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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Dec 23. 2023

내정자

화병 

이 일을 계속하기를 그만두는 것과

친구가 내정자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상당히 다르고,

후자는 진짜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의 3년이 너무 불쌍해지더라.


너는 덜 힘들라며

논문도 도와주고

심사도 도와주고

시험 문제도 공유하고

면절 질문도 공유했지만

그것이

네가 내정자로 들어가는 것까지 견디게 할 정도로

너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나의 고생을 아는 네가 

"내정자를 확인해 줘서 미안하다"라니

기만도 그런 기만이라니.


욕이 차오르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지만

연락하지 말라는 내 말에


다급히 

못할 말 한 거 같다고 미안하다며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은인이라고 뭐라도 사주고 싶다고

넌 이 일 안 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걸 보니

기가 차더라.


넌 사람 관련 일을 할 거면서도

입을 조심하지 못하는구나.


그게 그렇게 쉽게 주어 담을 수 있는 것이었으면

그 직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사과가 너를 위한 것임이 보였기에

그냥 톡을 나왔다. 

화를 내고 욕을 하는 것도

너를 위한 것일 테다. 

그렇게 듣고 넌 너의 즐거움을 만끽하겠지. 

욕심도 많구나. 


바빠질 3년을 보내면서 

내 존재는 사라지겠지. 


사실 사인은 이미 있었다. 


내정자 아니냐는 말에

자기 교수의 업보고.

너네 교수는 그걸 버렸다고 말하는 것에서.


너 자신도 다른 지역으로 시험 보러 갔을 때 

느꼈을 거다.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네가 차라리 잘하는 얘였다면

내 속이 이렇게 뒤집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나타난다.

 

정보의 부족과 안식년으로 갈라진 지도교수의 차이로

나타나는 라인은 오로지 이 지역에서만 해당된다.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일을 해볼 기회는 가질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여기는 아니지만,

그놈의 라인은 

적어도 회사에 들어가서 시작된다. 


조금 더 빨리 알았으면

이렇게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


새벽에 울면서 깨거나

가슴을 치게 된다. 

화병은 한국의 문화적 질환으로 정신질환 진단에도 등재되어 있다. 

불안장애군과 비슷하지만, 

특유의 신체 증상과 원인이 있는 다른 진단 기준에는 명확히 들어맞지는 않는 

우리의 언어로 된 질병명이다.


여기에는 너에게 진심으로 대했던

나에 대한 자책감과 자조감이 섞여있다. 


3년 동안 배우고 공부한 게 이것뿐이라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것일 테지만.

   

일이 힘들더라도 사람이 남지 않는 경우는 없던 터라.

나에게 대학원 2년은 꽤나 충격이었다.

이렇게 미숙한 유형의 사람들이 남을 돕겠다고 그 자리에 있다니,

여러 대외 활동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사회적으로든, 열정적으로든, 능력적으로든 미숙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내가 이 직업과 맞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오랜 고민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했다. 


바로 윗 선배들이 없었고

또 잠깐 학기가 겹칠 때는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만 들었기에 

지금도 연락하는 유일한 사람인

다른 분과 언니가 내게 해줬던 만큼만 후배들에게 해주려고 했다. 


뭐가 어려운지를 알고 있었고,

개인이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았으니깐.

친목을 도모하려고 밥이나 술을 먹자는 게 아니라,

업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사수로서 해야 하는 것들. 

내가 원했지만 받지 못했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것들. 


그것은

연구실의 리더인 교수가

능력적인 면에서는 끊임없이 완벽함을 요구하면서

말도 안 되는 것들로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는 

소위 말해서 찍혔던 내가 

자신의 통제감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쉬려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노력이 

그 얘들에겐 당연했고,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아예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게 되었다. 


누구나 지랄 맞은 상사가 있다. 

원수는 직장에서 만나지 않는 가. 

그럼에도 같이 욕해주거나 수고한다는 주변 동료들의 말 한마디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나.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시간들이었고,

그 얘들에게는 내가 방패였을 것이다. 


"언니는 잘하니까요."

그 한 마디로 모든 걸 끝내던 너희를 가능케 한 것은

걔네의 미숙함과 나는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하는 교수의 묵인이 있는 것이다.

잘못을 해도 혼나지 않는 너희를 보면서 

나는 조그만 조직에서 어떻게 역동이 나타나는 가를 확실하게 배웠다. 


나는 언제나

배움에 목말라 있었고, 

열정적이었으며, 

최선을 다 했고,

상처받았으며,

괴로워했다. 


나는 구걸하듯이 질문해야 했고,

너희는 그냥 그것들을 얻었다. 


이것은 결국 모두 이어지는 이야기다. 


다시

나는 너에게

친구이자 후배라는 역할을 부여했고

너를 도우면서

내가 받지 못한 결핍을 해소하려고 했다. 

우리 모두는 그 혜택을 받아서 점차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게 페미니즘이니까. 


그리고 

나는 소외된 채로

너는 그냥 얻게 되는 것이 다시 반복되는구나. 

나의 지침 속에서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일까. (내 연구의 주제이기도 했지.)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삶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끊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대체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인데. 


사회성이 떨어지는 너희가 문제라고, 운과 타이밍이 나빴고, 보수적인 환경이라고 외부 귀인을 하기에는 

나에게 지나치게 반복된다. 

사람에게 기대한 내 탓이라고, 노력과 실력이 부족했다고 내부 귀인을 하기에는 

혼자여서 외로운 나와, 충분히 노력하고 실력을 키운 내가 있다.  


내가 바뀌면 

남도 바뀐다. 

그것이 역동이고, 

당신이 미소 지으면 상대가 미소 짓지만,

소리를 지으면 상대도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이런 상황에도 적용이 되는 가?

이것은 심리 치료에서 다룰 수 없는 한계이다. 

이들은 상황에 관심이 없다. 

개인이 가진 마인드 셋의 변화는 치료자가 손댈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다. 


우리가 소확행으로 팍팍한 삶을 이겨내보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만능은 아니다. 

결국 상황은 그대로인데 일종의 '정신 승리'이니까.

괜히 복지와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벌어들이는 돈이,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 다른 것이니깐.  


대부분의 치료는 개인의 자책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바뀌게 하려고 한다.  


놀랍게도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가스라이팅과 같은 심리적 조종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전통적 치료에서는 이들이 그 상황에 대한 안정을 추구하기에  그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으로 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차라리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개인의 잘못은 아닐 것이며, 그렇게만 해석하는 것은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미성년자에다 여성이라면? 나와서 정상적으로 일할 곳이 있는가? 국가의 보호는 고작 18세까지가 아닌가? 다른 가족들로부터 고립된 상황이라면? 지켜야 할 아이가 있는 거라면? 남자라면 사회적 시선은? 믿어는 줄까? 등등 


성소수자가 정신질환 진단기준에서 배제된 것도 겨우 2013년이다. 

10년 전에 그들은 정신질환자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편협적인 세상에서 

진단이라는 것으로 더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가고 있는지. 


주변에 추천할 임상가와 치료자가 없었다. 

그래서 나라고 왜 못할까 해보자는 생각이 컸었다. 

모임에서 자주 보던 

내가 진짜 페미니스트인지 확신이 없고, 주변의 시선과 낙인이 두려운데도 이 사상에 안정감을 느끼는  

페미니스트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연구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구했고, 예상한 결과를 얻었다.


끝내고 보니 석사로서는 예상한 결과를 얻는 것이 드문 일이었다.

그보다는 연구가 제대로 안 된 키논문도 없는 분야를 하는 것도,

간학문적으로 섞는 것도,

선행연구가 없는데 예측을 하는 것도,

오로지 내 아이디어로 설계를 하는 것도,

보고 싶은 것을 확인할 도구가 없어서 분석법을 적용해서 찾는 것도,

분석과 해석에 도움을 받지 못한 것도,

논의를 오롯이 써내는 것도

모든 게 드문 일이었더라. 


재능이 '남들은 왜 못하지'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고 계속해왔다.


이공계 연구원인 내 친구가 그러더라. 

"대체 왜 너희 쪽은 주제가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건 그냥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핵심은 네가 연구를 했고, 남들보다 집요했으며, 결과를 냈고, 그로 인해서 사용할 수 있는 분석도구도 많은 것이 아니냐."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병원마다 다를 거라고.

실제로도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볼 수 있게 기회를 얻었으니깐.

그게 끝이었지만.

또 다른 내정자는 연구 제목만 보더라 과정과 결과는 중요치 않더라.

난 면접에서 질문조차 받지 못했으니깐.

모든 시험에서 면접을 갈 정도로 성적을 못 낸 것도 사실이니깐.

족보가 뭐가 중요하겠나. 결국 못한 것이니까.


트렌드가 아니었고

보수적인 이곳에서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었기에

주제를 바꾸려고도 시도했었지만, 거절당했다.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해외는 아니거든

그리고 이건 전 세계적 흐름이니깐

해외 퍼블 하긴 좋거든.

누가 자발적으로 저렇게까지 써내겠니.


내가 병원에 붙건 말건 

알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제목도 교수의 짜증으로 수정된 거고

결과에 맞춰서 바꾸고 싶었으나 히스테리 듣기 싫어서

결과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해서 관심도 못 끄는 제목을

내버려 둔 내 탓이니깐.


언제까지

    {이 교수 밑으로 오지 말 걸  

    왜 이 새끼는 다른 얘한테 다 말하던 단점을 말해주지 않았지?

    한 학기 더 기다리는 게 뭐라고 안식년 기다릴걸

    이 주제를 하지 말 걸     

    거절했어도, 한 학기를 더 했어도 바꿀 걸

    후배들한테 다 알려주지 말 걸

    내 코드 동기한테 주지 말 걸

    지도교수 눈치 보느라 다른 교수님과 연구제의 거절하지 말 걸

    나한테 왜 그러는지로 아파하지 말 걸

    받으라던 장학금 받지 말고 그냥 사업에 응모할 걸

    그렇게 용쓰면서 버텨내지 말 걸

    그 시간에 공부나 할 걸

    하려던 이유가 있으니깐 나를 믿고 끝까지 해보자고 되뇌지 말 걸}

이 루프에 갇혀 있을 수가 없다.


이제는 그만해야겠다.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것도 능력이다. 

그리고 포기를 하는 것도 큰 용기가 아니겠나.


나는 똥도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아는 사람이다. 


결국 난 이 집단에 속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과로써 나타나지 않는 가. 


그래.

유재석 님이 유퀴즈에서 올해의 것은 올해에 두고 가라고 하시더라. 


너와의 톡을 나오면서 

난 이제 연결고리가 없다. 


오랜만에 내 사람들을 만나면서

올해에 것들은 여기에 두고 새롭게 챕터 2를 맞이할 것이다.


화병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고, 

조금 더 울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취직을 준비하면서

너도 너희 모두도

나에게도 잊힐 것이다. 


그냥 더도 덜도 말고 너네 같은 사람들과 함께 평생 살렴.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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