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가수에 빠진 엄마를 보는 딸의 마음

양가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by Sammy

70대 초반인 엄마가 나보다 서너살 어린 트롯가수에 빠졌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트롯 광풍(?)이 몇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것, 임영웅 등 유명한 트롯 가수의 콘서트는 웬만한 아이돌 못지 않게 티켓팅이 어렵다는 것 등등은 뉴스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엄마의 동생인 이모가 이미 한 가수에 열정을 쏟는 여러 일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전해주곤 하던 엄마였는데, 이번에는 바로 그 우리 엄마를 사로 잡은 남자 가수가 생긴 것이다. 이제 엄마는 트롯 가수에 빠진 이모의 행동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듣고는 반가웠다. 엄마의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생기다니 너무 잘됐다, 싶었다. 다른 지역에 살며 자주 연락도 못해서 맘 한켠에 엄마가 잘 지내는지 우려되는 마음이 있어왔기에, 엄마를 즐겁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찾아 듣고 영상을 챙겨 보고 콘서트에 가는 정도라면야, 나 역시 10대 시절 좋아하던 가수가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열정은 그 이상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 가수는, 팬미팅과 각종 모임을 자주 개최하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그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현재 거주 중인 지역을 벗어나기도 하는 적극성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느 때에는 아빠에게 다른 계모임이라고 둘러대놓고서 그 가수가 오는 행사에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행사에서 좋아하는 그 가수와 사진도 찍고 재밌게 어울린 이야기들을, 엄마는 신나게 내게 전해주곤 했다. 딸이라고 믿고 하는 얘기였을테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듣고 있기가 너무 어려웠다. 엄마의 새로운 모습에 응원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급기야 어느 날 통화에서는, 질투하지 말라는 엄마의 농담에 진지한 내 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준 적 없는데 무슨 질투를 하겠냐"라고. 울컥 복받치는 감정에 흔들리는 내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대충 얼버무리면서 간신히 통화를 마무리 하고서야, 나는 마음껏 울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을 종종 떠올린다. 나의 어떤 환경이, 엄마와 아빠의 어떤 말과 행동이 이토록 나의 행복에 기여하지 못하는 성격의 한 부분(불안, 완벽주의, 눈치보기 등등)을 형성한 것인지, 애써 원인을 찾곤 한다. 언제나 떠오르는 장면은 아빠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엄마의 지적, 이어지는 불화와 다툼,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엄마가 아빠를 떠나 집을 나가지 않게 할 수 있을지를 고심하는 어린 여자 아이인 나'이다. 다행히 나는 학교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좋은 성적표를 엄마에게 가져다 주었고,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에도 입학하였다. 엄마는 기특해했던 것 같았고, 집을 나가지도 않았다. 나는 아마도, 아빠가 아니라면 나라도 엄마를 뿌듯하게 하는 존재가 되어서 엄마를 기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로부터 보호와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이었으리라.


엄마는 대체로 무뚝뚝한 편에 가까웠고, 감정 표현을 살갑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 방황하고 좌절한 20대 중반, 무기력함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던 그 시기에, 일찍이 떠났던 고향집에 돌아와 얹혀 살던 두 계절 동안, 엄마가 나에게 격려다운 격려를 해 준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엄마의 무표정한, 또는 약간 화가 난 듯한, 아니면 실망한 듯한 얼굴만 떠오른다. 그동안 자랑스러웠을 딸이 이렇게 실망을 안겨드리게 되다니, 나로서도 죄송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자기혐오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건대 그때 내가 받았으면 좋았을 것은, 위로라고 생각한다. "이제와서 어떡할래"라는 건조하고 무서운 그 말이 아니라, 괜찮다고,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고, 마음 편히 좀 쉬라고 해 주는 정성스러운 따뜻한 말.


지금까지 이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엄마는 그런 종류의 말을 내게 해준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쑥쓰럽거나 아님 익숙치 않아서 하지 못할 뿐이지, 마음 속으로는 나를 그래도 걱정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엄마가 한 트롯가수에게 보내는 미소와 응원을 바라보자니, 엄마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 있었던 나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아니 내 생을 통틀어 보아도 나에게는 준 적 없는 그런 미소와 응원을, 이 낯선 트롯가수에게는 어떻게 줄 수 있는 것인가? 결국 그 '미소와 응원의 부재'가 나에 대한 '사랑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말아서, 내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감정을 좀 추스르고, 생각한다. 저 섣부른 결론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엄마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내가 힘들 때 엄마의 삶도 팍팍했고, 갱년기를 지나고 있었고, 엄마도 그런 딸을 처음 봐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랐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트롯가수는 엄마에게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주는 존재이지 어떤 의무감이나 책임을 부과하지 않기에 엄마가 마음 편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또 이해할 수 있다. 엄마의 그간 고생많았던 인생의 말년에 새로운 활력을 선사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고 그것을 엄마가 알았으면 싶지만, 이건 엄마가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나도 괜찮다"는 감각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가치를 불안해 하는 생각의 반복이 스스로를 너무도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감각을 나의 엄마로부터는 얻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나의 남편과 아이와의 시간 사이사이에서 이미 얻고 있음을 생각한다. 그런 순간들에 감사하고,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감각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의 아이가, 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절대로! 있는 그대로, 나의 아이라는 이미 완성된 그 사실만으로 언제나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그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감각을 서로 다정하게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긴 생각의 끝에서야 가닿은 생각을, 트롯가수에 빠진 나의 엄마에게도 보내본다.

"엄마도 있는 그대로 괜찮으니, 행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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