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을 재구성한다면 기생열차(기생충+설국열차)라고 짓고 싶다.
2023년 8월 18일 금요일 저녁. 오펜하이머를 볼까 하며 들렸던 극장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오늘(토요일)' 아침부터 일을 나가야 하는 아내를 위해 조금이나마 상영시간이 짧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선회.
재난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관객들을 사로잡으면서도 뭔가 아쉬운 마음에 영화를 보자마자 분석글을 짧게 적어본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끝나면서 뇌리 속에 감도는 한 줄은 이거였다.
기생충과 설국열차를 섞어 놓은 듯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감독인 '엄태화' 감독의 필모는 전혀 몰랐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이름과 얼굴을 동시에 본 순간 배우 '엄태구'의 형제라는 점 정도가 바로 느껴진 점.
다만,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로 일했다는 점이 기술되어 있으면서. 오픈백과 작성자의 내용에도 봉준호와 닮아있다는 점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어서.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개인적으로 느낀 봉준호스러움에 대한 부분과 위의 두 가지 영화와의 닮은 점을 한 번 나열해보고자 한다.
불쾌한 골짜기를 넘나드는 블랙코미디
영화라는 매체는 어느 영상 매체보다도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상영을 한다는 조건에서. 관객의 몰입도를 최선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단순히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래?"라는 생각이 들도록 진행되는 플롯에서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부여한다.
설국열차에서는 지구에 살아남은 인류를 위해 선택을 해야 했던 상황들에 대해서 과연 등장하는 인물에서 선과 악을 가를 수 있는지. 기생충에서는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빈부격차에 대해 모두 알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모두 인정하고 침묵하는 사회를 보며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고민을 하도록 만든다.
개인적으로 기생충을 봤을 때는 정말 머리가 가려웠다. (물리적으로 가려웠다) 그 가려움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다. 가려운 위치는 아는데. 머리 겉표면이 아니라 머릿속이 간지러워서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인지부조화라고 해야 할까. 머리로는 가려운 걸 아는데. 몸은 그 가려움을 긁어낼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결국에 콘크리트 유토피아 또한 재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물들의 상황과 갈등을 표현함에 있어.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상황을 이입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예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의 장면이다. 벌건 대낮의 산속에서 귀신이 씌어서 좀비가 된 사람과 싸우는 씬이 있는데. 정말 정말 밝은 낮의 시간에 곡괭이와 삽으로 때려도 쓰러지지 않는 좀비의 존재와 대적하는 모습은 어떤 영화의 좀비보다도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기생충에서는 거의 영화 말미에 나오는 주인집 아들의 야외 생일파티에서 주인공(송강호 역)의 딸(박소담 역)이 칼에 찔려 죽는데. 그것 또한 정말 해가 쨍쨍한 날씨가 좋은 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지하실에 있던 남자가 칼을 들고 와서 손쓸 틈도 없이 찌르는데.
우리가 일반적인 공포영화의 복선상의 클리쉐에 익숙해져 있었다면. 우리가 머릿속에서 연상하는 공포라는 것은 어둡고 고립된 곳에서만 발생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실제로 어두운 시간뿐만 아니라 밝은 시간이나 공간들이 존재하고. 실제적으로 밤보다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데.
콘크리트 유토피아 내에서도 사람들의 안정이나 즐거움을 표출하는 것은 대부분 밤시간이고, 오히려 눈에 모든 것이 보이는 낮 시간이 오히려 더 예측불가한 공포나 사건에 노출되어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인지하였다.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에서의 사건은 밤보다 낮에 더 많이 일어나지 않나 싶다.
공간(장소)을 통한 메시지 전달과 의미 부여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영화든 배경과 장소라는 것은 존재한다. 다만 앞서 언급한 세 영화는 공간을 통해 수직적인 계층 간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열차는 수평적인 구조이지만, 꼬리칸과 머리칸 간의 점진적인 차등을 보여주었고. 기생충의 집들은 반지하와 건축가 선생님의 고급저택을 대비시켰고.
아파트는 아파트 단지와 단지 밖에 남겨진 사람들 간의 대립구도가 있으나, 사실상 아파트 단지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도 계층을 나누고 차별과 배격을 하는 작은 사회를 형상화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아파트의 구조나 개인이 갖는 안식처(집)이라는 개념에서도 열차와 같은 수평적이면 길쭉한 형태에 '집'이라는 구조물을 합쳤을 때. 기생열차라는 수식에 맞는 아파트가 연상된다고도 생각한다.
(칸칸이 나눠져 있으며 가로 세로 길쭉하게 펼쳐진 집이 바로 아파트이기 때문이고. 저층과 고층 간의 차이나 이런 것들도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자본주의적 코드를 위한 사회주의적 연출
대표적으로 설국열차에서 틸타 스윈튼이 맡았던 메이슨 역의 모습인데. 인민복 형태의 착장과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메가폰 사용 등이 주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도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것과 같은 복장과 메가폰이 등장하는데. 오히려 이 부분에 있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경우 매우 다분히 의도적이고 패러디 같은 느낌으로 연출한 부분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겨울이라는 계절감과 회색에 가까운 영화톤으로 인해 과연 이곳이 대한민국(남한)이 맞는지 우리가 인터넷 등을 통해 보던 북한방송 속 주민들인지 혼동이 올 정도로 복장이나 화면 안에 들어오는 미장센들을 유사한 느낌으로 꾸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기생충의 경우, 사상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속에 있는 계층적인 구조에 있어 사회주의 국가였던 곳(중국)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와 어쩌면 가장 하류라고 꼽을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계급적 세태를 적용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장점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자유라는 이름 아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결국에는 사회주의적 방법 또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양쪽으로 모두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체제에 의한 전체주의적인 행동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과 행동 등이 개인의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사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세 영화가 모두 지향하는 바가 아닌가 싶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한 총평
최근에 봤던 한국영화 중에 그래도 전체적인 내러티브나 플롯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짧지 않은 러닝타임동안 꽤 긴장을 하면서 볼 수 있었던 좋은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재난영화'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좋은 배우와 소재를 가져다 쓰더라도. 재난영화의 끝은 대체로 정해져 있고. 이 영화도 한 편으로 그 엔딩 클리쉐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나 기생충과 비교하여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국열차와 비교했을 때는 재난의 규모나 내용 전개에 있어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할 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이미 한국사람, 정확히는 '서울에 사는 아파트 주민'이라는 정체성이 너무나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한국 관객들이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기생충과 비교를 했을 때는. 집이라는 공간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짰을 때. 너무나도 우리 주변에 친숙한 이야기이지만 아파트는 한 공간에서의 아주 가까운 집단 간의 갈등을 다뤘다면, 기생충은 대한민국 계층의 전체를 붙여놓은 듯한 차이가 있었다. 근데 집단 간의 괴리나 이런 부분들이 크다 보니 기생충은 다양한 스토리와 상상하기 어려운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었으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의 집단 간에 벌어질 수 있는 한정적인 상황으로 전개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분명 모든 관객들이 아파트 사람들의 행동변화나 감정에 몰입해서 인간 내면의 불편한 것들에 대해 공감하며 숨죽이고 봤지만.
이게 다양한 감정으로 해소가 되거나 상황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젯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이웃과 싸웠던 나의 경험이 생각나서 "아 맞아 저런다니까" 정도로 그 감정이 끝나버리곤 했다.
클리쉐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서 최선을 다해 상황을 만들어주신 콘크리트 유토피아, 살짝 아쉬웠지만
정말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을만한 재난상황에서의 인간 군상을 좋은 배우들을 통해 잘 보여주었고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 김선영 배우가 각자의 역량을 모두 발휘하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뛰어난 앙상블적인 면모를 잘 담아낸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