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불에 데워진 냄비에 참기름을 휘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어 살짝 익힌 후, 돼지고기를 양껏 넣고 삭삭 볶은 다음, 간장과 약간의 설탕을 넣어 졸여준 뒤, 김치 반포기를 통으로 착 올리고, 사과즙 한 봉지를 넣어 살짝 졸이다가 물을 넣고 중불에 끓여. 한참을 중불에 끓인 뒤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대파를 어슷어슷 썰어 숭숭 넣고 한소끔 더 끓여주면, 기가 막히지. 다른 반찬이 왜 필요하겠어.
그런데 이 뻔한 레시피를 결혼 초엔 2시간 정도 걸려서 완성했던 것 같아.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땐 유튜브도 없었을 때라, 요리책이 필수였거든.
요리책을 펼쳐 놓고,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손질은 어떻게 하는지, 또 어떻게 만드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해서 뭐 하나 만드는 게 왜 그리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는지, 정말 암담했었어. 지금이야, 메뉴를 정하면, 뭘 사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도 손이 절로 움직이거든.
‘친정엄마가 요리를 잘하면 딸도 요리를 잘한다.’라는 말들을 하잖아?
난 엄마에게 밥 안치는 것도 못 배웠거든.
밥도 못 한다고 아빠에게 혼났던 기억이 선명해.
아무튼, 우리 엄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쁜 엄마였어.
겨우겨우 우리의 끼니를 챙기던 엄마의 모습만 기억날 뿐이야.
그런데 딱 하나 배운 게 있어.
잊히지 않는 ‘엄마와 나의 순간’이었어.
그날의 온기와 냄새가, 보글보글 끓던 김치찌개의 소리가, 내 마음을 몽실몽실하게 했거든.
“김치찌개는 중불에다가 한 시간 정도는 푹~ 끓이야 돼여. 안 넘치게 중불에다가 푹~ 알았제? 불 씨게 하면 안 된다이~ 그칸 다음에 먹기 전에, 대파를 사악~ 넣어주는 거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요리법이, 나에겐 가장 특별하고 유일한 엄마의 요리법이야.
‘김치찌개는 중불! 오래 푹~ 대파는 마지막에 사악.’
이 요리법은 내가 서울에 상경한 후 내 자취방에서 배운 거야.
2003년 여름,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서울의 한 출판사 편집기자로 취업에 성공하며 상경했어. 서울이 낯설진 않았어. 2002년 한일월드컵이 서울을 들었다 놨을 때 휴학생으로 서울에서 잠시 지냈었거든. 그리고 내 기억엔 없지만 어렸을 때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살았던 흔적이 주민등록초본에 남아 있더라고. 그때 부모님은 고척동 바로 옆 동네인 개봉동의 한 교회에 출석했지.
놀랍게도 개봉동 교회의 목사님은 20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교회 목사님으로 있었더라고.
그리고 더 놀랍게도 엄마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그 목사님에게 시골에서 나는 귀한 음식들을 때마다 택배로 보냈던 거야.
그리고 그 덕을 내가 본거지.
엄마의 20년간의 귀한 음식 택배가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보증금 없는 월 20만 원짜리 월세방을 얻게 했거든.
그 목사님 내외분이 내 보증금을 대신할 보증인이었던 거야.
엄마는 그게 그렇게 고마웠던 모양이야.
딸을 보러 온 거라고는 했지만, 한가득 들고 온 음식 상자는 그 목사님 댁으로 몽땅 향했어.
그리고 엄마는 내게 김치찌개를 끓여줬지.
낯설었어.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듯했어.
아마도 엄마가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만드는 모든 과정을 처음 봐서 그랬던 것 같아.
분명 날 먹여 키운 게 엄마인데도, 그날의 엄마 모습이 얼마나 생경했는지….
어쩌면, 그제야 내가 엄마를 제대로 봤던 건지도 몰라.
그날의 엄마는 프로주부 같았어.
칼질도 볶는 스냅도 간을 보는 모습도 불을 맞추는 모습도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