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를 선정/분석해 보는 비욘드 더 예능 '지구오락실' 나영석 편
대학생 시절. 방송특성화 대학이었던 우리 학교 특성상 전임이 아닌 초빙이나 겸임교수님들 중에는 방송 3사 출신의 교수님들이 많았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KBS가 남산에 있던 시절부터 재직하셨고, 흔히 말하는 5공시절 보도제작국장까지 지내셨던 한 교수님의 제작 수업에서의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사람들이 TV를 보는 것은 인간의 관음증적인 심리 때문이다.
당시 교수님의 말을 토씨 그대로 기억해 옮기는 건 어렵지만, 사실상 그때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위의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는 이 말을 바로 이해하거나 하긴 어려웠지만, 머리에 제작에 대한 무언가 차오르고 방송 PD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교수님의 말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우리 세대가 즐겨보았던 나영석 PD의 <1박 2일>이나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을 보면서 이 프로그램의 성공 비결이 바로 여기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청자가 보고 싶은 걸 보여주는 것이 미디어의 숙명이라면, 연출자는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방점을 찍는 사람이다.
당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연출된 대본이 아닌 가감없는(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부분이나) 연예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보는 것에 빠져들었고. 조금 살을 더 보태서 남 사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한국인의 특성상 나영석 PD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만들어 온 프로그램들은 대중들의 관음증적 심리를 잘 이용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상기 프로그램 외에도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알쓸시리즈만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요소는 '출연자들에게 어떠한 상황을 주었을 때, 과연 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에서 출발한다.
이 기본적인 핵심 구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조합 바꿔가면서 프로그램을 꾸려나가는 것 능력적인 부분에 있어서 대한민국에서 1 티어로 잘하는 제작집단이 아마 나영석 사단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단순히 캐릭터를 조합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인물에 부합하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 또한 탁월하다.
의도적으로 캐릭터 유니버스를 이런 순서로 끌어왔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방송국 놈들(?)을 행동 패턴상. 마치 우리가 키워드가 적힌 카드를 뒤집어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처럼. 어떻게 하면 새로운 조합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름대로 캐릭터 연구나 연상에 대해서 점점 기존의 방식에서 새로운 느낌으로 가려고 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최초에는 기존에 나영석 사단으로 1박 2일부터 함께해 온 강호동 라인의 캐릭터들에게 연상이 되는 캐릭터들의 옷을 입힌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면
꽃보다 / 삼시세끼 / 식당 시리즈에서는 기존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대외적인 이미지에 맞는 R&R을 상황 속에 부여해서 마치 '윤여정이 식당 대표이고 정유미가 김밥을 말며 이서진이 계산을 하고 신구가 알바를 하는 식당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상황 내 R&R에 캐릭터를 끼워 넣는 형태로 조합을 했었다.
지구오락실에서는 아예 실제인물과 캐릭터의 선을 넘는다. 이 내용은 이 분석글의 3편에서 '선 넘는 유니버스'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신서유기는 출연진들이 분장을 하고 용볼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인 룰이 명확한 연기에 기반한 예능 같은 느낌이라면.
지구오락실의 캐릭터들은 부여된 캐릭터가 아니라 개그우먼/아이돌/가수/크리에이터라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능력이나 이미지가 훨씬 더 많이 발현된다.
조금 쉽게 정리하자면, 우리가 과거 TV를 볼 때. '이 프로그램은 진짜가 아니야'라고 인지를 하고 보기 때문에 TV에서 나오는 내용이나 짧은 시간으로 편집되고 연출된 상황이나 화면을 어색함 없이 인지했었는데.
그게 구성과 연출 상에서 과거에는 부여된 캐릭터 안에서의 평면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면. (평면적인 캐릭터와 구성상의 가이드라인, 시청하는 대중들의 시대적인 관점의 높이(수준) 등의 복잡한 이유로 인하여)
지난번 캐릭터 분석 때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대중들이 인지하고 있는 실제 출연진의 인물적인 캐릭터적인 요소와 연출된 미디어 안에서도 연출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이미 실제적인 이미지 수준에 근접한 상태인 것이다.
더 쉬운 예를 다른 인물이나 프로그램에 치환해 보자면, 최근에 TEO(김태호PD 제작사)에서 온라인과 채널 송출을 동시에 했던. 지구마불세계여행을 생각해 본다면 더 쉬울 것이다.
방송인으로 출발하지는 않았지만, 뉴미디어에서 본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곽튜브나 빠니보틀이. 채널 송출이 되는 지구마불세계여행에 출연한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의 연출/구성에 갇혀서 연기하는 캐릭터로 보는 사람은 없다.
겉 포장은 지구마불세계여행의 곽튜브, 빠니보틀이지만.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은 유튜버 곽튜브, 빠니보틀이라는 캐릭터로 본다는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방송에서마다 캐릭터를 가져가던 기성 출연자와 달리. 방송에서 만든 캐릭터가 계속해서 소비되거나 혹은 변형된 형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구애받지 않는 그 너머의 캐릭터(그렇다고해서 이 모습이 본인 자신 그대로이거나 실제모습이라는 것은 아님)가 입체적으로 살아있는 상태로 지속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프로그램에 출연자가 맞추는 세계관이 아니라, 출연자의 특성(평면적인 이미지가 아닌 입체적인 특성)이 세계관을 주도하고 결과물조차도 변형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연출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혹은 출연자로 인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입체적인 캐릭터조차도 담아낼 수 있는 입체적인 설정을 부여(?)보다는 제공하는 역할이 앞으로 연출의 해결과제인 것이다.
관음증이라는 내용에서 갑자기 설정을 뛰어넘는 캐릭터 설정이라는 표현까지. 글의 내용이 너무 장황해지고 있지만.
레거시 미디어인 TV라는 플랫폼의 영역과 편성을 비롯한 다양한 기존의 정책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시대에 흐름에 따라 바뀌는 시청자들의 니즈(needs)와 실제적으로 변해가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성향과 출신 속에 그런 부분들을 다시금 한 보따리에 담아보기 위해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은 계속 진화해가고 있다.
하지만 원칙적인 부분에 있어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그런 심리에 발맞춘 연출과 진화해 가는 연출적 세계관 확장은 아마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를 독보적으로 헤쳐나가는 진일보된 노력에는 틀림없다.
엥? 영석이 형이 왜 여기서 나와?
(흠좀무)
제작 현장 속에서 스태프들이 가끔 출연하는 것은 나영석 PD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쌀집아저씨(김영희 PD)가 거의 최초였던 걸로 알고 있고.
프로그램 안에서 한 명의 캐릭터로써 소비가 되던 나영석 PD(나노:나영석 노예, 영석이 형 등)는 이제 아예 제작자, 진행자 영역을 넘어 원 오보브 올과 같은 창조주 혹은 전지적 시점의 캐릭터로써 콘텐츠 유니버스를 뚫고 현실세계에서의 스탠 리가 되어버렸다.
본인도 왜 이게 재밌는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침착맨과의 콜라보(라고 쓰고 영업비밀 스터디) 이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과연 이런 연출자의 유니버스를 뚫는 연계가 그의 연출 세계에 시너지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셀럽 탄생으로 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