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주방, 나를 담는 공간

가구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본 주방

by Rachell Consulting

드디어 건축 공사 시작

거푸집 틀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굳혀 벽체가 완성되자, 비로소 집이 집다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콘크리트 타설이 끝나고 목공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인테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가구 디자이너인 저는, 주방가구와 수납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발주·시공까지 챙겼습니다.
그동안은 고객의 공간에 맞춘 가구를 만들어왔다면, 이번만큼은 오롯이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집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변화하는 주방의 모습

주방이 단순히 '요리하는 곳'을 넘어, 가족이 함께 머물고 대화하는 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요즘 주방의 모습은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빌트인 가전이 늘어나면서, 기존에 수납장 중심 구조에서 식기세척기나 냉장고가 공간을 차지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냉장고가 주방에 꼭 맞게 들어가는 ‘키친핏’ 디자인이 보편화되고, 가전의 컬러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주방 전체가 더욱 조화로운 인테리어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대용량 냉장고가 주방을 차지하던 시대는 지나간 거죠.

(왼쪽) 키친핏 냉장고 vs (오른쪽) 대용량 냉장고 / (출처) LG전자 홈페이지

아일랜드장은 크기가 커지면서 조리 기능 외에도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인 저희는 퇴근 후 함께 요리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일랜드 장에 미니 싱크볼을 추가해 동시에 재료를 씻고 손질하며 요리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아일랜드장에 다이닝 식탁을 연결시키거나,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바카운터를 두면 공간의 연속성이 생기고 주방 공간을 훨씬 풍성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 상판뿐만 아니라 측면과 뒷면까지 포셀린으로 감싸 마감하는 프리미엄 디자인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왼쪽) 부부가 함께 요리하는 주방, (오른쪽) 아일랜드 상판 위 바카운터

소재와 디테일의 힘

주방가구는 도어, 상판, 하드웨어 등 여러 가지 마감재의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도어는 주방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마감재로 주로 PET, 도장, 무늬목 소재를 사용합니다. 가격은 PET < 도장 < 무늬목입니다.

PET는 친환경 소재로 다양한 컬러와 질감을 구현할 수 있고 관리가 쉬워 실용적인 선택지입니다. 연그레이나 미백색 뉴트럴 컬러를 기본으로 하되, 일부 우드 컬러 포인트를 더하면 감각적인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PET : 도어 표면을 친환경 PET 필름으로 마감
- 장점: 친환경 소재, 저렴한 가격, 관리 쉬움
- 단점: 습기, 열 등으로 도어 모서리(에지) 들뜸 가능

도장: 도어에 도료를 여러 번 분사해 깊이감 있는 질감
- 장점: 색감 표현력 최고, 유광·무광 질감 선택 가능
- 단점: 스크래치 약하고, 수리(리터칭) 어려움

무늬목: 도어에 천연 나뭇결을 얇게 붙인 고급 마감
- 장점: 리얼 우드 질감 및 자연스러운 색상
- 단점: 비싼 가격, 습기·물기에 약해 관리 필요


상판은 내구성과 오염에 강한 소재를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인 것은 인조대리석, 엔지니어드스톤, 포셀린이 있으며, 가격은 인조대리석 < 엔지니어드스톤 < 포셀린 순입니다.

특히 포셀린은 슬림한 두께와 뛰어난 내구성으로 인기가 높지만, 시공이 까다로워 숙련된 시공팀이 필요합니다.


주방가구는 한번 설치하면 평균 10년은 사용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기능의 완성도 역시 중요합니다.

저는 힌지와 서랍재 등 주요 하드웨어를 오스트리아산 ‘블럼(Blum)’ 제품으로 선택했습니다. 힌지는 오래 여닫아도 처짐이 없고, 서랍재는 최대 50~70kg까지 버틸 수 있어 무거운 솥도 안정적으로 수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어를 위로 여는 '리프트업' 하드웨어를 사용하면, 전기오븐이나 전자레인지 등을 숨김 수납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문을 열고, 사용 후엔 닫아두면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왼쪽, 중간) 주방 하드웨어 힌지와 서랍 / (출처) Blum 홈페이지, (오른쪽) 리프트업 하드웨어


수납과 여유

배달음식이나 반조리된 밀키트를 먹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집밥을 즐기는 편입니다.

집밥은 제게 가족에게 마음을 전하고, 지인들과 교류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주방을 설계할 때, 식사 공간과 별도로 팬트리 공간을 함께 계획했습니다.

작지만 실용적인 팬트리는 철제 선반랙을 설치해 식재료와 소형 가전들을 정리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납공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집에서 커피를 즐기는 저는, 그동안 모아 온 원두나 여행지에서 구매한 스타벅스 시티컵들을 한데 모아둘 '커피존'을 별도로 구성했습니다. 주방은 음식을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커피, 와인, 예쁜 그릇 등 나의 취향과 일상을 담는 무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취미가 드러나는 공간, 주방


주방, 삶을 담는 무대

돌이켜보면 주방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와인을 마시고, 커피를 내리고, 그릇을 고르고, 대화를 나누는 생활의 중심이자 삶의 무대입니다.

주방을 설계한다는 건 결국 나의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수납, 기기, 동선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주방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됩니다.

저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주방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이고도 가장 보편적인 공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주방은, 그 집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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