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재덕후 공PD Sep 16. 2020

스가 총리의 첫 정책. 일본 디지털청 –1부-

한국과 일본의 차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 두 가지


여러분은 어떤 게 생각나시나요?      


  누군가는 ‘동적인 한국 VS 정적인 일본’의 이미지가 떠오를 겁니다. 

‘선배, 연장자, 상급자가 밥값을 내는 게 당연한 한국’ VS  ‘나이차가 있어도 더치페이가 제법 자연스러운 일본’ 

또 누군가에게는 ‘노벨 평화상 하나 VS 20개의 노벨상’이 떠오겠죠.       


  가볍게는 ‘김밥천국 VS 요시노야’ 정도.

  어떤 이에게는 ‘엘리베이터 승하차 예절의 차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겐 아직 엘리베이터 승하차 예절이 거칠죠)’. 


  저는 시민의식과 디지털을 꼽고 싶습니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살고 있는 가장 큰 공동체인 국가. 시민 한 명 한 명이 국가의 체제도 바꿀 수 있다는 강렬한 시민의식. 한국인은 이런 자각을 1919년 3.1 운동부터 2016~17년 광화문까지 강렬히 체험했습니다. 

  국가가 있고 시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총합이 곧 국가라는 의식이죠. 

  안타깝게도 일본인에게는 이런 종류의 ‘시민의식’이 없습니다.      


  디지털. 이 말 외에 현재 한국과 일본의 위상 변화를 가장 잘 상징하는 말이 또 있을까요? 

  2000년대까지 모든 부문에서 일본을 맹렬히 추격하던 한국. 하지만 이제는 일본이 ‘디지털’은 한국에서 배워야 하는 시점이 된 겁니다. 



스가 총리의 첫 구상

 

  많은 사람의 예상대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새로운 총리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관방장관은 우리의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슷한 역할입니다. 아베 내각에서 오래 관방장관을 한 스가 신임 총리가 내각을 발표했죠. 

  아니 발표했다기보다, 기존 아베 내각이 거의 그대로 유임되었습니다. 한일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죠.       

  한국 경제 압박의 주연인 아소 다로 재무성 대신이 유임된 건 상징성이 큽니다. 그나마 꼴통 극우의 상징 같은 고노 다로 방위성 대신이 물러났습니다. 이건 좋은 시그널인데, 하필 후임이 아베의 친동생입니다. 이걸 보면 스가 정부는 즉, 아베 내각 2.0도 아닌 1.2 버전인 셈이죠. 또한, 스가의 임기가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할 수 있죠.

  자민당 내 계파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압도적 표차로 총리에 당선된 만큼, 각 계파는 스가 이후의 정권을 잡기 위해 본격적 경쟁에 돌입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스가 신임 총리는 아베를 계승하지만, 아베가 임기 내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야 합니다. 

  9월 10일, 단초를 담은 인터뷰 있었습니다. 9월 10일은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던 9월 14일 이전이죠. 차기 총리가 아니라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이자 현 관방장관의 자격으로 인터뷰한 겁니다. 

  ‘스가 내각의 목표인 동시 아베의 뜻이기도 한’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일본의 코로나 사태에서 드러난 일본의 약점은, 디지털화였다”

   “시스템이 여러 관공서에 분산되어있는데, 이것을 통일하겠다.”     


  일본의 전자행정 서비스는 조악하다기보다, 아예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우리의 주민등록 등초본에 해당하는 호적등초본이 필요하면, 우리 구청에 해당하는 쿠약쇼나 시청에 가야 합니다. 가서 번호표를 뽑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려야죠. 일본 관청답게 서비스는 친절합니다. 다만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죠. 왜냐고요? 일본의 행정 전산망이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원인에게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기 위해, 내부 결재가 필요하죠. 그것도 일일이 도장을 찍어가면서요.      


 우리식으로 등초본 등등을 온라인으로 발급하는 건 일본에서는 꿈만 같은 일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금 전입신고도 주민센터를 갈 필요 없이, 전자정부 사이트에서 하잖아요. 

  이런 얘길 아예 믿지 않는 일본인 친구들이 있었어요. 하기야, 일본의 전자행정 이야기를 저 역시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니까요.      


  민간부문은 다를까요? 일본에서 졸업증명서를 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그 학교에 가야 합니다. 



지긋지긋한 상상     


  상상을 하나 해보죠. 유쾌하진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규슈 최남단 가고시마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는 도쿄에서 다녔죠. 

  여러분은 졸업 후 집에 돌아와 규슈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에서 취업활동을 하고 있었죠. 미리 마련해둔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가 다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합니까? 다시 도쿄에 있는 학교로 가야죠. 

  가고시마와 도쿄까지의 거리는 1,300km 정도입니다. 신칸센으로 가면 편도 요금이 3만 엔입니다. 왕복은 6만 엔이죠. 저가항공을 이용하면 가격은 조금 더 내려가지만, 여전히 부담스럽죠. 

  직접 운전을 해서 가면 어떻냐고요? 일본의 고속도로 요금을 생각하면, 이 방법이 가장 미친 짓입니다.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은 야간 고속버스입니다. 이것도 편도에 만 몇천 엔은 합니다. 그러니 가장 저렴하게 도쿄를 왕복해도, 교통비가 최소 3만 엔이 넘는 겁니다.      


  학교에서 발급하는 증명서 수수료는 또 얼마일까요? 이것도 비쌉니다. 

  우리 감각으로는 비싸 봐야 장당 500원~1,000원 정도겠죠. 

  일본이 그럴 리 없습니다. 장당 500엔이 최저 수준이죠. 원화 500원이 아니라, 엔화 500엔. 즉, 우리 돈으로 서류 한 장당 5,000원이 넘는 겁니다. 왜 이리 비싸냐고요? 

  증명서 발급할 때, 학교에서 발급을 위한 결재도 절차별로 받아야죠. 전자결재로 슥삭하면 어떻냐고요? 그럴 리가요. 일본의 오래된 도장 문화는 어떻게 하고요? 

  아…. 편리하게 우편으로 신청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다만 학교가 지정한 신청서와 본인을 증명하는 서류 일체를 동봉해야 하는 아주 작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청서는 어디서 받나요? 

  네, 그것도 학교에 있죠.   

  

  우리도 90년대 초반까지는 졸업한 학교에 가서 서류를 받아야 했습니다. 90년대 중반이 되면 동사무소에도 졸업증명서나 성적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죠. 인터넷이 세계를 감싸기 전에 한국이 했던 일을, 일본은 여전히 엄두도 못 내는 겁니다.      



일본인이 믿지 않는 한국     


  우리는 주민등록 등 초본 등을 집이나 사무실에서 클릭 몇 번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전자정부를 구축한 게 언제부터였죠? 2000년대 초반입니다. 대략 2005년이면 전국 단위로 사용할 수 있었죠. 전출입 신고를 하기 위해, 이사한 곳에서 다시 전에 살던 주소지까지 찾아와 서류를 발급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시작된 지 벌써 15년이 지난 겁니다. 어지간한 곳까지에 고속통신망이 촘촘하게 깔린 시기이기도 하고요.

  이때 전자정부를 이용하는 한국인의 가장 큰 불만은 연말정산이었습니다. 카드사 보험사 등등에서 구비서류를 팩스로 보내줬는데, 이걸 놓치면 다시 전화해서 팩스 앞에서 노심초사했죠. 이것도 2010년대 초반에 들어오며, 국세청 간편 사이트로 대체되었죠. 이젠 연말정산이 너무 간단해졌습니다. 가장 큰 불만이라면 그래도 여전히 출력한 서류를 들고 재무팀에 제출해야 한다는 정도겠죠. 


  우리의 전자정부 시스템은요. 세계사에 유례없는 혁신입니다. 우린 너무 당연하니까,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 등초본 민원발급기와 학적 기록부 발급기가 있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죠. 

  오히려 ‘여기서 떼면 수수료가 들어가는데 뭐하러 여기서? 집이나 사무실에서 출력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니까요.     


  일본에서는 여전히 찾아오지 않은 미래죠.

  디지털에 무심했던 일본이 만들지 못한 미래.      


  일본은 우리의 ‘시민의식’은 이해할 수 없지만, ‘디지털’만큼은 따라 하고 싶었습니다.           



스가의 꿈     


  스가 신임 총리는 자민당 총재 당선 전에 뭔가 터뜨리고 싶었습니다. 

  아베를 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아베가 미처 이루지 못한 성과를 생각했죠. 

  스가의 선택은 ‘디지털청’이었습니다.      


  디지털청? 이게 대체 뭐죠? 


  우리나라의 예전 정보통신부에 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건가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정보통신부는 지금 사업의 상당 부분을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 이전했죠. 과학기술정책과 ICT 등을 관장하는 기능만 남긴 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변신했습니다. 시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와 통신은 방통위가 맡고 있죠. 방통위는 기술보다는 정책 결정과 집행에 특화된 정부 부처고요.      

  우리나라의 정보와 통신을 관장하는 중앙부처는 세분화가 상당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면, 대체 뭐가 뭔지 모를 정도죠. 우리나라 전자정부 시스템은 이들 중 누가 만든 걸까요?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포스트 아베 시대 –5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