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_타로 #도쿄도지사_낙선
2020년 7월 5일.
도쿄 도지사 선거는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포스트 아베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시점.
무려 22명의 후보가 난립했고, 완주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음부터 예측 가능했습니다.
결국, 야마모토 타로는 낙선했습니다.
현직 프리미엄을 지닌 코이케 유리코의 재선은 확정적이었습니다.
관건은 코이케 현지사를 야마모토가 과연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정도였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현직 지사의 프리미엄은 어마어마합니다. 인지도가 비교할 바 안되죠. 하지만 야마모토 타로 개인의 전국적 인지도는 이제 코이케 지사에 못지않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문제는 인지도가 바로 득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일본인의 투표 성향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보수적이라는 것. 그 두 가지입니다.
주요 후보와 눈길을 끌던 후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코이케 유리코(池百合子;67세)
- 현 도쿄도지사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코이케는 도민 퍼스트회 소속입니다.
도민 퍼스트회는 코이케가 중심이 되어 창당했죠.
한마디로 순한 맛 자민당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민당의 연립정권 파트너인 공명당의 지지도 물론 받았죠.
재밌는 건, 현재 아베와 자민당의 인기가 폭락하니까 코이케가 도민 퍼스트회를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아베와 자민당과 선긋기를 시도한 거죠. 그래도 코이케의 정체성은 순한 맛 아베. 아니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운맛 아베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2. 우츠노미야 켄지(宇都宮健児,73세)
제1야당인 입헌 민주당을 비롯해 3개 야당의 연합후보입니다.
야마모토 타로의 입후보로 야당 공조가 깨지는 것과 득표 분산을 가장 염려한 후보이기도 하죠.
여기에, 아베노 마스크를 속옷처럼 착용한 후보도 있었죠. 나나미 히로코라는 후보였습니다.
당명도 웃깁니다. 행복 실현당(幸福実現党). 일본은 종교단체가 정당을 결성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신기하지 않습니다. 행복 실현 당도 종교법인에서 시작한 정당이죠. 뭐 딱히 신경 쓸만한 당은 아닙니다.
일본 전 국민에게 웃음거리가 된 아베의 마스크를 비웃기 위해, 마스크 두 개를 속옷처럼 착용한 모습을 공식 선거 포스터로 등록한 게 잠시 화제가 되었을 뿐이었죠.
상당히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사진을 도지사 선거 공식 포스터로 등록하면, 주택가는 물론 초등학교 앞에도 설치될 수 있으니 금세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당대표는 후보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며, 당 차원에서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고 후보 개인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결국 나나미 후보는 그 포스터를 철회했죠. 이래저래 웃기는 당과 후보입니다.
일본에는 정말 별의별 정당이 많아요.
일본 정치사에는 우리 감각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당명 센스를 자랑하는 당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죠.
일본에는 공산당이 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공산당은 아닙니다. 유럽에 있는 공산당, 사회복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유럽식 공산당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산당이 있으니, 본격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민당도 물론 있습니다.
민나노 당(모두의 당)도 있습니다. 당명에 모두가 들어가니, 뭔가 대중친화적 정당을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극우 중 최고의 빨간 맛 극우세력인 일본유신회와 비슷한 성격이었습니다. 다행히 2014년 해산했습니다.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진짜 이게 당명입니다.
강령은 ‘NHK를 때려 부수자’입니다. 정말입니다. 그 외 무슨 정책이 있냐고요? 없습니다. 당의 존재 자체가 NHK가 싫은 것뿐입니다. 성격은 우익과 극우의 중간입니다. 물론 답 없는 당입니다.
도쿄 생활자 네트워크. 나름 40년 역사를 가진 정당입니다.
일종의 정치 협동조합 형태인데, 나름 꽤 진보적입니다. 세타가야구가 도쿄를 넘어 일본 최초로 소수자 권리장전을 발표한데도 크게 기여한 당입니다. 당직자와 지방의원의 다수가 여성입니다.
이건 일본에서 매우 특이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레이와 신센구미에 비해 덜 주목받는데,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주목하고 있는 정당입니다.
희망의 당. 자고로. 당명에 자유, 희망 넣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정당 없습니다.
일본 자민당의 풀네임은 자유민주당입니다. 그런데 자유와 민주주의에 별 관심이 없죠. 예전 우리에게도 민주자유당이라는 당이 있었죠. 그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들은 2018년 창당했습니다. 전형적인 순한 맛 아베류입니다. 언급할 가치는 별로 없네요.
그냥 기존 자민당 권력투쟁에서 밀린 자들의 합종연횡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2019년에 창당했으니, 따끈따끈한 신당입니다.
일본의 정당 생태에서 매우 진보적입니다. 진보의 틀을 나누는 주요한 기준이라면, ‘장애인 인권’ ‘동물복지’ ‘탈원전 생태주의’일 텐데, 레이와 신센구미는 이 모두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당들이 저마다 후보를 냈습니다. 독자 후보를 낸 정당도 있고, 합종연횡으로 지지를 표방한 세력도 있고요. 일본 넷우익의 상징과도 같은 재특회를 만든 꼴통 극우, 사쿠라이 마코토 역시 출마했습니다.
일본 경제가 완연한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감염병으로 사회 시스템이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이 시점. 일본 최대의 자치단체장 선거는 22명이나 뛰어들어 완주한 기묘한 선거였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를 제외하면 별다른 감동도 충격도 없는, 현대 일본 정치를 압축한 듯 싱겁기 짝이 없는 결과였습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코이케의 승리였습니다.
놀랍게도 압도적 승리였습니다.
코이케 유리코는 366만 표를 얻었습니다. 무려 유효 득표의 60%에 해당하는 압승입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3위를 차지했습니다. 유효 득표의 10,7%로, 65만 표를 얻었습니다.
2위를 차지한 우츠노미야 켄지의 84만 표를 합쳐도, 코이케 유리코 득표의 1/3 정도밖에 안되죠.
아베노 마스크를 희화하한 나나미 히로코도 나름 2만 표를 얻었습니다.
재특회 회장을 연임했던 사쿠라이 마코토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17만 표를 얻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 역시 도지사에 당선될 것으로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어차피 코이케 유리코 현지사의 재선이 확실하다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메시지를 던져보자.
왜 비참하게 살아가는 서민이 늘어나고 있는지, 정부와 정치의 역할은 대체 무엇인지.
그런 메시지를 던져보자.
그리고 야마모토는 단 2주간의 기간 동안 도쿄 전역을 누비며 사자후를 뿜어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