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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my Mar 23. 2022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이 부럽던 날들

워킹맘, 장렬히 전사하다

2021 9 , 유치원 셔틀에 아이를 간신히 태워 보내고 출근하는 ,  눈물이 흘렀다. 벌써 사흘째였던가, 마음은 자꾸 '엄마, 오빠만 도와주지 말고 이젠 나도  도와줘'하고 외쳤다. 두통은 만성이 되어가고, 어떤 것에도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상태로 늦봄과 여름을 보냈으니, 아마  가을 초입에는 어떤 한계에 다다랐던  아닐까 싶다. '이렇게는  이상  살겠다.'


그즈음의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삶의 두 영역, 일과 육아에서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몸에 익어 있는 방식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했으나, 나는 이미 지쳐있었고, 쉽게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좀 더 리더십이 있었다면, 내가 좀 더 세심했다면, 내가 좀 사람들을 덜 신경 썼다면, 내가 좀 덜 완벽주의였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마음이 지옥은 아니었을 거야, 하고. 가장 나를 힘들게 한 생각은, 나의 아이가 이런 나를 닮아 나처럼 자라서, 훗날 결코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내 삶이 이리 버겁기만 한 상황에서, '그래도 삶에는 좋은 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도무지 아이에게 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잠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아이가 겪을 힘든 일들만 떠올라 안쓰럽고, 그런 삶을 준 데 기여했다는 사실에 미안해 눈물이 차오르곤 했다.


일의 영역에서는 사실 어떤 가시적인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역할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주어진 일, 또는 상사가 시키는 일을 성실히 하는 가운데 약간의 아이디어를 더하기만 하면 충분한 몫을 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팀장이라는 명칭이 주어지고, 내 일만이 아닌 팀과 부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며 항상 좀 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역할을 요구받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역할이 내가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열심이 일 자체보다는,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또 듣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마음에 고통이 쌓여갔다. 그 과정에서 특히 팀원들을 인간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과 매일 대면하고 그들의 안녕을 살피게 되는 것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이런 스트레스를 퇴근과 함께 회사 서랍에 넣고 잠글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못 되었다. 


다소 소극적인 기질을 가진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케어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선택한, 교사 대 학생 비율이 일반 유치원보다는 적은 영어유치원. 아이가 원에서 말을 하지 않고, 종종 친구들을 때리고 공격하는 행동으로 표현한다는 선생님의 피드백이 빈번했다. 회사 복도 한켠에서 그런 전화를 받고 있노라면, 나는 꼭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가 지금 어떤 심리상태인지도 모르고 회사에 가 있는 엄마'.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결코 없는데도, 통화 중 선생님이 짧은 탄식을 내뱉고 잠시 침묵하는 그 사이에, 나는 너무 괴로웠다. 퇴근해서도, 하원 도우미 이모님으로부터 듣는 아이의 하루 이야기가 마음을 힘들게 했다. 아이가 동네 친구를 종종 때린다, 밖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어서 곤란했다, 는 등의 이야기들... 회사 스트레스로 이미 무거워져 있던 내 마음은, 이런 이야기에 바닥을 모르고 내려앉았다. 


2021년 봄 이후는 거의 이런 날들의 반복으로 기억된다. 가을 초입 그 당시에는 그 힘듦의 정도가 특히 더 심했다. 내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마음에 스며들었으니, 확실히 우울증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나와 다른 면, 그래서 나처럼 우울증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그 상황이 부러웠다.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정서적 안정감도 줄 수 있는 친정엄마가 곁에 있어 늘 도움받을 수 있는 친구, 아이의 성격이 쾌활해서 영어유치원 적응도 문제없는 동네 아이, 프리랜서라 아이의 등하원을 직접 하며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세심히 돕는 동네 친구엄마... 심지어 어떨 때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상상의 사람들을 만들어 부러워하기도 했다. 일에 있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업무 관련 스트레스는 거의 받지 않는 어떤 전문가, 이런저런 일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고 차라리 남 탓을 해서 정신적으로는 별로 안 힘들어하는 성격을 가진 어떤 사람...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동네 친구의 얼굴에 작은 상처를 내는 바람에, 그 아이 엄마에게 사과하며 대화하다, 아이에 관한 진지한 조언까지 듣게 된 일이 있었다. 아이에게 지금 엄마가 필요한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순간, 내 아이를 그동안 정서적으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한없이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쉽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돌아보면, 이 사건이 내가 이대로 계속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굳히고 휴직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주어진 나의 상황(아이와 나의 '성격(기질)'이라는 조건도 포함)에서, 나는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잘 잡기에는 부족한 역량을 가진 사람임을 처절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전쟁 같던 삶터에서, 워킹맘으로서의 나는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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