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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대드 8시간전

OO지옥

아들의 여름나기

지난밤 1시간 반에 걸쳐 올킬을 냈다. 

1시간 반동안 고작 2 킬이지만, 올킬이었기에 겨우 잠들 수 있었다. 

피해는 아들은 두 방, 나는 세 방, 다행히 아내는 0방. 

안방과 아들방을 오가며 총 다섯 방을 문 모기 두 마리는 이제 세상에 없다.


촘촘한 방충망을 뚫은 모기는 점잖은 곤충이라고 한다. 

모기를 일컫는 한자 모기 문은 은 벌레충蟲과 글월 문文이 합쳐진 한자로, 글을 배운 벌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아닐까 추측한다. 

유퀴즈의 벌레박사님이 소개하신 데로 실제로 모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바로 자리를 뜨지 않는다. 

벽에 붙어 '이 정도면 안 보이겠지'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흡혈을 준비하는 것만 같다. 

덕분에 모기의 소리를 듣고 나면 일단 휴대전화의 불을 밝혀 천장과 벽 등을 훑어본다. 

이때, 왜 집의 벽지는 하얀색이 좋은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무언가 튄 자국을 보게 되면 튀자마자 바로 지워둘 걸 하는 지난 행동의 반성도 하게 되는 걸 보면 모기는 참 좋은... 녀석이 아니라 거참 여간 성가신 녀석이 아니다. 


먼저 열린 안방문을 닫는다. 밀실로 만들어야 녀석을 포획할 수 있다. 열린 몸 뒤의 사각지대도 없애기 위함이다. 잠이 덜 깬 몽롱함을 애써 각성시키고자 또렷하게 눈을 뜬다. 눈을 비비면 눈 안에서 벌레가 떠다는 것 같은 비문증상이 보일 수 있으니 가급적 화각에 영향을 미치는 눈곱 정도만 잽싸게 떼어내고 눈꺼풀에 힘을 준다. 하얀색 벽과 천장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수색의 포위망을 좁혀나간다. 


그런데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덤불 속에 숨은 이상혁(hide on bush) 수색하듯 꼼꼼하게 훑었건만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소리는 들리는데 시각정보는 입력되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오른손에 전기 파리채를 들어 허공에 휘둘러본다. 공허한 스윙에 오던 모기도 더 깊숙이 숨어버릴 것만 같다. 


모기 녀석이 더 깊이 칩거한 것으로 판단, 작전을 바꿔본다. 

일단 아까처럼 눕는다. 얼굴 중심의 상체로 녀석을 유인할 수 있도록 이불은 발까지 푹 덮는다. 녀석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너무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6월 말의 더위는 열대야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견디기 어렵다. 

불을 끄고 녀석의 동태를 소리로 재확인하고자 한다. 시각적 정보를 차단하고 청각 정보를 극대화하여 모기의 이동 동선을 도플러효과를 통해 은신처를 발견하고자 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이런 잡다한 디테일도 보태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잠잘 때 사람의 숨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소리가 났을 때, 모기가 접근한다고 했다. 

'잠이 들면 숨소리가 어떻게 바뀌더라.' 

기억을 더듬어 호흡의 주기를 잦게 하고, 의식하지 않은 듯 호흡의 크기를 엷게 한다. 머릿속에서는 잠들 때의 호흡의 변화를 조금 더 집중해서 봐둘 걸 하는 후회가 들지만 지금은 완벽함보다 은신처에 숨은 모기를 꾀어낼 기지정도만 있으면 된다. 

호흡이 고르게 하고 숨을 마음껏 쉬지 않으니 당연히 잠이 온다. 되려 잘 된 일이다. 모기를 꾀어내기 좋은 조건이다. 메소드 연기 같은 수면 상태 호흡으로 유도되고 있다. 오른손에는 전기 파리채를 쥐어 dash를 준비한다. 

눈이 거의 감길 때쯤 왼쪽 귀에 엷은 모기의 날개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침대 머리맡 미등을 켜고 핸드폰 손전등을 들어 벽을 쳐다본다. 

뭔가 잘못됐다.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에 모기가 있지 않다. 혹 좁은 틈 사이에 있을까 하여 손전등을 이리저리 움직여 비집고 살펴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이때 갑자기 들리는 작은 날갯짓 소리. 

옅은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 쪽이다. 

커튼 주름 사이사이 그곳에는 모기가 숨을 곳이 차고 넘친다. 전기파리채를 꽉 쥔 오른손 그랩을 강하게 가져가고, 왼손으로 커튼을 흔들어 매복한 모기의 정체를 드러나게 한다. 시야에서 살짝 낮은 커튼 주름에서 흐릿한 회색이 빠르게 비집고 나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오른손은 강하게 스윙한다. 김성근 감독의 주문처럼 허리를 돌려 '뾱'하고 강하게 돌리지는 못했지만, 모기를 스치기는 충분했다. 

'따다닥'

파리채에 불꽃이 일며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솟구쳐 올라왔다. 


기세가 오른 나는 안방문을 열고 서둘러 아들방으로 향했다. 혹시나 모를 모기일당이 있을까 확인하기 위해 아들의 방을 뒤적거린다. 러키비키 하게도 이번엔 아들의 머리맡에서 아들을 노리고 있는 모기가 한눈에 포착되었다. 가벼운 스윙으로 잔당을 처리한다. 

나의 스윙과 전기 파리채의 파지직하는 소리에 아들은 살짝 잠이 깼다. 

'아빠 발목이랑 허벅지가 간지러워' 

이미 당한 아들의 발목과 허벅지가 볼록 부풀어 올라있다. 서둘어 호빵맨 모기패치를 꺼내와 볼록해진 환부에 패치를 붙인다. '잠 다 깼어'라는 투정과 함께 아들은 바로 잠이 든다. 


새벽 1시 33분 그렇게 집 안의 평화가 찾아왔다. 


색다른 동거가 시작되었다. 모기와의 동거를 피할 수 없다면 또 다른 지옥을 선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아들은 엄마와 함께 파리지옥을 사 왔다. 

10두 정도의 파리지옥은 든든했다. 축 처진 줄기가 걱정이긴 했지만, 물을 주고, 분무해 주면 줄기에 힘이 생길 것이다. 아들과 함께 모기 두 마리를 잡아 섬모를 건드려 배식하고, 요즘 인기인 러브버그 몇 쌍을 생포하여 각각 입에 넣어주었다. 

자체적인 모기 포획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파리지옥 배 곯리지 않을 정도로 벌레는 차고 넘치는 계절이다. 


모기는 파리지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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