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엄마는 소녀였던 엄마의 여름날 추억을 삼킨 건 아닐까?
2023년 8월 TV에 다슬기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을 하는 거야.
깨끗한 하천에서만 사는 다슬기를 따서 그대로 삶아 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거나, 초무침을 해 먹는다고 소개를 했지.
소라를 10배 정도로 축소해 놓은 듯한 손톱만 한 다슬기를 보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이거 쫌 무그봐. 눈에 좋은 기라.”
엄마는 여름이면 교회 집사님들과 다슬기를 따러 다녔어.
정확히 말해 그때까지 나에겐 다슬기가 아니라, ‘고디’였어.
그게 사투리인 건 한 책을 보고 알았지.
중학교 때, <벙어리 엄마>라는 박상규 작가님의 동화집을 읽고, ‘아~ 고디가 다슬기구나. 예전엔 올뱅이라고도 했고, 다른 지역에서는 올갱이, 고동이라고도 하는구나.’ 하며 정확히 알게 됐어.
그리고 <벙어리 엄마>를 읽으며 다슬기 따는 엄마를 상상했어.
우리 엄마도 온몸이 다 젖어 가며 다슬기를 따는 건가?
한 알 한 알 줍고, 따기 위해 샐 수 없이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하는 건가?
이 작고 작은 것 하나를 따서 우리를 먹이기 위해?
그러기엔 너무 힘든데, 도대체 왜?
한번은 다슬기를 따고 밤늦게 젖은 채 들어온 엄마가 식겁했다며, 물이 갑자기 깊어져서 빠졌었다고 했어. 아깝게 땄던 다슬기를 다 쏟았었다고. 그래도 거의 다 주워 왔다고 웃으며 말했었어. 밤에 다슬기를 더 많이 딸 수 있다고, 저녁에 가곤 했거든.
그 순간 나는 화를 냈어.
그러다 죽으면 어떡할 거냐고.
왜 욕심을 내서 깊은 곳에 들어가냐고.
엄마만 먹지 우린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사실이 그랬어.
엄마가 고생스럽게 따온 다슬기를 난 썩 좋아하지 않았어.
그 작은 걸 손가락에 쥐고, 바늘이나 이쑤시개로 힘겹게 빼먹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거든. 먹어도 먹어도 배도 안 차고, 무슨 맛인지도 딱히 모르겠는 거야.
인내심 테스트도 아니고 속이 터져서 몇 개 주워 먹다 말았지.
하지만, 한다면 하는 나의 엄마는 그 많은 다슬기 속을 다 빼서 또 먹으라고 내밀었어.
심지어 다슬기를 삶은 초록색 국물과 함께.
하아... 지금 생각해도 그 초록색 국물은 도저히 마실 자신이 없어.
하지만 엄마는 약이라 생각하고 마시라고 강권했지.
한 모금 정도 마셨나? 못 먹겠다고 내려놓았어.
엄마는 속상해했어.
당연해.
나도 몸에 좋다는 음식을 아들에게 먹이고 싶어 권할 때가 종종 있거든.
하지만 아들의 논리적 거절이 너무나 명확해서 나 역시 지고 말아.
먹지 않겠다는 의지를 꺾을 논리가 나에겐 없어.
단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들이 귀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만 있을 뿐이거든. 이 음식이 뭐에 효능이 있고, 무슨 성분이 있어서 먹어야만 한다는 설명을 하지 못해. 그저 좋은 건 그냥 다 주고 싶은 마음뿐이라서….
아무튼, 의지의 그녀, 나의 엄마는 여름이면 다슬기 삶은 물을 얼려 냉동실을 가득 채웠어. 그리고 그 물을 여러 요리의 육수로 사용했던 거 같아. 어떻게서든 자식들을 먹이고 싶었던 거겠지.
“쪽쪽~ 쫍쫍~ 이기 얼마나 맛있는데, 이걸 안 먹노. 맛만 좋다야~”
엄마는 정말 맛있게 다슬기를 먹었어.
꼭 <벙어리 엄마>의 어머니 벙어리처럼 실컷 먹고 싶어 생각나는 음식이었을 거야.
두메산골 소녀가 여름날 먹을 수 있는 재미도 있고 맛도 있는 추억의 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거야.
어쩌면 엄마는 소녀였던 엄마의 여름날 추억을 삼킨 건 아닐까?
지금이라면, 뭐 물론 짜증이 좀 나긴 하겠지만,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다슬기를 빼 먹으며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여전히 그 초록색 국물은 별로지만 말이야.
엄마. 나는, 다슬기를 따며 즐거워하던 엄마가 <벙어리 엄마>처럼 다슬기를 따다가 비극을 맞을까 봐 겁이 나서 다슬기가 더 싫었어.
나는 다슬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가 필요했으니까.
엄마가 없는 지금도 엄마가 필요함을 느껴.
단지 존재만으로 내 우주 어딘가가 안정되는 것만 같았거든.
지금도 어딘가에서 부유할 엄마의 영혼이 나와 가까이 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