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일상
어릴 적에 나는 막연히 나의 미래를 상상해볼 때면, '아이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늘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덧붙였던 이유는 '아이를 키워봐야 내가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성숙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어떤 경위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바램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 위인의 삶이나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그런 류의 이야기들 속에 거의 빠지지 않는 성장의 서사에 깊이 감동했기 때문 아닐까?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성장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늘 멋있다, 닮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다. 즉, 나의 성숙의 과정에 육아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낳아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지금, 그 바램은 과연 현실이 되고 있는가? 처절하게도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다만, 그 성숙의 과정이 이토록 괴로움을 동반할 것이라고는 미처 가늠하지 못했다. 아이가 사회성 발달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전문가를 찾아보고 여러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 자연히 나의 경험들을 돌아보게 되는데, 이 과정이 종종 꽤 힘들었다. 다행인 것은, 힘들고 괴롭긴 해도 제대로 배우고 체화해간다면 나의 남은 삶은 훨씬 편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내 아이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은 '공감'이라고 했다. 아이의 고집스러운, 때로는 과격한 행동 그 자체를 교정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그 행동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읽어주는 것. '너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구나, 그럴 수 있겠다' 해주는 것. 사실 이 해결책을 안 지는 꽤 오래 되었고, 일상 속에서 그렇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이의 최초의 문제행동이 좀 잦아들면서 어느 순간부터 다시 내가 행동 교정에 초점을 맞춰오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서, 괴로운 깨달음의 순간이 또 찾아왔다.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여전히 알지만, 내가 내 삶을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에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나의 자연스러운 선택은 해야 하는 것, 옳은 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 무언가를 잘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있었던 나는, 내가 어떤 상황 속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서툴렀고, 대부분의 타인도 나와 같은 상황 속에서 나와 같이 느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 한해서만 그감정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식이었다. 나조차 나의 감정을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불편한 감정은 모른척하거나 억누르며 지내는 게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괜찮은 척 버티고 버텨보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더이상 버틸 수 없는 늪과 같은 시간에 빠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온 내가 '공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까.
어젯밤, 지나영 교수님의 <본질육아> 오픈채팅 방에서 오가는 톡을 보다 나와 비슷한 고민 끝에 답을 얻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타인이 어떻게 얘기하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감정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아이에게도 아이의 감정을 온전히 공감해주고 네가 느끼는 게 맞다고 해 줄 때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얘기한다. 이걸 본 순간, 내가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공감'이라는 게 사실은 이거였구나, 싶었다. 기계적으로 마음을 읽어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느껴도 되고, 그게 옳다는 마음을 전해지게 하는 것이 '공감'의 핵심인 것이다. 이걸 깨달으면서, 그런 공감을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한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고, 스스로를 외롭게 한 내가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쏟아졌다.
모든 감정은 옳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기에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서는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그러니 설사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될지라도 그 감정도 옳은 것이고, 그럴 수 있는 것이니 스스로를 외롭게 가두지 말자. 나,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언제라도 해줘야할 말이다. 이렇게 또 한발짝 성장의 방향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