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음식 7.칡냉면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 고생까지 하느냐고…

by 김선영

여름의 끝에 있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가을 공기가 맨살에 닿아 움츠리게 만들어.

하지만 움츠림도 잠시, 나는 서서히 풍겨오는 가을 향이 반가워.

가을에 태어난 자의 타당한 가을 사랑이랄까?

희한하지? 공기는 무색무취인데, 왜 우리는 각 계절의 향을 기억하는 걸까?

곧 늦여름의 습기를 머금은 풀 내음이 옅어지겠지?

온몸의 수분까지 뺏어가 노화에 방아쇠를 당기는 건조한 가을날이 될 테니까.

이 여름이 완전히 가기 전, 나에겐 엄마의 여름 음식으로 남은 ‘칡냉면’ 이야기를 해보려 해.




기억하기로는 초등학교(사실 난 국민학교 졸업이지만) 고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무렵에, 내가 살던 지역에 처음으로 ‘칡냉면’ 집이 문을 연 거야.

지금은 칡냉면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냉면의 면은 주로 메밀가루나, 감자,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면이 대부분이었거든.

칡 전분으로 만든 칡냉면은 혁신이었어.

엄밀하게 기존의 면과 맛의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설마 나만 모르겠는 건 아니겠지?’)

칡냉면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어.

한 해 장사하고 더 큰 매장으로, 두 해 장사하고 건물을 지었다고 들었거든.




당시 그 칡냉면집은 배달할 사람이 부족해서 우리 엄마에게도 배달을 해달라고 했었어.

우리 집은 시장에서 장난감 도소매 점방을 했는데, 가게는 아빠가 보고, 기동력이 좋은 엄마는 칡냉면 배달을 한 거지.

우리 엄만 오토바이로 장난감 배달을 하던 사람이라, 칡냉면 배달은 껌이었거든.

지역 구석구석을 잘 안다는 점도 큰 메리트였고.

그래서 칡냉면집 사장님은 급하면 엄마에게 전화해 부탁했었어.

엄마는 그렇게 매해 여름 칡냉면 배달을 했어.

배달을 하며 돈도 벌고, 공짜로 냉면을 얻어와 우리를 먹이는 걸 매우 좋아했던 거 같아.

내 눈엔 신나 보였거든.




칡냉면은 진짜 맛있었어.

칡 맛이 나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냉면집의 양념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거 같아.

특히 으깬 참깨의 고소함이 아직도 입안에 맴도는 듯해.

또 고명으로 얹어져 있던 무김치도 새콤한 것이 아주 별미였어.

정말 고소하고 매콤하고 상큼하고 시원했어.


냉면이란 걸 첨 먹었을 땐 이게 뭔가 싶었거든.

어른들은 왜, 밍밍하고 맹맹한, 도무지 어떤 맛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이 이상한 음식을 맛있다고 먹는 거지? 어른들 입맛 참 이상하다~ 생각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평양냉면이었던 거 같아.




올여름 세종시에서 유명하다는 평양냉면집을 갔었거든, 얼마나 장사가 잘되면 그 식당은 일 년에 7개월만 영업하고, 심지어 영업시간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해.

나도 어른이 되었으니, 이런저런 냉면을 먹어보았으니, 그렇게 유명한 냉면집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기대했지. 냉면에 무지한 나의 입맛에 깨달음을 주려나 했다고.

음…. 그 집은 내 기준, 메밀전병 맛집이었어! 메밀전병이 일품이지 뭐야~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

아직 내 입맛만은 어린이인 걸로...




앗, 아닌가?

어렸을 때 칡을 좋아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네.

사실 나 어렸을 때, 칡 씹어 먹는 걸 좋아했거든.

나무토막같이 생긴 칡은, 마치 장조림 결처럼 잘 찢어졌어.

결대로 뜯어서 쪽쪽 쫍쫍 쫘압쫘압~ 맛있게 씹어 먹고는 버렸지.

한 조각이면 정말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를 한참이나 할 수 있었어.

배가 차는 것도 아닌데, 칡 씹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입에 뭔가 들어 있고, 그걸 씹는 게 좋았고, 은근한 단맛과 쓴맛의 조화도 절묘했어.

왜, ‘저작 운동’은 뇌 기능 활성화에 좋은 영향을 미쳐서 기억 형성에 좋다잖아.

노화와 비만도 방지되고 씹을수록 침이 많이 나오니 천연 소화효소로 인해 면역성도 높아지고 독성 제거도 가능하다고 하고….

뭐 여튼, 저작 운동에 의한 기분 좋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느지막이 자동차면허를 따기 전에 정말 수십 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어. 그래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오토바이 핸들을 잡는 모양대로 굳어져서 쫙~ 펴지지 않는 손이 되었지. 허리가 구부정한 게 아니라, 손이 구부정해져 버린 거야.

엄마가 칡냉면을 배달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손이었는데, 어느 순간 손이 펴지지 않을 만큼 굳어져 있었어.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엄마의 칡냉면 배달을 말렸을 거야.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 고생까지 하느냐고 말이지.


철가방에 칡냉면을 싣고 쌩쌩 달리던 엄마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라.

엄마는 배달일이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거라 좋아했거든.

근데 그 얼굴을 떠올려 보니, 그 모습을 떠올려 보니, 나는 참 좀... 눈시울이 붉어지네.


엄마….

엄마는 참, 일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사람이었어.

엄마는 참, 땀 흘려 노력하는 진실한 사람이었어.

엄마는 참, 다른 사람의 시선보단,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었어.

엄마는 참,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좋은 사람이었어.

그래서 고마워.

나도 엄마처럼 좋은 사람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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