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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Oct 18. 2020

드디어 악바리가 되었다

끝 힘이 약하던 내가 악바리 같다는 말을 들었다.


악바리. 근성.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 예전부터 성공한 사람들이나 자기 계발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요소였다. 책과 여러 매체에서 악바리 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해왔고 나는 그것을 쉽게 동경했다. 왜냐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었고, 두 번째로 실제로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을 벌이는 것에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고 빠르게 실행했지만 끝까지 이어지는 일들은 매우 적었다. 잠깐의 흥미는 잠깐의 실행 후 사그라들었고 많은 취미용품이나 돈을 들여 산 물건들만 순간의 열정을 증명하는 단서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조차 내게 끝까지 하는 힘이 약하다고 했었고, 나 역시도 동의하며 그런 사실에 퍽 아쉬워했었다. (물론 잠깐의 탐색 역시 즐거웠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지만.)


이리저리 시간이 흐르고 시간에 맞춰 살다 보니 악바리 근성에 대해 고찰할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저 주어진 것에 충실히 살아내기도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하던 중에 선생님에게서 귀를 의심할만한 소리를 들었다.


"이야, 회원님 악바리 근성이 있으시네요. 멋져 멋져."




다시 되돌아보자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악바리 근성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주어진 것에 충실하되 돌아오지 않는 현재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워커홀릭보다 워라밸을 아주 강력하게 추구하며, 호기심이 동하는 것은 서둘러해 보지만 길게 취미생활로 이어진 것은 거의 없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여러 취미용품만 덩그러니 남아있는데, 제과용품, 재봉틀, 코 바느질 용품 등등이 그 예이고 잠깐 배웠던 것들도 가야금, 한복 제작, 기타, 드럼, 수영, 요가 등 파편화되어 잘한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영 해본 적 없다 말하기도 뭐한 것들이 나의 특이한 특징으로 남아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헬스에서 PT 선생님의 그런 말은 정말 신기하고도 의문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악바리 근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말을 들으니 얼떨떨한 감각이 먼저 들었다.


상황은 이렇다. 나는 약 2개월 전부터 헬스를 시작했는데 운동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초보자였기에 혼자 운동할 정도의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비싼 PT를 함께 등록했다. 첫 20회 세션을 다 채우는 동안 근육을 고정시키고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험난한 근육통과 약간의 체중감럄을 경험하면서 조금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추가 등록을 했다.


미칠 듯이 힘든 시간은 아니었다. 적당히 운동하고 쉬기도 했고, 차차 운동 초기보다는 할 수 있는 횟수와 중량이 늘며 운동시간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 몸에 오롯이 집중하며 운동을 하는 경험은 꽤 즐거웠고 흠뻑 땀 흘리고 뽀송하게 샤워한 후는 뿌듯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 수 있는 기분이 되기도 했다.


그런 수업 중 마지막 운동으로 레그 레이즈를 20회 3세트로 하게 되었는데(팔을 고정시키고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복부운동이다. 아주 힘들다.) 마지막 세트의 13번째 레그 레이즈를 하는 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배는 아프고, 몸을 지탱하는 팔과 어깨에 힘이 가득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 다리를 땅에 내려놓고 싶지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20번 다 채울 수 있는데! 마지막 운동인데! 나는 이 꽉 깨물고 결국 20번을 다 채웠고 선생님이 그때 감탄하며 '그 말'을 내뱉었다. 


"이야, 회원님 악바리 근성이 있으시네요. 멋져 멋져."


그토록 되고 싶던 악바리가 된 순간. 기쁘기도 하지만 얼떨떨한 마음이 더 크던 그때. 이런 게, 악바리인가? 같은 미묘한 생각이 차오르고 거 참 신기하네 하면서 샤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에도 악바리 같다는 그 칭찬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나는 악바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악바리 근성이 있다니.

악바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렸을 때는 너무 고통스럽더라도 그냥 무조건 참고하는 게 악바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악바리 같다는 말을 들어보니 반 정도는 틀린 생각이었다. 


악바리는 확신이 있을 때 된다.


너무 힘들지만, 고통스럽지만 내가 잠깐 참았을 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끝과 함께 내가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야 악바리가 될 수 있었다.

13번째의 레그 레이즈 때 너무 힘들었지만, 향상된 운동 경험을 느끼며 왠지 지금 한번 참으면 끝까지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희망과 긍정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감내하게 하고 끝끝내 못할 것 같던 목표에 도달하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또 확신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확신은 축적된 앎의 믿음에서 나온다.


성장해왔다는 믿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이 믿음의 주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성장'이기 때문에 성장에 대한 믿음이 동력이 된 것일 뿐이다. 20회 이상의 수업을 들으면서 미약하게나마 성장했던 운동능력을 나는 믿을 수 있었다. 운동 능력이 커졌으니, 예전에 못하던 3세트를 이번에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오늘이 그 최대치를 한번 갱신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던 순간을 참고 끝까지 횟수를 채웠고, 그렇게 타인이 인정하는 악바리가 되었다.




오랫동안 되고 싶던 '악바리'이지만 막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고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악바리 그 자체보다 어떻게 하면 끝까지 하는 힘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어 더욱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다들 악바리가 되라고만 하고 되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는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악바리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충분히 배우거나 경험해야 하고, 그 앎에 대해 믿음이 생길 정도로 축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확신은 계속해서 나아갈 강력한 빌미를 제공한다. 한번 더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한걸음 나아가고 또 한걸음 나아가다보면 결국 일정한 끝에 다다르게 된다. 물론, 그 일정한 끝이라는 목표는 근성 있는 사람에게 이미 명확히 세워져 있을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어느 정도의 목표, 공부, 경험, 믿음, 확신, 반복과 성취. 이것들이 내가 악바리가 되어보면서 경험한 모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정답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악바리가 되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야 느끼지만, 악바리 근성이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니 가장 나다운 대로 나답게 살면 그만인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돌아오지 않는 오늘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 와중에 또 작은 성취 하나를 이룬 것을 칭찬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드는 밤이면 충분한 것 같다.


언제나 되고 싶었던 악바리가 어느 날 갑자기 된 날, 작은 성취를 안고 기쁘게 잠들 것 같은 밤이다.





Photo by Victor Freit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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