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_타로 #위대한_실패
도쿄도지사 선거는 우리로 치면 서울시장 선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함의가 서울시장 선거보다 무겁습니다.
일본의 총리는 직선이 아니라 간선제로 선출되죠. 아무리 맘에 드는 총리 후보가 있어도, 그 개인에게 투표할 수 없습니다.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 선거에서 지지하는 총리 후보가 속한 정당이, 입후보한 후보에게 투표해야 합니다.
도쿄도지사 선거는, 일본에서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 개인에게 투표하는 선거 중 가장 큰 선거입니다.
도쿄의 인구는 약 1,350만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10% 정도지만, GDP로는 일본 전체의 20%를 차지합니다. 여기에 정치, 사회, 문화적 영향력을 더하면 일본 전체의 절반이라 봐도 무리가 없죠.
단언컨대 도쿄도지사 선거는 단순히, 일본 최대의 광역단체장 선거가 아닙니다.
이렇게 중요한 선거에 야마모토 타로가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뛰어들었죠.
선거일이 7월 5일인데, 두 주 남짓한 기간을 남겨놓고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게다가 공약도 과격했죠.
첫째, 도쿄 올림픽 완전 취소
둘째, 도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재류 외국인까지)에게 재난지원금 10만 엔 지급
도쿄 올림픽 중지는 야당의 주요 후보인 우츠노미야 켄지 역시 동의한 사실입니다.
올림픽을 정치적 영향력 확장에 유용하는 아베 정권에 대한 심판. 그리고 지나치게 올림픽에 눈이 팔려, 놓치는 민생의 사각지대를 더는 내버려 둘 수 없으니까요. 도쿄 올림픽 취소에 동의하는 일본인의 비중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 공약이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의 두 번째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돈은 무려 15조 엔.
우리 돈으로는 약 160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공약이었죠.
먼저, 야마모토는 내외국인을 합쳐 약 1,400만 명에게 일괄적으로 10만 엔(약 11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실현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거의 모든 학교의 수업료를 면제하고, 여기에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1년간 손실분까지 보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도쿄도는 일본 전체 GDP의 20%를 차지합니다. 도쿄도가 지방채를 발행한다면, 아예 불가능한 공약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었죠.
첫째는, 일본의 국가부채율이 250%에 달하는 상태에서 일본 최대의 지자체가 수조 엔이 넘는 지방채 발행의 충격을 견딜 수 있겠는가?
둘째는, 도쿄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입니다.
재정상태가 열악해 지방채 발행은커녕, 인구수 격감으로 유령 마을이 생기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지역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지원 여력이 있다면 도쿄보다 지역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 도쿄 도민에게만 혜택을 주는 건 전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이 공약을, 투표권을 가진 도쿄 도민과 대다수 일본인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 개인과 레이와 신센구미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의 영역이었습니다.
특히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주부층을 비롯한 여성들은 이 공약에 현실성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야마모토 타로의 해법은 TV 토론이었죠.
배우 출신의 흡입력 있는 표현력, 거리 연설에서 다져진 토론 능력.
코이케 유리코 현지사와의 맞짱토론이 성사된다면 단숨에 표차를 좁힐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도쿄 도지사 선거 정도로 큰 판이라면 NHK는 물론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민영방송에서 TV 토론이 몇 차례나 있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도쿄 도지사가 가지는 상징성에 코로나로 어지러운 현 시국이라면, 차기 도쿄 도지사가 누가 되느냐는 포스트 아베 시대를 점쳐보는 중요한 리트머스로 작동할 테니까요.
놀랍게도 TV 토론은 없었습니다.
코이케 유리코 현지사가 끝까지 피했으니까요.
이미 인지도가 충분한 상태에서 야마모토라는 파이터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피한 겁니다.
핑계는 좋았죠. 현직 도지사니까 코로나와 위급한 경제 상황으로 눈코 뜰 새 없는데 무슨 TV 토론이냐는 거죠.
결국 야마모토는 다시 예전처럼,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의 대중적 인지도는 아베 내각의 주요 정치인에 못지않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SNS 서비스는 트위터입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르죠. SNS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트위터 팔로워 수로 꼽을 수 있습니다. 코이케 유리코의 팔로워는 86만 명. 야마모토 타로는 1/10 불과한 8만 명 수준입니다.
하지만, 야마모토에게는 코이케에게 없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진정성이 있었죠.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 그의 거리 선거유세에만 유독 많은 사람이 몰려듭니다. 말 그대로 인파,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거리 유세는 언제나 강렬한 첫마디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구체적입니다.
도쿄역에서는 그곳에서 노숙을 막 시작한 70대 남성의 이야기를 합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고, 주머니에 단 3만 엔만 있는 이 70대는 이제 막 노숙을 결심한 참입니다. 야마모토는 그에게 시약쇼(구청)에 도움을 청하라고 말합니다.
노년의 남자는 힘없이 야마모토에게 대답했죠.
“아직 주머니에 3만 엔이 있으니 괜찮아요. 다 떨어질 때까지는 버텨볼게요”
일흔이 넘도록 계속 일을 해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던 한 남자.
그 남자의 전 재산은 단 3만 엔입니다.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도쿄역에서의 노숙을 결심한 첫날. 야마모토 타로를 만났습니다.
야마모토는 그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야마모토는 도쿄의 또 다른 중심지인 아키하바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키하바라는 우리에게 오타쿠의 성지처럼만 여겨지는 곳이죠.
어쩐지 백 팩을 둘러멘 오타쿠들이 메이드 카페나 피겨 가게만을 서성일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실, 일본인이 줄여서 ‘아키바’라 말하는 아키하바라는, 도쿄에서 저렴한 숙소와 식사로 떠오르고 있는 빈곤인 신흥 밀집지역입니다.
노숙자로 전락하기 직전의 사람들이 도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의 도미토리와 넷카페(우리 개념의 PC방)가 넘실대는 ‘아키바’로 모여드는 겁니다.
야마모토는 그런 아키바를 배회하던 20대 청년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인근의 치요다 구약쇼(구청)에서 만난 허름한 옷차림의 청년입니다.
야마모토가 청년을 만났을 때, 청년은 달랑 200엔만 가지고 있었답니다.
아키바 인근을 전전하며 겨우 최저 생활을 영위하던 청년이, 치요다 구약쇼에 갔습니다. 생활보호 신청을 하기 위해서였죠.
일본의 생활보호 시스템은, 제도상으로는 우리 이상으로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지자체와 국가에서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게 이것저것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아베가 장기 집권하면서 사정이 바뀝니다.
제도는 존속하는데 적용을 엄격하게 하기 시작합니다. 가급적 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생활보호대상자를 늘려 지자체 예산의 증가를 막겠다는 속셈이죠.
아베의 지인은 헐값으로 국유지를 사들여 대대손손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학원사업을 시작하게 해 주면서, 아베의 친형이 관계된 골판지 회사가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 골판지로 만든 침대를 납품하게 하면서도, 당장 거리에 나앉게 된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생활보장도 곤란하다고 고개를 흔드는 거죠.
청년은 억울한 사정을 야마모토에게 토로합니다.
“구청에서는 저를 생활보호 대상자로 절대 받지 않으려는 듯,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했어요”
이런 사람들, 여기저기서도 도움을 거절당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갈 수 있는 사람. 그것도 영향력 있는 정치인은 별로 없습니다. 일본 공산당, 사민당 그리고 야마모토 타로 정도죠.
야마모토는 여기에 분노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든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담당 관청에서 사자후를 외치죠.
“저는 국회에서도 말썽 많은 놈이었죠. 여기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쯤 일도 아닙니다”
우리나 일본이나 관청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달가워할 공무원은 없습니다. 그것도 상대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정치인에다, 투지도 넘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결해보려 노력하겠죠.
200엔만 들고 아키바를 배회하던 청년은 그렇게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분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치죠.
지난 10년간 많은 사람이 왜 이렇게 빈곤해진 걸까요?
그들이 가난해진 건 그들이 게을러서일까요?
사회에 나와보면 자신들은 살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없는 사람을 깔보는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존 정치계!
언제나 노력해라 더 노력하라고 외치기만 하는 기득권!
이들에게 노력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정! 치!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돈 없는 사람들에겐, 단 일주일만 수입이 없어도 월세를 낼 수 없으니 집에서 쫓겨난다는 겁니다.
거주지를 잃는다는 건, 넷카페 난민(PC방을 전전하며 난민처럼 지내는 사람)을 거쳐 결국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선거기간 동안 야마모토 타로의 사자후 중,
마음 깊은 곳에 일직선으로 날아와 그대로 꽂혀버린 말을 소개합니다.
지금의 정부에게 지금의 부족한 것은
지금의 도쿄에게 부족한 것은
당신에 대한 애정입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