득이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들고 있는데, 간접세는 점점 늘어만 가니까요.



  아베 정권도 미안했나 봅니다. 그래서 일부 식료품과 음료 등 생필품 역할을 담당하는 소비재의 세율은 8%로 고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 정부의 실책이 나옵니다. 일본인에게 욕을 덜 먹기 위해 여러 부문에서 소비세 경감 안을 마련했는데, 이거 정말 물건입니다  


 살아있는 가축 거래 시는 10%의 세율이 적용되는데, 돼지고기 닭고기를 구매할 때는 8%로 경감해줍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10%, 테이크 아웃하면 8%로 경감합니다. 그런데 또 푸드 코트 등의 공간에서는 그대로 10%입니다. 그러니 일부 상인들이 푸드 코트 옆에 의자를 마련하고 거기로 손님을 유도하는 코미디가 벌어집니다.

  일본인은 포장마차를 좋아하죠. 포장마차니까 당연히 야외에 있습니다. 그런데 포장마차 안에서 먹으면 10%, 그걸 그대로 들고 포장마차 앞에 있는 벤치에서 먹으면 8%입니다.        

왼쪽 일본주, 오른쪽 미림. 둘다 술이 들어있습니다.

조금 더 가볼까요?  

  테이크아웃에 8%를 적용하니, 배달요리도 8%겠죠. 그러면 출장 요리는 어떨까요? 이건 또 10%입니다. 고객이 있는 장소로 직접 찾아가 요리를 한다는 이유죠.

  주류(술)의 소비세도 10%입니다. 요리를 하려면 미림이라는 주정이 포함된 조미료가 필요하죠. 이건 또 8%입니다.       

  의약품의 소비세도 10%입니다. 그런데 식료품 중에는 의약품이나 의약외품이 포함된 게 꽤 있죠. 일본인이 좋아하는 영양 드링크(우리나라 박카스를 생각하시면 됩니다)나 에너지 드링크요. 이게 의약품이나 의약외품이 들어있다는 표기가 되어있으면 10%지만, 없으면 8% 적용을 받습니다. 덤으로 신문을 구독하면 8%, 편의점이나 가판대에서 구매하면 10%라고 합니다.      


  일본인이 진심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죠.  


  물건이 비싸지는 것도 문젠데, 동일한 품목의 세율 적용이 왔다 갔다 하면 소비자도 힘들어지지만, 판매자와 지방국세청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가게 주인들은 어느새 파렴치한 탈세범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손님도 손님대로 헷갈립니다. 내가 돈을 덜 낸 건지 덜 내도 되는데 더 낸 건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아베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불만은 2020년 도쿄 올림픽 특수로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했으니까요.

  모두가 알다시피 올해 도쿄에서 올림픽은 없습니다. 내년에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봅니다. 만일 올해 도쿄 올림픽이 무사히 개최되었다고 일본인은 행복해졌을까요?      



소비세가 늘어나는 게 걱정이야?     


  일본의 소비세 증세는, 일본의 몰락과 궤를 같이합니다.

  마치 소비세 증세가 마치 일본 몰락의 상징 같은 느낌이죠.

  1990년 한 해 동안, 일본은 총 60.1조 엔을 세수로 거둬들였습니다.

  약 30여 년이 흐른 2018년, 일본의 세수 총액은 60.4조 엔.

  30여 년 동안 거의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경제가 제자리를 맴돌았다는 강력한 증거죠.      

  그리고 또 하나.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위의 표를 세수 별 포션을 나눠 그려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과세 구성비율입니다.

  30여 년 동안 소비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놀라울 만큼 증가했습니다.      

  1990년 소비세는 전체 세수 중 소득세는 43%였는데, 2018년 33%로 줄어듭니다.

  일본인의 소득 자체가 쪼그라들었죠. 그리고 최고소득 구간에 대한 세율이 50%에서 45%로 줄었다는 게 큰 요인이죠. 즉, 고소득자의 세금을 덜 걷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인세는 더 드라마틱합니다. 1990년 전체 세수 중 30% 넘던 법인세가 2018년 20%로 급감합니다. 물론, 일본 기업은 지난 30년간 줄기차게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세계를 주름잡던 전자기업은 지금 삼성, 애플, LG, 화웨이에 밀려 존재감조차 희미합니다.

  기업이 돈을 못 버니 법인세가 줄어들죠. 하지만 90년에 최고 37.5%에 달하던 법인세율이 18년 23.2%까지 떨어집니다.      


  소득세가 줄고 법인세도 줄었으니 세수도 줄겠죠. 어디선가 방법을 찾아야죠.

  그래서 생각해낸 궁여지책이 소비세를 올리는 거였죠.

  90년 전체 세수 중 7.6%에 불과하던 소비세가 18년에는 30%까지 늘어났습니다.

  부자들과 대기업의 세금이 줄어드는 동안, 간접세인 서민의 세금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겁니다.



불편한 진실, 누가 말할 것인가     


  지금 보신 자료는  2018년 통계입니다. 소비세가 아직 8%에 머물러 있던 시기죠.


  일본 불매운동으로 관광업이 쪼그라들고 소비세가 10%로 오른 2019년.

  감염증으로 전후 최악의 경제성적이 확실해 보이는 2020년.

  2018년보다 훨씬 서민이 부담하는 간접세(소비세) 비율을 높아질 겁니다.      


  일본 경제의 문제는 국가 전체 GDP가 아니라, 빈곤층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세금을 점점 더 많이 걷고 있는 거죠.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부담은 줄여가면서요. 이렇게 해선 일본의 미래는 없습니다.      


  일본의 정치인 대다수는 이런 사실을 외면합니다.

  언급하는 것이 득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또 어떤 정치인은 이런 사실을 잘 모릅니다. 과거 풍요로웠던 일본만을 기억할 뿐이었죠. 표를 얻기 위해선, 일본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편이 좋으니까요.

  이 불편한 진실을 잘 아는 정치인이 없을 리는 없죠. 하지만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굳이 일본인이 알기 싫은 진실을 말하는 게 행복하지는 않으니까요.


  어느 날 그러기 싫은 정치인이 나타났습니다.

  일본을 위해서 불편한 진실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그 정치인은 거리에서 직접 시민들을 만나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일본 전국의 거리를 찾아다니며, 시민들에게 일본 소득세의 진실을 알립니다.      


  그 정치인의 이름은 야마모토 타로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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