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웰컴투 동막골이 떠오르는 왕과 사는 남자
오래간만에 영화를 본 것 같다.
영화 예매 앱 기준으로는 왕사남 이전에 본 마지막 영화가 브런치에 썼던 콘크리트 유토피아였던 거 같다.
1000만 관객이 넘고 환한 얼굴로 유튜브부터 뉴스 초대석까지 나오는 장항준 감독의 모습을 보면서, 처갓집 다녀오는 길에 예매를 했었다 피곤을 이유로 한 번 취소했던 '이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영화가 감독 그 자체를 닮았다'
영화를 보고 공감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캐릭터에 감독들이 묻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액팅들이 많았다. 영화 속 모든 선한 배역들의 헤실거림이 장항준 감독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그 헤실거림은 2005년 개봉한 웰컴투 동막골의 강혜정(여일 역(?))을 다시 소환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강원도(평창과 영월)를 배경으로 한 산골 마을 이야기이다.
산골 마을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인물이 찾아와, 마을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정이 들고 함께 맞서 싸운다는 서사가 그런 연상을 더 강하게 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두 영화 모두 우리 역사 속의 아픈 이야기를 재미와 감동으로 엮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뭔가 마음에 울림을 주는 서사를 그린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2005년작 웰컴투 동막골이 영상미나 전개의 호흡 등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한다.
예산 비교를 위해 찾아보니 그 당시 웰컴투 동막골은 80억. 그 당시에는 블록버스터 급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나와 있다. (그 당시 제작비 평균이 30~40억 정도였다고), 왕과 사는 남자는 105억으로 저예산으로 현재 알려져 있다.
금액 차이는 흐른 시간에 비해 크지 않지만, 예산 구조나 물가, 인건비 등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예산으로 비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확실히 웰컴투 동막골이 예산에서 압승인 것은 맞는 거 같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연유로 인해(?) 장항준 감독의 이번 영화 연출은 매우 직관적이었다고 본다. 영화 진행 내내 촬영 앵글의 경우도 뭔가 큰 고민이나 옵션이 있었다기 보단. 머릿속에서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의 서사를 순서대로 붙이는데만 문제가 없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정말 풍경이나 연결 인서트도 단순했다)
특히 반복적이었던 건 인물 간의 대화나 심리상태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에서 정말 인물을 클로즈업해서 잡는 것 외에는 특별한 연출이나 방식, 혹은 복선이나 장치조차도 없었다.
물론 이 서사(전개)의 끝은 역사적 사실로써 마침표가 찍혀있지만. 기-승-전-결의 서사를 보았을 때. 마치 모든 사실이 기록된 영상을 구간별로 찍어서 사이를 자르고 붙인. 마치 테이프를 넣고 조그 다이얼을 돌려 탁탁 필요한 위치만 스탬프 해서 붙인 게 아닌가 싶은 정도이다.
장항준 감독이 어느 방송에 나와서 본인의 영화를 보고 의도와 상관없는 대단한 해석을 붙여 준다고 하는데. 혹시나 장항준 감독이. 요즘 친구들이 즐겨보는 유튜브 영화 압축 리뷰 같은 걸 생각해서 이야기를 구성한 거라면 그는 진짜 '천재'일 것이다(?)
물론 영화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 영화는 정말 직관적인 역사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원인이 저예산 탓이라면 그것 또한 원인이겠다.)
뭐 호랑이는 그래도 봐줄 만했다. 저예산.
하지만 그래도 인정하고 싶은 천만 넘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매끄러운 점
2005년 동막골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마...
수류탄에 튀겨진 팝콘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해를 비롯해 2006년까지 한국영화계에서 상을 휩쓸었던 이 영화는 영상미와 서사가 모두 훌륭한 수작임에 틀림없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대단한 영상미와 사람들을 울리는 소재의 만남이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번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이 영화에 감정을 한 껏 몰입할 수 있도록 한 점이 가장 기분 좋은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끄러웠던 점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유지되는 감정선의 움직임을 서로 상호작용하고 계속해서 끌어가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웃긴 장면은 함께 웃고, 슬픈 장면은 슬프게 끌고 가준다. 분명히 앞서 말한 것처럼 너무나도 빠르게 끌고 가는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어디서 웃기고 싶은지 어디서 울게 하고 싶은지를 정확히 알고 배치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완급 조절하는 부분에서.
모든 감정의 스위치 혹은 트랜지션은 유해진을 중심으로
웃긴 장면은 장이수를 소환하는 영월군수 박지환 배우와 함께(희) + 안재홍(특별출연)
분노하게 하는 감정은 한명회 유지태 배우를 중심으로(노)
슬픔과 즐거운 감정은 청령포의 백성을 중심으로(애, 락)
그리고 영화 속 관객의 포지션의 관찰자는 왕을 보필하는 여자(매화) 전미도 역이 유해진과 다른 한축의 관찰자로서 존재한다.
한 편으로는 명배우들 치트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점점 짧은 매체에 자리를 내주는 영화가 2시간 동안 지루함 없이 감정선을 관객과 함께 끌고 가는 힘은 정말 대단한 연출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한국 영화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번 영화의 성과가 코로나 이후 한국영화의 새 비전이나 지평을 열었다고 하는 것은 성립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소재의 초이스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과 보통의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한국형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유해진+유지태의 조합은 영화관을 찾던 시기의 사람들이 한 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올드 앤 올드 조합이었다고 생각한다. (유지태 배우님은 역시 스크린에서..)
뭔가 코로나 이후, 또 취향의 배레이션이 넓어지고 영화가 어느 순간 우리가 즐기는 편안한 유희에서 유행과 평가에 잡아먹혀 일반 대중들이 점점 복잡하고 거대한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 영화관으로 발길을 끊게 한 것 아닌가 싶다.
언제인가부터 블록버스터, 마블코믹스, 넷플릭스 대작과 싸우는 한국 영화들은 온리원 코리아 무비가 아니라 우리도 규모와 대작으로 경쟁한다는 기조 혹은 영화제에 서는 영화, 예술영화, 깊은 해석이 필요한 영화에 매몰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와 가벼운 스몰토크를 하게 해 줄 수 있는 영화도 필요하다. 영화는 항상 우리의 일상에 있었다. 그 영화가 일상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영화가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자그마한 기대를 '왕과 사는 남자'에서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