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한 줄에 체크하지 못하는 것뿐
월요일에 최종까지 갔던
면접은 그저 배수를 위해 날 뽑았는 데,
나는 다른 병원 시험을 버렸다.
그렇게 끝이 났다.
화는 무척 났지.
후순위라고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하지 않는 면접을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늦을까 봐 또 택시를 타고
면접관이 늦어서 30여분을 넘게 기다렸으니
면접비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나마
슈바가 한 마디라도 더 하게 하려고 질문해 주는 게 느껴져서
좋은 기억으로 남겨질 것 같으니
나는 얼마나 이곳에 찌들었는가.
아직 병원들이 남아있고
시험과 면접의 기회가 있다.
누군가는
서탈만 하다가
필탈만 하다가
면접에 가고
최종까지 갔으니
그다음은 합격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리 녹록지 않달까.
방대한 공부량과 중구난방 난이도와 유형에 맞추려면
반복적인 복습을 해야 한다.
이미 멈추고 질린 것이기에 합격률은 떨어진다.
정리본을 보면 진짜 지독하게 공부하고 정리한 게 보여서
웃긴달까.
들어가면 꽃이 피느냐.
아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럴까 싶겠지만 그런 곳이 여기다.
석사를 뽑으면서 당당하게 무급을 내거는 곳이 이곳이다.
수련 공백을 없애겠다는 이상적인 슬로건 아래
졸업 후 기한 안에 자격증을 따야 대학원 때의 시간이 인정이 되게 기준이 만들어져 있다.
면허도 아닌 자격증을 준다.
그 자격증을 얻기 전까지 매해 수련 등록과 보고를 해야 하기에
아무리 괴롭히는 지도교수든 슈퍼바이저든 참아야 한다.
사인을 안 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학회는 알면서 묵인한다.
매해 처우개선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수련처가 증가되거나 괴롭히는 슈바가 징계를 받지는 않는다.
그저 개인이 운이 안 좋았고, 결국 버티지 못한 것일 뿐이다.
너흰 수련생이지 않느냐, 교육을 왜 돈 주면서 해야 하느냐
정신과 수가가 없으니, 너희 돈 다 주면서는 수련을 시킬 수 없다.
수련이 뭔 줄 아는 가?
기업과 같다.
배우고 일하는 것이다.
평가를 실시하는 법을 배웠으면, 평가를 한다.
보고서를 쓰고, 슈바에게 확인을 받고.
치료를 배웠으면, 치료를 한다.
프로그램을 짜고, 실시하고, 슈바에게 확인을 받고.
차이는 하나다.
그것을 기록하여 이를 슈바에게 사인받고
학회에서 추후 자격시험을 받을 조건을 갖출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돈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학교인가? 아니다. 병원이든 센터든 사업장이다.
이익도 계속 생긴다.
부족한 수가와 정책의 책임을 우리 보고 지라고 한다.
물론 최저와 비슷하게 혹은 더 주는 소수의 병원들이 있지만,
월 200 이상을 주는 곳은 많지 않다.
그래서 그 병원들에 들어가고자 경쟁한다.
그런데 8-5인가? 아니다.
보고서를 쓰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굴려진다.
수면권 보장을 들어봤는가?
스타트업이 비슷하다면 비슷할까.
일만 힘들면 그래 할 수 있다.
거기에 사람까지 갈군다면 한층 힘들어진다.
뛰쳐나올까 봐,
엑셀로 전화번호부를 만들어서 생명줄처럼 붙들고 있는다고 한다.
한 명한테만 하면 상대가 질리니깐.
소수의 유니콘과 같은 슈바들도 있다고 한다.
로딩이 적은 곳들도 물론 있다.
돈도 줄어든다.
들어봤는 가 40?
그걸 주면서 유급이라고 하며, 로딩이 많은 곳들도 물론 많다.
그래 뭐
다 감수했다고 치자.
돈이 많거나, 아르바이트하고, 미리 생활비를 벌어서 어떻게든 간절하다고 치자.
너무 폐쇄적이다.
족보와 학연, 지연 어디든 있지만
이렇게 판치는 곳은.. 정말 많지 않을 듯싶다.
그러면 못 들어간 네가 능력이 없다고 한다.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낮았던 거라고.
그래 뭐 한 두 명이 이렇게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거의 매번 매 병원마다 라인을 묻고,
없는 자리 만들어간다는 말이 나오고,
교수가 자기 제자가 일하고 있다고 시험 일주일 전에 면담을 잡아주고,
홈페이지에서 결코 알 수 없는 시험, 면접 정보를 얻고.
자리가 많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도 있겠거니 싶을 것이다.
서울권역 전체 병원들을 합쳐서...
30명은 뽑을까?
가장 많은 병원들이 밀집해 있는 그곳에서도 최소한의 150 이상의 급여를 받는 자리는 저 정도이다.
지방은.. 도 단위로.. 2-10명인데 대개 급여가 작다.
많으면 한 학교에서 한 해 졸업생이 7-8명이다.
대개 서류부터 경쟁률은 1:100 이상이고
다수 기업들도 이 이상의 경쟁률이지만, 폐쇄적이진 않지 않은가.
족보라니.. 웃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뚫고 들어가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
대단하신 분들이고
다만 나는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다.
1, 2월 무급, 교육비, 생활비 등을 쓰면서
마이너스 생활을 하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다.
슈바의 폭언도..
안타깝게도
난 이미 대학원이 녹록지 않았고
졸업할 때 내가 되뇌던 말은 하나였다.
"2번은 못한다."
그거 때문에 지난 1년 준비 때도 얼마나 속을 썩였던가.
급여도, 슈바도 거르면 갈 데가 별로 없는데,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맞냐면서
괜히 공부 집중도 못해가면서 자책했던 나날이었다.
어쩌겠나.
대학원 기간이 대비가 아니라, 공포스럽게 된 것이 내 탓이겠나.
처우도 문제지만, 고민을 계속해왔던 지점이기도 하다.
힘들어도 잘 해낼 거 같은 무던한 선배가
"배우는 것이 많지만, 다른 곳이었어도 충분히 배웠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아... 내가 졸업 직후 했던 말이라는 게 떠오르면서 싸했지만,
당장 공부가 급해서 눌렀다.
비상연락망?
이미 대학원 때 친구들이고 가족들이고 질려해서
돌려가면서 연락해봤다.
나도 내가 질리더라.
또
해야 한다니
........
숨이 막힌다.
상황적 핸디캡은 누구에게나
여러 종류로 있는데 그걸 누르며, 다들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나에게는 지금이 한계였던 것 같다.
내가 변한 탓이겠지만,
아쉬우니깐 온라인 지원이라도 해보자는 말에도
"너나 하라고, 난 못하겠다고
최선을 다해서 해왔고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나오더라.
공고란을 들어가서 보는데도 조금만 더 해보자고 스스로를 달래는 말도 안 나오더라.
버킷리스트를 쓰면 이루어지는 것을 나는 경험해 왔다.
뉴질랜드 워홀을 갔던 것도 고등학생 때부터의 버킷리스트였고,
가서도 한 페이지 빼곡히 계획인지 버킷리스트인지 모를 것을 전부 다 해냈다.
3년 전에는 대학원도 내게는 꿈같은 곳이었다.
취직을 고려했었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공부를 더 해보자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걸 그냥 지금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이룬 것이었다.
아니깐, 해봤으니깐, 방향을 잡고 조금씩 다가가면,
하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으니깐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면서 온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해오면서,
하기 싫어졌던 순간은 없었다.
하고 싶은 데 내가 못 해낼 것 같은 순간들만 존재했었지.
2주쯤 전에 쓴 글에서
결정을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우유부단해지는 분야가 바로 여기다.
시도를 다양하게 하는 편이라서
여러 가지를 해봤고, 발도 여러 번 빼봤는데
위의 모든 단점에도 계속했었다.
그게 발목을 잡았다.
내가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 분야를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힘들어서 찾아간 상담에서도
대학원을 왜 안 그만두냐, 열심히 하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하니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걸 너무 좋아해서"라고 하더라,
같이 하던 친구도 너만큼 진심인 얘를 못 봤다고
"너는 되어야 한다"라고 했지만
아마 그것이 내가 빠르게 지친 원인이지 않겠나.
좋아해서 막 대해도 버텼고
좋아해서 잘하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조금만 더 해보자고 끌고 왔고
그렇게 무뎌졌어야 했는데 지쳤으니.
고등학교 때부터 희망했던 과였기에 10년이다.
그리고,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지점에서 그만두려는 내가
나도 믿기지가 않다.
쓴 돈도 많고,
들인 시간도 엄청나다.
뭐
어쩌겠나.
끝이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나에게도 미안하고
결국 이럴 거였나 싶지만.
공고를 보면 시험 면접 왕복 비용과 시간 쓸 거만 떠오르는 데.
붙어도 1년이든 3년이든 막막한데.
매몰 비용이 너무 크다.
그 이후에도 해야 할 반복 업무들은 내가 꿈꾼 게 아닌데
그것마저도 학연 지연인데.
순혈종을 사랑하는
그들은 그렇게
계속 살 테고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스스로를 깎아내던 나는 어느 순간 죽어갔겠지.
어릴 때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말을 싫어했다.
너무나 무책임하고 불합리하지 않은 가.
그 중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갈 정도로
절을 가고 싶었던 게 아니겠나.
그런데 환경은 어쩌면 개인의 능력치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능력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매번 눈으로 확인하지 않나.
그것을 만들어주고 가꿔주는 환경이 있다.
체념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적어도 절에서 나오면 달라지지 않겠나.
독종이라는 말을 안 들어 본 적이 드물 정도로
꽂힌 것들은 해내왔다.
그런 내가 포기하는 것은 나도 신기하다.
아깝지만 할 만큼 했다는 거겠지.
10시간? 15시간?
원래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기에 떠나는 것이다.
그 시간을 들여서
다른 것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적어도,
더 나아지고 배우려고 하는 것을 처벌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다.
물론
어딜 가나 문제 되는 사람들은 있고,
상성이 안 맞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산업 전체가 그렇지는 않겠지.
버킷리스트의 한 줄은 체크하지 못하고,
가운데 줄이 그어질 테지만
그뿐이다.
직무를 전환하면
오히려 더 취직이 안 되거나
무경력으로 힘들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시도라도 해보려고 한다.
폐쇄적인 직업 특성상
다른 직역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은
수련 공백기로.. 불가능할 가능성이 더 높다.
돌아올 생각이 없기에
상관없다.
바로 옆에 쌓여있는 책을 보면서도
이토록 무감해지다니.
몬테로소의 분홍 벽이라는 동화책에서
고양이는
꿈에서 본 몬테로소의 분홍 벽에 반해서
주인을 떠나고
온갖 경험을 한 후에
결국 그곳에 다다른다.
처음에는 의지가 꺽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하고 싶은 것이 바뀐 것이고,
그렇다면 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