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_디지털청 #스가총리의_첫정책
전자정부 구축에 공헌한 부서와 민간기업은 많습니다. 정부 부처로는 정보사회진흥원과 정보문화진흥원이 있었죠. 이 둘이 2009년 통합해 정보화진흥원으로 변신했습니다.
정보화진흥원은 2010년부터 전자정부 표준 프레임 워크센터를 개소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공공부문 전자행정의 편리함 기초를 만든 거죠. (물론, 여전히 액티브 X는 거슬리기 짝이 없습니다만….)
일본은 이에 주목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오래전부터 주목했죠.
일본의 공공부문 디지털화를 총괄할 수 있는 중앙부처의 필요성.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일본에 이런 부서가 없었다는 게 더 신기합니다.
일본 언론에서 스가(菅義偉) 총리가 꿈꾸는 디지털화 계획을 보도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디지털화 세계 2위 한국 VS 14위 일본”
우리가 뿌리 깊은 IT 강국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2010년 중반에는 몇 년 동안 IT 지수가 급락했던 적도 있긴 해요). 그런데 디지털화 세계 2위? 이건 대체 뭘까요?
닛케이의 지난 7월 보도를 보시죠.
내용은 간단합니다.
“세계 전자정부 랭킹에서 한국은 2위로 부상했는데, 일본은 14위로 후퇴하고 있다.”
UN의 산하기관인 ‘유엔 경제사회위원회(UNDESA)’에서 격년 간격으로 회원국의 전자정부 지수를 발표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빠르고 편리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공공부문의 혜택을 누리는지 잘 모릅니다.
UNDESA의 세계 전자정부 순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탑티어였습니다. 우리보다 상위에 랭크된 나라는, 우리보다 경제 규모와 인구수가 적은 소국뿐이죠.
1위를 차지한 덴마크는 약 6백여만 명, 에스토니아는 130여만 명 정도입니다. 고속통신망을 전 국토에 촘촘하게 설치하기 쉽고, 인구 대국보다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을 나라들이죠.
미국이나 영국 등 유서 깊은 서구 선진국은 모두 우리보다 순위가 아래입니다.
시실 우리 전자정부 시스템의 편리함과 그들을 비교하는 게 말이 안 돼요. 상위 10개국에 속해있다고 해도 일상에서의 편리함만 측정한다 해도,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과 견줄 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그냥 ‘어나더 레벨’이죠. 일상행정까지 들어갈 것도 없이, 공항 출입국에 걸리는 절차와 시간만 비교해도 답이 나옵니다.
일본은 미국이나 영국보다 심각합니다. 세계 전체 순위도 14위, 아시아 전체로 봐도 한국과 싱가포르에 이어 3위 정돕니다.
좀 더 본격적인 얘기를 해볼까요?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WEF)의 부속기관인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가 매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죠. 2020년 한국은 23위, 일본은 34위죠.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도 이미 한국은 몇 년 전에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브런치 [한국과 일본의 국가경쟁력 순위] 편 참조)
https://brunch.co.kr/@pdkorom/30
IMD는 3년 전부터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World Digital Competitiveness Ranking)를 발표합니다. OECD 회원국을 비롯해 경제지표에서 유의미한 국가, 총 63개 국가만으로 제한하죠. 이 63개국의 디지털 기술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 전반의 혁신을 잘 끌어내는지에 대한 측정입니다.
단순히 고속 인터넷망이 잘 깔려있고, 망 접속자가 많다고 순위가 높은 건 아닙니다. 종합 1위는 역시 미국입니다. UN 경제사회위원회(UNDESA)의 세계 전자정부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는 종합 4위. 우리는 종합 14위.
일본은 종합 23위로,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홍콩,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에도 뒤쳐졌습니다.
IMD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는 크게 세 부문을 봅니다. 디지털 지식(교육 등), 기술 그리고 미래대비. 1위인 미국은 기술투자와 과학 집중에서 1위를 미래대비에서도 최상위권이죠. 덴마크는 미래대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우리는 종합 14위에 적당한 세부 점수입니다.
반면 일본은 디지털 이해력과 디지털 구조 그리고 사업부문 적용성에서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여기서 점수가 대폭 깎인 거죠.
좀 더 재미있는 결과를 볼까요?
종합순위 10개국은 미국, 싱가포르,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핀란드, 홍콩, 노르웨이, 캐나다 등입니다. 이 중에서 인구 2천만 이상 국가만 따로 뽑아 순위를 매겨보면 어떨까요?
놀랍게도 우리가 미국 다음으로 단숨에 2위로 급부상했습니다. 역시 일본은 중국보다 아래 단계인 9위에 머물렀죠.
스가 총리가 일본을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역시 경제입니다.
닛케이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세계시장의 ‘주요 상품, 서비스 점유율 조사’ 전체 74개 품목 중, 한국과 일본 기업의 1위 품목이 각각 7개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건 놀라운 일이죠.
한국 경제가 무섭게 일본을 추격하던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의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품목은 10개가 넘었으니까요.
게다가 중국이라는 거인이 일본과 한국의 비교우위 산업을 잠식하고 있었으니까요.
일본 기업이 오랫동안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던 대표 품목은 디지털카메라입니다. 이건 일본의 기술이 후퇴했다기보다, 시장 자체가 축소된 경우죠.
한국이 새롭게 1위에 진출한 품목은 과거 일본이 1위를 차지하던 것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평면 TV 패널과 조선입니다. 사실 우리 1위 부문도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조선은 다행히도 1위를 탈환했지만요.
반도체는 당연히 1위입니다. 이것도 일본이 80년대 1위를 달리던 부문이죠.
우리는 반도체라는 하드웨어를 국가 경제의 동력으로 삼으며, 나라 전체를 디지털화하는 소프트웨어 개혁까지 나아갔습니다. 일본은 그러지 못했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여전히 국가 전체 GDP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죠. 문제는 추세입니다. 점점 하락하고 있으니까요.
일본 전체, 기업경제뿐만 아니라, 민간부문도 마찬가지죠.
우리도 일본도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습니다.
차이점은 속도였죠.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해 간단히 신청하고, 늦어도 하루나 이틀 안에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전 국민 고유 식별코드인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실물화폐보다 전자화폐의 사용률이 압도적으로 높고, 무엇보다 행정 전산망이 전 부문에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었죠.
일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3일 만에 받은 예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였습니다. 대다수 일본인은 구청이나 시청에서 서류로 작성하고, 구청에서 서류를 취합해 단계를 밟아 도장 결재 후, 중앙부처로 우편으로 보내면 거기서 또 단계를 밟아 도장으로 결재…. 신청 후 무려 두 달이 지나도록 지원금을 못 받은 경우가 다반사인 이유입니다.
일본에도 IT 담당 부처와 장관이 있죠. 근데 정말 웃기는 게, 아베 정부에서 2019년 IT 담당 장관에 취임한 인물(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이 IT와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는 거죠. 자민당 내 ‘인감도장 연맹’의 회장을 맡고 있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IT 활용능력도 제로에 가깝고요.
IT 담당 장관에 취임할 때, 기자들이 ‘정보의 디지털 추진과 도장 문화의 대립’에 대해 물었습니다. 답변이 역시 걸작이었죠.
“인감(도장)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전환)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鑑を業としている人たちにとって死活問題)
“(일본에는) 디지털화할 수 없는 분야가 꽤 많다”
(デジタル化できない分野がかなりある)
이런 인물이 IT 담당 장관이었으니, 일본의 디지털화가 제대로 구축될 리가 없었죠.
스가 내각에서 이 인물은 교체되었습니다.
디지털 담당 장관이라는 자리를 만들고 히라이 타쿠야(平井卓也)라는 인물이 내정되었죠.
이 사람도 인물입니다.
2020년 마이니치가 중의원에서 작은 특종을 잡았습니다.
아베가 절친인 구로카와를 검찰총장에 앉히려, 검찰의 정년연장을 담은 검찰청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자리였죠. 말도 안 되는 개정안이었습니다. 구로카와가 나이가 많아 검찰총장이 되어도 곧 은퇴해야 하니, 법을 고쳐 임기를 연장하겠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야당은 날 선 반대 질문을 내각에 던지던 순간이었죠.
이 심의에 정부 인사로 ‘히라이 타쿠야(平井卓也)’도 참석했습니다. 야당 의원과 내각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지속되는 가운데, 히라이가 들고 있던 태블릿에 ‘악어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의도건 우연이건 적절치 않은 순간이었죠.
일본의 디지털화를 맡은 주무 장관은 ‘도장’ 장관에서 ‘악어’ 장관에게 넘겨졌습니다.
스가 총리의 원대한 꿈, 일본 디지털화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만일, 스가가 강력하게 디지털 드라이브를 건다면, 당장 협력 가능한 기술과 인프라를 지닌 이웃은 한국이 유일합니다.
스가 내각은 디지털청은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