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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베넷

생동하는 물질

by 이물질


제인 베넷(Jane Bennett)은 미국의 정치이론가입니다.

그녀의 대표적인 책의 제목은 <생동하는 물질> 사물의 정치생태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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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물질이라는 단어와 함께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돌을 형상화한 작업물이 보입니다.

이런 생각자체에 물음표를 던지는 듯한 그녀의 이론은 사실 제목에 대부분의 생각이 녹아져 있는 듯 보입니다. 그녀는 그동안 날것 그대로의 활기 없는 것 또는 무력한 것으로 물질을 여기는 생각에대해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며 생기적 유물론을 주장한 학자입니다.

그동안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진 ‘물질’에 집중해서 사물의 활력과 행위성을 끌어 내려 노력하는 이론을 전개한다. 이런 책을 읽어도 여전히 물질이라는 단어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라는 판단과 의식이 주어집니다. 이미 1970 년대부터 시작된 환경과 자연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의 무분별한 소비와 속도에 대항해서 구조를 벗어난 사고를 하고, 새로운 정치적 입장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인간과 물질을 존재론적으로 구분하고 인간은 계속해서 물질을 소비하는 구조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동물, 식물, 세포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기는 한계가 있음을 매일 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일방적으로 인간의 이성이 적용되는 대상일 뿐입니다. 죽어있거나 철저히 도구화된 물질이라는 이미지는 인간의 자만심과 정복 및 소비 등 지구를 파괴하는 인식의 환상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경우는 페미니즘과 동물권의 사례에서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의식이 그들과 우리의 존재가치가 구별된다고 생각하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식과 사회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인간과 물질 사이에 놓인 계층을 무너뜨리는 존재론이 필요하다는 의지가 있는 제인 배넷은 사물이 가진 행위성과 물질의 활력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나는 ‘생명’과 ‘물질’이라는 수사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하여 흔한 단어를 계속하여 반복하면 낯설고 무의미한 소리가 되는 것처럼, 그러한 수사가 기이하게 보일 때까지 그것들을 뒤흔들 것이다.”


제인 베넷은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소(actant) 이론을 발전시켜 생기적 물질성의 담론을 강화합니다. 라투르는 사물의 행위성은 인간과 비인간의 결합에 의해 생긴 관계를 통해 발휘된다고 보았지만 베넷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인간 행위자들에게 그 자체로 잠재적 행위성이 있다고”바라봅니다. 베넷은 환경주의자가 나를 지구 위에 사는 존재로 여긴다면, 생기적 유물론자들은 나를 지구 그 자체로서 자기 자신이라 말할 수 있는 다양한 물질들을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지고 나 자신와 동등한 존재로서 여긴다고 표현합니다. 환경주의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태계의 보호와 그에 대한 현명한 관리를 요청한다면, 생기적 유물론자는 우리 자신이라 할 수 있는 강력한 물질성이 행위적 배치 내에서 우리와 부딪히고 대립한다는 이유를 들며 그러한 물질성에 전략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질을 인간과 동등한 정치적, 법적 주체로 인정할 때 인간은 이들 물질에 내재하는 생동적 물질성과 결합할 수 있다. 비인간 행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생성해 정치적 흐름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작동하고, 인간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좌우하는 정치적 행위에서 벗어나 인간, 비인간, 환경이 결합하는 새로운 생태적 정치 행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인간의 행위성이 인간과 동등해진다면 인간과 비인간 물질을 포함한 모든 관계에서 행위자의 결합은 곧 주체가 된다. 인간은 우월한 존재도 자율적 주체도 아니며 연결망에 얽혀 있는 수많은 행위자 중 하나이다. 인간과 비물질의 사회는 물질들과 사물들의 복합적인 관계로 구성된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서 변화하고 발전되며 수정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정동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베넷은 제시한다. 인간 외 비인간의 영역을 물질까지 확장하는 베넷의 논의는 우리가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한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대자연 또는 정글, 바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편집된 이미지는 인간의 신체에서 그리고 인식에서 비인간의 권력을 감지하지 못하게 막음으로 환상 이미지를 더 강조한다. 비인간은 생명력이 없고, 도구로 사용되는 인식이 인간 자만심과 파괴를 유도하는 이미지를 키우기 때문이다. 물질에는 감정이나 생동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더 생태학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막는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동하는 물질에 대한 이론을 정교화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 시각 아닌가? 라는 질문에 베넷은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대답한다. 물질, 생명, 자아, 자기 이해, 의지, 행위성에 대한 조작적 개념들을 수정하게 되면 수행적 모순으로 여겨졌던 것들은 마땅히 소멸할 것65이기 때문이다. 라투르가 말했듯이 이원론과 근대에 대항하는 것이 모든 것을 동일하게 생각하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특징을 무시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객체와 주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갇히기 보다는 다른 방법론을 따르려 노력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로 주체성을 확장하거나, 인간을 사물처럼 다루거나, 기계를 사회적 행위자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며, 인간과 비인간의 포개짐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주체-객체 구분을 사용하기를 피하는 것’66이다. 이와 같은 라투르와 베넷의 주장으로 인간이 생태계와 새로운 방법론과 관계를 탐구하는 것은 생명체와의 사회적 관계를 마주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범주는 감각과 인지로 이루어져 있다. 베넷은 인간이 일상적으로 우리가 인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자, 분자, 유전자 게놈과 박테리아와 지방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이런 구조에 대해서 주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더 많이 자주 이런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고, 지구를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의 이질성에 주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베넷의 이런 통찰은 현재 COVID -19 라는 바이러스와 기후 위기로 인해 촉발된 전 지구적인 상황이 비인간이 가지는 생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그들과 인간이 가지는 배치와 상호관계성에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적 결과물은 우리가 더는 비인간물질을 이전과 같은 인식으로 바라볼 수 없음을 확고히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동물과 자연과 물질들의 힘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드러내는 행위성에 집중하는 태도는 어떤 것일지 질문하게 한다.


[참고문헌]

제인베넷- 생동하는 물질

김환석- 21세기 사상의 최전선"호수와 나무에도 법적, 정치적 권리가 주어져야하는가?"

브뤼노 라투르- 판도라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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