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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에서 발췌

by 이물질



[스토리(story)]



영구의 작가 윌 스토(Will Storr)는 기본적으로 문장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신경을 움직이는지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이야기를 읽을 때 머릿속에서 환각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이야기를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의 서사 선택이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뇌가 그러한 메타인지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전문가 켄들 헤븐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야기는 중력과 같다"고 설명한다. "당신은 중력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중력이 당신을 땅으로 끌어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러한 힘 혹은 이러한 압력을 물리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의식하지 못한다. 마치 당신이 날씨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중력을 느낄 수 없다. 왜일까? 당신이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중력이 아닌 것(무중력)'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을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물이 아닌 것'을 경험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복잡한 사건을 상상할 때 그러한 사건을 볼 때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인지-운동 메커니즘 중 일부를 활성화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내용을 듣고 이를 정신적으로 재현해낼 때 생성되는, 인지에 기반한 공간적 정신모형(Mental Model)에 반응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기 떄문에 이야기는 우리가 실제로 눈으로 보지 않은 것도 볼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를 마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속임수가 들어있다. 즉 이야기는 우리 뇌를 새롭게 조립한다는 것이다. 에모리 대학교의 그레고리 번스 연구진은 소설을 읽으면 휴식 상태의 뇌 연결성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 즉 서로 다른 뇌 영역 사이를 결합하는 능력이 생긴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뇌영역의 연결성이 증가했다. 이와 같은 뇌 활동은 피험자들이 뇌 스캔 시점에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증가했다. 마치 뇌가 환영을 상상하거나 상상 근육통을 보이는 것 같았다. 또한 뇌의 감각 운동 영여긔 연결성도 증가했다. 이 영역의 신경은 신체 감각 표현과 관련이 있다. 연구진 대표 그레고리 번스는 " 이 영여게서 연결성이 증가한 것은 놀라운 결과였다. 이는 독자가 책을 읽을 때 주인공의 몸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 설명한다. 그는 "이야기 - 특히 극적 전개가 강력한 이야기 - 를 읽으면 적어도 며칠 동안 뇌 네트워크가 새롭게 구성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독서는 "독자에게 사회 결속을 강화하는 감정을 열어준다. 개인은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로 부터 분리되고, '자비롭고 선한 행위'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받는다" 이처럼 소설은 서사적 동일화와 공감의 새로운 차원이다.




뇌와 창의력 연구소(brain and creativity institute)의 신경학자 조나스 카플란은 자기공명영상장치를 사용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모순되는 정보 - 예를 들면 미국의 총기 규제법이나 군비 지출에 관한 정보 - 를 접하게 했다. 그 결과 뇌 영역 중 특히 편도체가 반응한다는 사실이 MRI 이미지에 나타났다. 아몬드 모양의 이 뇌 부위는 두려움을 제어하고 우리가 심각한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스스로 만든 이야기와 상반되는 정보는 현재 나의 뇌에서 위험하게 느껴진다. 마치 과거 우리 선조들이 검치 호랑이가 달려들 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때 편도체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도 활성화 된다. 이 뇌 영역은 명상이나 공상할 때 활성과 되며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즉 우리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생각할 때 사용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매우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섹슈얼리티와 사랑은 우리 눈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수천 년 된 프로그램과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한 프로그램과 내러티브는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고 우리의 이야기의 가장 깊은 층까지 엮여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라는 이야기]



우리는 허구 시나리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기후 위기에 대해 들을 때 훨씬 더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는 잘못이 있는 사람을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으면 - 반대로 언제나 개인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 자신을 등장인물과 유쾌하게 동일화하지 못한다.


~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것, 또는 상황을 그냥 지속시키는 무지함이다. 발터 벤야민은 "상황이 '그렇게 계속' 지속된다는 사실이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기후 위기를 파악 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만든 것으로 집단적이며, 악당이나 범죄 조직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인 주도권에 기인한다.




생태와 경제는 서로 잘못된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 첫째는 경쟁 마스터 플롯이 갈등을 더 직관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며, 둘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비용 - 편익을 계산하는 것이 인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석유 분야와 같은 화석 연료 경제 부분이 가져올 단기적 손실이 큰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도록 묘사되고, 우리가 세상을 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미래를 이상할 정도로 축소한다.



기후보호와 관련하여 책임 내러티브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적용되는 이유가 여기에서 또한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우리는 우리도 문제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고 인식하지만 책임을 질만큼 충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기후 위기는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서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미국의 생태철학자 티모시 모튼(timothy morton)은 기후위기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넘어서서 우리가 기후위기를 더 이상 정신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형이상학적 의미로만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온도계나 기상도를 가리키며 '저게 지구 온난화야!'라고 말할 수 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튼은 지구 온난화 현상을 독자적인 문제라고 정의하며 이를 '초객체 hyperopject'라고 부른다. 우리 자신도 그 일부이기 떄문에 개별적인 측면만 이해할 수 있다.



[세계 끝의 버섯 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투자 자원으로 만들어 부의 축적을 이룬 역사. 이러한 역사는 투자자가 사람과 사물 모두에게 소외, 즉 삶의 얽힘이 아무런 문제가 됮 않다는 듯이 홀로 설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소외를 통해 사람과 사물은 유동 자산이 된다. 소외는 삶의 공간의 얽힘을 비켜간다.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은 2020년 4월 "기후위기가 전쟁이라면 팬더믹은 총알이다."라고 말했다.



시몬 베유Simone weil는 자신의 에세이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 일리아스의 주제가 힘이라고 말했다. "힘은 힘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사물로 만든다. 힘은 가치 없이 파괴하듯이 힘을 갖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가치 없이 도취시킨다." 오늘날 사람들은 힘에 도취하여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생활 토대를 파괴하고 있따. 그 결과 풍경이 파괴되고, 더 심각한 문제는 복잡한 생태계에 끝없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결말을 오랫동안 감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자 볼프람 아일렌베르거가 말한 ' 영원의 비용Ewig keitko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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