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당재 Sep 05. 2020

베트남 남부 오토바이 여행 6

팔짱 끼고 기도 하는 베트남 성당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선잠이 깼다. 가이드가 시간이 됐다며 손목시계를 보여준다. 호텔, 아니 숙소 밖으로 나오자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훅 끼친다.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탔다. 베트남 성당에 가는 건 처음이다.

 

성당은 이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건물 주위로 목욕탕 의자 같은 빨갛고 파란 간이의자들이 빼곡히 깔려 있다. 어떻게 보면 가게 맥주 거리처럼 보인다. 성당 안과 밖에서 동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미사 시간이 다가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불편한 목욕탕 의자가 있는 바깥쪽을 선호하는 걸 보면, 교통이 혼잡해지기 전에 집에 가려는 것이다. 나는 건물 안 쪽에서 미사를 보기로 했다. 



미사는 모두 베트남어로 진행됐다. 

미사 도중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타이밍을 옆사람 보면서 했다. 서가 비슷해서 무리 없이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기도를 해야 할 때 손을 모으지 않고 팔짱을 끼는 것이다. 


처음엔 그것이 너무 어색하고 속으로 웃었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팔짱을 끼는 것은 '존중의 표시'라고 했다. 베트남 미사는 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고 성가대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택시를 타려는데 오토바이 행렬이 너무 많았다. 성당 앞을 나와 길을 건너려는데 각오해야 했다. 길을 건널 수 없었다. 


결국 택시 잡는 걸 포기하고 그냥 걸어서 돌아오기로 했다. 

내가 저녁을 산다고 하며 괜찮은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가이드가 좋다고 한다. 숙소 근처까지 걸어와 월남쌈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메뉴를 보니 돼지고기 수육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간단한 맥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그에 대해서 꽁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호텔까지 다시 걸어와서 깊은 잠에 들었다. 





라이딩 세 번째 날이다. 어제는 푹 잤다. 피로가 누적됐기 때문이리라. 숙소의 어메니티는 꼭 필요한 것만 있었다.


아침 일찍 짐을 싸서 호텔 식당으로 갔다.  약속한 8시가 됐는데 가이드가 오지 않는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씩 늦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어제는 못 본 숙소 주변을 보았다. 의외로 주변 풍광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엔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면세점에서 행사 상품으로 받아 온 것이다. 어제 아침 메뉴가 부실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리사에게 뜨거운 물을 달라고 부탁하는 한 편, 볶음밥을 주문했더니 가이드가 아침부터 두 개나 먹냐고 깜짝 놀란다. 그래 나는 아침 두 개 먹는 사람이다. 속이 든든해야 하루가 든든하지. 


내 컵라면과 가이드가 주문한 쌀국수가 왔다  그의 쌀국수에는 고명이 다양했다. 예전 같으면 먹어보고 싶었겠지만 나는 부럽지 않다.  쌀국수는 이제 실컷 먹었기 때문이다. 그가 쌀국수에 넣어 먹고 남은 야채를 컵라면에 넣어서 같이 먹었다. 고수 라면이다 


이 매운맛 컵라면은 한국을 출발하던 첫날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와 10일이나 들고 다녔다. 나는 영화 미션에서 우리 자신의 짐을 폭포 아래로 던져 버리며 절교하던 수도사처럼 컵라면을 말끔히 비우며 절규했다. 


'드디어 끝났구나' 

라면 국물은 볶음밥이랑 같이 먹으려고 남겨 두었다. 내가 시킨 볶음밥은 돼지비계를 잘게 다진 것을 야채와 같이 볶은 거였다. 불맛이 살아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한국 돈으로 1,500원쯤 한다. 또 먹고 싶은 맛이다. 


내가 컵라면을 먹고, 볶음밥을 먹을 때 가이드는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벌써?' 

가이드는 쌀국수를 다 먹지 못한다. 

'나 몰래 맛있는 걸 먹는 거 아냐?'


그는 내가 볶음밥을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남긴 쌀국수에는 두부조림 것과 돼지 순대 비슷한 것, 토마토가 들어 있었다. 별로 먹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다. 

나는 내 몫의 볶음밥을 말끔히 해치우고 약간 의기양양하게 그를 보았다

'나 이런 사람이야!'

 

그는 짐을 챙겨 오겠다며 먼저 나갔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나 혼자 스스로의 즐거움에 우쭐대며 창문을 활짝 열고 담배도 태우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무슨 즐거움에 겨워 보았다.




이렇게 좋은 것만 볼 수도 있는데 왜 나쁜 것들이 먼저 보이는 걸까? 앞으로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시각의 전화, 그것은 노력해야 할 습관이다.


가이드가 짐을 가져와서 베트남식 커피를 같이 마셨다. 그리고 다시 한참을 쉬었다. 가이드가 게임하는 걸 보다가 물었다. 


'우리 언제 출발해?'

'응, 지금은  출근시간이라 좀 기다려야 돼'


어젯밤 오토바이 부대의 위력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이렇게 천천히 식당에서 그는 게임을 하고, 나는 숙소 앞에 있는 잎 넓은 활엽수에 앉은 새를 한참 보았다. 그렇게 아침을 먹은 지 한참을 그냥 쉬었다. 


나의 조급함이 지날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출발했다.


잠시 후, 고무나무 숲에 도착했다. 

고무나무들은 가슴 마다 고깔 같은 것을 하나씩 매달고 있었다. 

상처 낸 몸통에서 고무나무 수액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흰 고무나무의 수액이 흘러간 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끈적거렸다. 흰 피 같았다.


나는 멍하니 고무나무 숲에서 한 참을 서 있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머리속에서 어떤, 

흰 시간 같은 것이 내 몸에서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고무나무숲에서 고개를 숙이고 

어젯밤에 성당에서 못한 기도를 했다.

고무나무와 바람과 고무나무 잎 사이로 팔랑팔랑 떨어지는 햇볕이 

어지러운 내 마음 곁에 잠시 머물렀다 

지나갔다.

작가의 이전글 기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