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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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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Feb 17. 2024

살다 보면 살아지지.

이 또한 지나갈 거야.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동기의 유학소식과,

수련 합격 여부를 묻는 이메일을 받은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글쎄,

그렇다면 내가 헛공부를 한 거겠지.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은 너무나 같잖지 않아?


언제나 말을 섞을 때면, 

당신의 말은 나를 무너지게 했어. 

그래서, 공부를 다 끝내고 메일을 읽으려다가 잠은 평온하게 자고 싶어서 

다음날 아침에 봤어. 


고민이 웬걸. 

그걸 물을 줄은 알았지만 그 한 줄일 줄이야. 


기가 차더라. 

내 친구의 말을 빌려올게. 

"이제 와서?"


참, 아이러니하지.


한 사람 때문에 포기하기 싫었고, 치료받고 약 먹으면서 대학원 2년을 버텼어. 

너무 힘들어서 바로 수련을 못 갔고, 1년 반을 더 공부했어. 

그리고, 면접을 보는데 당신이 투사돼서 못하겠더라.


돈도, 워라밸도, 연구를 하고 싶어서도 뭣도 아니었어. 

당신 같은 사람 또 만날까 봐 무섭더라. 

이 분야가 참,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하잖아. 

"2번은 못하겠다"는 말이 절절히 나오는 나를 보면서 내가 놀랐고,

그만둔 거지. 

도망친 거지. 


어쩌면, 진작에 도망쳤어야 하는 건데

버티고 버텼는데 

안 되더라. 

기대가 사라진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사실은 매일이 힘들고

새벽에 깨고

가슴이 아프고

자주 울어.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항상 되묻지. 


내가 이 분야를 이만큼 좋아했다는 것을 당신이 몰랐겠니.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았는데

너도 알았겠지.

알겠지.

나만큼 연구에 미쳐서 그 정도 아웃풋 석사에서 뽑아낼 사람 

교수가 흥미로워하고 되물을 정도의 질문을 항상 하는 사람

언제나 고민하고, 찾아보고 말하는 이상적인 대학원생. 

너 다시는 못 만날 거야.

이미 느끼고 있을 텐데. 


당신을 탓하고 싶지 않았어. 

시간이 흐른 후에 "누군가 때문에 한 분야를 포기했어."라고 말하는 건 

자신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 같았거든. 


이제 또 상담을 받으려고. 

너 때문에 또 받아. 

이젠 마지막이면 좋겠네 제발. 


나도 살아나가야 하잖아.

언제까지 망령을 붙들고 살 순 없잖아. 

그래서 원하는 선생님께 요청하는 메일을 쓰는데

요청 동기, 현재 상태, 증상을 간략히 설명했지. 

참.....

망상, 우울, 공황 증상. 


어쩌니. 

너더라. 

당신을 지워내지 못해서

내가 포기했더라. 


작년에 공부만 하지 말고,

치료도 같이 받았으면 지금쯤 수련을 받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해. 


의미 없는 가정이지.

그때는 이렇게 문제가 될지 몰랐으니까. 

시험 보러 다니면서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때는 공부해야지. 

잘 시간도 없었는데 무슨 상담이야. 


너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네.

왠지 내가 아는 당신은 그럴지도. 

그래, 내가 졸업하자마자 너를 차단했지. 

근데 그것을 시작점이 아니라 결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연구 봐주지도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옆 교수님이 심사위원이셔서 의견 준 것마저도

눈치를 주면 나보고 어쩌라고. 

나가서 둘이 싸우던가. 

그럴 거면 적어도 내가 물었을 때 알려는 주던가. 


알잖아.

모른다고 하면서 안 알려줘도

이거 하라고 말 안 해도

알아서 다 했어. 

거기다 언제나 잘해야 했잖아.

못 하면 거짓말이라며 

난리난리 친 거 기억은 하려나.

같이 랩미팅 듣던 얘들이 "언니한테 왜 저러냐고"

의아해했던 거 넌 모르겠지. 

그것에 할 말 없던 나는 어땠겠니.

교수의 "감정 쓰레기통"같다던 난 어땠겠어.  


알잖아. 

대답 안 해줘도 물었던 거. 

수업 때는 신나서 답하더구먼

랩미팅은 

개인 질문은 왜 그랬니.

그렇게 사는 거 안 힘드니?


내 석사 친구들 다 웃더라. 

누가 석사가 그러냐고. 

너 박사 했냐고. 


당시 가던 병원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교수님을 서운하게 했나 보다라고. 

갑자기 "박사는 안 할 거죠?"라고 묻던데.

기가 차더라. 

그걸 원했으면 말이라도 꺼내지 그랬니. 


솔직히

나는 내가 안 그만둘 게 보여서

네가 괴롭힌다고 생각했어.

진짜 그랬는지는 모르겠네. 


내가 위플래시(Whiplash, 2015)에 

비유를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알까.


그거 아니?

그 영화감독이 결말은 이겨낸 게 아니라

자신이 부서진 거라고 했어. 

최악이라고. 

30대쯤인가 마약중독으로 자살할 거라고.


흔히 말하는 병원 fit

침착하고, 표정 변화 없고, 빠르게 반응하고,

말투에 고저도 없는 것.

그거 아픈 거야. 

질렸지만, 해내야 하는 사람들한테서 보이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나쁜 건 아니지.

그냥 일이잖아. 


나는 얼굴빛을 한 번 잃어봤고

삶도 휘청였어서 무섭더라고. 

결국 "2번은 진짜 힘들겠더라."


좋게 생각했으면 기회였는데

드디어 면접에 가기 시작했던 거잖아. 

근데 그땐 공포에 시야가 좁아졌더라고. 


그게 내가 상담을 신청한 이유야. 

또 그러면 안 되잖아. 


그래.

다시 돌아오면, 메일에 뭐라고 답할까 싶었어. 

그런데 앉으니깐 그냥 써지더라고.


당신이 

뭐라고,

내 말을 지금껏 들어준 적도 없는데

위처럼 구구절절이 쓸 순 없잖아. 


그래서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어. 

수련에 떨어졌고, 내 길이 아닌 것 같으니

다른 길을 준비 중이라고.

그 길이 심리학은 아닐 것 같으니

안녕히 계시라고. 


다들 다신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던데

그러니?

난 그냥 하던 대로 쓴 거 같은데.

깔끔하게 쓰려고 했어.

담백해야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바뀌는 게 없는데.


아, 그 생각은 많이 했지.

내 상태를 의논할 만한 선배가 있었으면 

조금 더 해보자는 친구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아마도?

그래서 대학원생을 위해 쓴 글에는 꼭 함께 하라고 써놨어. 


인접분야.. 

임전도 고민했고, 상담도 고민했고, 사복 따거나, 경찰 쪽 가는 거 다 스치긴 했는데

하고 싶진 않더라고. 

돈이 너무 들거나, 너무 힘들거나 잖아. 

그냥 사람에게 멀어질 때인가 봐. 


아, 너한테는 말 안 했는데

개발 쪽 공부해보고 있어. 

오늘도 코드 짜다가 막혀서 끙끙대는데


진짜,

아무것도 뭣도 모르고 난 어떻게 논문을 썼을까.

영상도 레퍼런스도 많이 없는 분석이었는데,

찾을 수 있는 거 다 찾아보고 R package 다 찾아서 읽고,

그땐 GPT도 없었잖아.

논문도 다 찾았는데 없어서

너한테 물었는데 

찾으면 있을 거라던 거 

넌 잊었겠지.

항상 그랬으니까. 


그래 그래서 이전 학기 matlab 찍먹 했을 때 

배운 기초로 행렬 어찌어찌해가며 겨우 코드 직접 짰어.

네가 아끼던 

너는 편애 안 한다고 주장하던 

내 동기가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어디서 찾았냐고 할 때 웃기더라.

"내가 짰지." 

어떻게 하니. 

걘 그거로 연구비 2번 탔잖아. 

너 그거 비리다. 


난 그 수업 안 들었으면 

졸업 못 했을 걸.

근데 넌 그거 들었다고 성질내더라. 

그럼 잘해주던가. 

지금도 아쉬워.

그때 그 교수님이랑 같이 연구했으면

그쪽을 계속했을 거 같아서.

너 눈치 보지 말 걸.  


어쨌든 

그때의 암담함이 생각나는 동시에

대견했고

고마웠고

힘도 나더라. 


뭣도 모를 때도 했는데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근데

차마 메일에 

상투적으로 항상 쓰던 

"건강해라, 감사하다" 

못 쓰겠더라.


그냥 

건강.. 뭐 나쁘렴.

나쁜 거 아는 데

알아서 하렴. 

나도 안 좋거든. 


감사.....

는 못 하겠는데?

그냥 이대로 살 게. 


물론 배운 거 많아.

근데 다른 데에서는 더 배울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안 지쳤다면 더 많은 걸 했을 거 같은데?


솔직히

적당히 하라고 하고 싶었어. 

또 잃지 말라고. 

아니, 더 이상 누군가를 더 좌절시키지 말라고.

근데 누구 좋으라고 하겠니.


난 내 거 끌어 쓰다가 트랙에서 내려왔는데

내가 뭘 더 해.

최재천 교수님이 이것저것 해보다가 맞는 거 같으면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그저 달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내 거 같았는데

내 길이 아니었나 봐.

이런 거로 무너질 거면 

아닌 거겠지.


난 그냥 

심리학이랑 연애했다고 치려고. 

요새 B.I 노래 가사가 좋더라. (겁도 없이 中)


겁도 없이 난

사랑에 빠졌다

아마 잠깐 수줍고

오래 아리겠구나



오래 아릴 거 같긴 해 

그래도 지나가겠지. 


살다 보면 살아지잖아.

그렇게 쌓아나가야지.


이렇게 쓰고도

내일 아침 새벽에 눈 떠서

아파하다가

괜찮다고 다독이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또 조금씩 움직일지도 몰라. 


그것도 사는 거니까.


나 문신도 있었지.


surfline에서 파도가 오는 것을 보드 위에서 보는 그림


왜 새겼게?

그러고 보니 대학원 가기 직전에도 네가 두려워서 새겼었다. 

생각난다.

오는 파도 눈으로 마주하면서 

탈 것과 보낼 것, 조심할 것을 확인하려고. 


Calm like the Ocean.

처럼 살고 싶었는데 폭풍우를 지나 보냈네. 


진짜

내 삶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우진 못할 사람인가 보다 네가.

하긴, 20대 중후반을 꽉 잡혀있었으니. 


산 날이 더 많아지면,

잊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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