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_타로 #도쿄도지사선거
영화 [마이웨이]를 기억하시나요?
2011년 기대를 잔뜩 받고 화려하게 개봉했다 화려하게 사라진 대작입니다.
주연만 해도 한·중·일의 특급배우,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이었죠.
영화 [마이웨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일제에 강제 징집당합니다.
그는 일본이 몽골 할힌골에서 벌인 소련과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소련의 굴라크 수용소에 끌려갔죠.
독소전쟁에 소련군 병사로 다시 끌려가고 거기서 독일군 포로가 됩니다.
이번에는 독일군이 되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에게 목숨을 잃는다.
뭐 이런 대!우!주!적! 상상력이 돋보인 대작입니다.
역사덕후와 특히 밀리터리 덕후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 건 말할 것도 없죠.
이 영화에서 강제징집당한 장동건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일본군이 있죠. 뭔가 낯이 익은 인물입니다.
영화 [배틀로얄]
21세기로 막 접어든 무렵의 2000년.
당대는 일본 영화의 예술적 결기와 완성도가 높던 시절이었죠. 특히 소재의 제한 같은 게 거의 없었어요. 당시의 한국인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소재를 과감히 다루는 대중예술작품이 많았습니다. 2010년대의 일본 대중문화와 비교하면, 대단한 시절이었죠.
바로 그런 2000년에 개봉한 문제적 영화 [배틀로얄]이 있습니다.
일본의 머지않은 미래.
일본은 높아지는 실업률 등으로 극심한 사회 혼란을 겪습니다.
극단의 교육대책을 내놓죠. 학교 3학년이 되면 매년 한 한급을 선정해 섬에 가둬놓고, 최후의 1인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고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흔한 소재입니다.
제니퍼 로렌스를 전세계급 스타로 만든 헐리우드 대작 [헝거게임]과 별 차이도 없어보이고요. 하지만 배틀로얄이 먼저죠. 그것도 훨씬 먼저입니다. 중소규모의 게임개발사를 단숨에 월드클래스급으로 만들어준 배틀 그라운드의 게임장소 제한 아이디어도 배틀로얄에서 이미 봤던 거죠.
이 영화에서 비중높은 조연으로 등장했던 배우, 뭔가 일진같아보이는 근육질의 몸매에 날카로운 눈빛이 매섭지만, 의뢰로 따뜻한 구석이 있던 배우. 그의 이름은 야마모토 타로입니다.
한국 영화팬들은 [배틀로얄]과 [마이웨이] 두 작품 정도가 가장 기억이 남을겁니다.
특히 그나마 최근 영화였던 [마이웨이]의 비열하고 신경질적인 일본군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겁니다.
그런데 야마모토 타로는 패션잡지의 표지모델로 자주 콜업될 정도로 꽃미남이었습니다.
훤칠한 이목구비. 보통 일본 남성과 다른 다부진 체격. 선굵은 연기도 척척 소화. 너무도 당연히 일본 최고수준의 기획사에 소속되어 승승장구합니다.
배우 경력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최고의 보증수표인 NHK의 대하드라마에도 주연급으로 캐스팅되는 등, 대형배우로 성장해 갈일만 남았던 야마모토 타로.
그런데 영화경력은 2013년 [비밀애(秘愛)]로 끝을 내립니다. 그동안 활약했던 모든 예능 방송에서도 하차하게 되죠.
그리고 얼굴도 변합니다. 여전히 잘 생겼지만, 20~30대의 근육질 꽃미남과는 거리가 먼 아재의 얼굴로 변하죠.
대체 십몇 년 동안 이 남자의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야마모토는 잘 나가는 배우였습니다. 당연히 인기가 있었죠.
평생 그렇게 걱정없이 작품만 신경쓰면 잘 살아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날, 일본의 한 방송에서 사고를 칩니다. 일본인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린 거죠.
“독도를 그냥 한국에 주면 되지 않나요?”
그때부터 일본 극우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됩니다.
당시 한국에서 개념 연예인이라며 반짝스타덤에 올랐었죠. 사실은 다릅니다.
야마모토의 독도 한국 반환 발언의 핵심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한 영토가 맞으니 한국의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말로만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극우들의 찌질한 점을 비판한 거죠.
“한국은 독도의 역사교육도 그렇고, 실제 독도에 경찰 병력이 상주하며 영토를 지키고 있어, 분명한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 우익은 입으로만 떠들고 있다”
“그들에게 독도란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영토가 아닌, 정치적 구호로만 보이는 게 답답하다.
정말 자신들의 영토라고 생각한다면 방어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사실 그는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죠.
단순히 독도를 한국에 돌려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분명한 내용이죠.
“독도 수역의 자산을 일본과 한국이 공동관리하자. 그편이 두 나라가 전쟁까지 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역사적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자국의 고유영토라고 우기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와 극우세력을 꼬집은 것이었죠. 그렇게 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청산도 같이 할 겸 말입니다.
후일 정계에 진출하고서도 이런 말을 했죠.
“집에서 굴러다닐 시간은 넘쳐서, 독도 문제에 대해 비판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배를 타고 나가 뭔가 액션을 취해!”라며 극우세력에 대해 일갈하기도 했죠.
이 해프닝이 야마모토를 정계로 이끈 직접적 요인은 아닙니다. 그건 21세기 일본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였죠. (이 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으로 보통 사람 또는 연예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은 놀라운 복원력이 있습니다.
자연을 등지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세계에도 놀라운 복원력이 작용합니다.
정치가 특히 그렇죠. 일본의 정치, 한줌의 극우세력이 1억2천만의 일본인의 미래를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쥐락펴락하는 모습에 진저리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일본 정치에 복원력으로 작동하는 거죠.
이들은 2016년~17년 겨울 광화문을 가득메웠던 촛불에 강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옆 나라인 한국이 하는 것을 왜 일본은 하지 못할까’라는 작은 자괴감이었죠. 그도 그럴것이 일본 시민사회의 레벨은 한국보다 늘 앞서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돌이켜보니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숙도면에서 압도적으로 일본에 앞서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국의 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민주화운동이 있을 때까지만해도 한국은 명백한 독재국가였죠. 일본 시민사회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걱정했고, 죽고 다치고 수배당하고 투옥당하는 한국의 시민들을 지켜좠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습니다. 일본처럼 어느날 미국이 툭하고 던져준게 아니죠.
다른 일본인은 몰라도 일본 시민사회의 개혁적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밖으로 꺼내서 말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다수의 일본인의 마음속에 ‘일본이 한국보다 한참 앞서 있는 나라. 일본에서 태어난 게 참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자연이 놀라운 복원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일본 시민사회도 복원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2018년 도쿄의 최대 번화가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 앞.
일본 사회민주당의 도쿄 하치오지시의 시의원이 거리의 연단에 올라섭니다.
일본 사민당은 유럽식의 복지를 강조하는 정당압니다. 이름에 사회주의가 들어있으니,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아니냐 오해하기 쉽지만, 세계적 신보수주의에 반대하는 진보 정당 중 하나입니다.
연단에 올라선 사민당 지역의원은 사자후를 내뿜기 시작합니다.
사토 아즈사(佐藤あずさ), NHK의 사회부 기자 출신으로 2015년 사민당 공천을 받아 도쿄 하지오지시원에 당선됩니다. 당시 일본의 반응은 별 거 없었죠. 젊은 여성정치인이라는 점을 들어 '사민당의 아이돌'이라 부르며 폄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네, 일본이나 한국이나 미디어에 바보들이 참 많아요.
일본에 '자객공천'이란 희한한 정치수법이 있습니다.
유력 정치인을 낙마시킬 목적으로 유명인, 특히 대중인지도가 높은 연예계 인사를 공천하는 것을 말하죠. 일본 정계의 대표적 구태입니다. (자객공천은 우리도 따라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자, 당시 새누리당은 명문여대 출신의 20대 신인 손수조를 전략공천합니다. 이런 것도 자객공천의 일종인거죠.)
사토 아즈사는 달랐습니다. NHK 사회부 기자시절 목격한, 일본이 뿌리부터 쇠퇴해가는 모습이 그를 각성시켰습니다. 그는 아베 내각의 실정과 부패 무능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하죠. 특히 모리토모 학원 비리를 성토합니다.(https://brunch.co.kr/@pdkorom/8 참조)
그는 “아베를 일본 시민의 힘으로 몰아내자”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리고 2016~17년 겨울 광화문의 모습을 떠올렸죠.
사토 아즈사는 사자후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재작년 이웃나라인 한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100만명의 시민들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지 말라며 대규모 시위를 했습니다. 국민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모두가 외쳤습니다. 다음은 일본 차례가 아니겠습니까! ”
네, 이 이야기를 도쿄의 현역 지방의원이 거리에서 외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M_sbayf3bQ
(원본을 첨부합니다. 2018년 신주쿠 이세탄 거리 연설. 영상의 5분부터 2016년 겨울, 박근혜 대통령 탄핵 거리 촛불시위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작년 홍콩의 시민집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던 것처럼, 한국의 시민들이 만들어낸 민주화는 우리 생각보다 우리 이웃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었으니까요. 일본이라도 영감을 받은 사람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일본사회는 생각보다 보수적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고 일본인이 체감하는 것보다 보수적입니다. 보수적인 일본시민들은 이웃국가 한국의 민주화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크게 체감하고 있지 못합니다.
어떤 정치인은 일본인에게 좀더 어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개혁을 꿈꾸죠.
그중 하나가 도쿄도지사 선거입니다.
도쿄는 서울처럼 특별시(特別市)가 아니라 특별도(特別都)입니다. 23개의 특별구와 26개의 시로 이루어진 일본 최대의 광역자치단체입니다. 인구만도 1,350만.
일본의 지방자치는 도쿄특별도(都), 홋카이도(道), 오사카부(府)와 교토부(府) 그리고 43개의 현(県)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것을 도도부현(都道府県)이라고 부르는 거죠. 도도부현은 일본어로 ‘도도후켄(とどうふけん)’으로 부릅니다.
이 47개 도도부현 중 최고이지 으뜸이 바로 도쿄특별도입니다. 그러니 도쿄는 시장이 아닌 도지사를 선출하는거죠.
일본 총리는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되지만, 지자체장은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됩니다. 일본 전체 인구의 10%이상과 경제,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도쿄도지사의 국내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총리에 뒤지지 않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선거에 야마모토 타로가 뛰어듭니다.
야마모토 타로, 출마의 변입니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살 곳을 잃은 사람들. 굶어 죽기 직전의 사람들에게 뭐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도쿄 올림픽을 중단하겠습니다. 모든 도쿄 도민에게 10만엔(100만원)을 지급하겠습니다.”
야마모토의 도쿄 도지사 당선은 요원해 보입니다.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거든요. 현직 도시자인 코이케 유리코(池百合子;67세), 가장 유력한 후보입니다.
게다가 일본 변호사 연합회장인 우츠노미야 켄지(宇都宮健児,73세)도 만만찮은 후보죠.
도쿄 도지사 투표일은 7월 5일입니다.
야마모토 타로가 도쿄도지사에 당선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야마모토같은 정치인은 일본 정계의 복원력으로 작용할 수 있죠.
이것만큼은 폄하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다음편에는 야마모토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정치적 각성을 하고, 정치를 바꾸겠다며 거리로 뛰어들어 일본시민과 마주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