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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Jun 24. 2018

2018 국제 도서전 첫 날

정세랑, 최민석, 그리고 잡지의 시대

2018 국제 도서전 시이작. 일 년에 한 번이나 갈까 말까 한 코엑스에 왔다. 집 앞에 코엑스까지 한 번에 이렇게 금방 오는 버스가 있는 줄도 오늘에야 알았네.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왔다. 별 수 없다 오늘은. 전시를 대강 둘러봤다.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닌데, 정세랑 작가님의 책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창비출판사의 《이만큼 가까이》, 《피프티 피플》
민음사의 《보건교사 안은영》
은행나무의 《재인, 재욱, 재훈》
모두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제일 좋아하는 책. 

작가님의 책은 다 가지고 있는데, 《재인, 재욱, 재훈》만 도서관서 빌려 읽었던 터라, 이번 기회에 기쁘게 구매했다. 헤헤. 



지나가다 보니, B1홀에서 곧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무려 '최민석'작가님. 팬이냐고 묻는다면, 좋아하긴 하지만 읽어본 책이 거의 없어서 팬이라고 답하기는 조금 미안한 마음. 그러나 작가님의 《베를린 일기》를 정말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꽈배기의 맛》과 《꽈배기의 멋》은 진작 구매했지만(실은 중고서점에서) 아직 읽지는 않았고, 작가님과 인스타그램 친구이고 종종 검색을 해서 인터뷰도 보고 출연하신 팟캐스트도 듣는다. 미안한 마음의 팬이지만 그럼에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릴 만큼  애정이 없진 않기에. 현장 신청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오예. 



작가님께서 다이어트 중이라는 얘기를 하셨을 때 '에이 뭐, 딱 보기 좋으신대'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진으로 보니 꽤 날렵했던 작가님의 턱 선이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님의 신간이 나왔다. 《고민과 소설가》라는 제목의 표지가 예쁜. 아마도 대학 내일의 고민 상담 칼럼을 모아서 출간하신 듯. 표지에 적힌 부제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이라든지, 홍보자료의 멘트 <우리는 모두 '호모 고미니우스'>라든지. 역시 유쾌하다. 
_
본인은 강연에 사람 안 모이기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시작된 행사는 엄청 엄청 빠르게 진행되었다.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가 생활 9년 만에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가는 행사는 처음이라 현기증이 나려 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할당된 시간이 너무 짧았던거라 모두 크게 웃었다. 현장에서 받은 고민 상담까지 포함 거의 40분 내외로 마무리되었으니까.

책에 실린 여러 질문들 중 3가지를 뽑아 읽어주셨는데,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인상 깊어 옮겨 본다. 
Q : 어찌해야 좋은 어른이 될까요?
A : 어른이 된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닙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결정해야 할 것 천지입니다. 무엇을 살지, 누구에게 투표를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누구에게 화를 내고, 누구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지, 끊임없이 결정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 결정들이 쌓여 결국 생의 색깔이 정해집니다. 그렇기에 나만의 생각과 태도는 내 생의 뿌리처럼 중요합니다. 그 외에는 정말 간단합니다. 식상하겠지만 책임과 양보입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질 줄 알고, 누리고 싶지만 때로(실은 주로) 양보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소중한 견해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작가님 또한 복학한 뒤, '좋은 어른'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 현재 대학생들에게 공감을 얻는 '자기 자신만의 색을 가진 상담'을 할 수 있었으리라. 사실 누구라도 젊은이들의 고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답을 주고 싶어 한다. 꼰대면 꼰대일수록. 상담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공감을 얻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역시. 고민을 한 사람이 타인의 고민에 대해 함부로 대하지 않을 수 있겠지.



그 뒤는 사인 타임.

 


잠시 고민했다. 당분간 책은 그만 사기로 결심했으나, 나는 오늘 도서전에 왔다. 왔으니 역시 샀다. 책과 커피를 끊지 못하는 백수언제나 유지비가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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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인스타에 행사 사진을 올리셨길래 '오늘 알로하티 예뻤어요'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고마워요 ㅎ 하와이에서 샀어요(자랑) ㅋ'하고 대 댓글을 달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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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 청년이 질문했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 많은 편인데,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때때로 확신이 들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하는 일들에 확신을 가지고 나갈 수 있을까요. 작가님께서, 언뜻 보기에도 앳되어 보이는 청년에게 나이를 물었다. 
"스무 살이요"
청년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스무 살의 고민을 비하하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었다. 정말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지나치게 이른 고민이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작가님이 답하셨다. 지금 스무 살에는 확신을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성장하는 시기, 몸은 다 성장했으나 영혼이 영글어 가는 단계, 지금 보고 느끼는 걸로 세계를 넓혀 가는 시기. 자기 자신을 열어 두고 많은 것을 흡수하고 확신을 가져야 할 때에 가서 고민하면 된다, 하고 대답 해주셨다. 
그리고 본인도 34살에 소설가가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스무살 청년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질문 시간이 끝이났다.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질문하고 싶었다. 
“같은 질문을 서른 중반이 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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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답을 해주셨다 한들, 내가 확신을 갖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서른 중반도, 아니 그 이상이 되더라도 고민은 이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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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가님의 신간 《고민과 소설가》는 아직 서점에 깔리기 전, 시중에서 25일부터 구매 가능하다.





하나하나 외워뒀다가 상황에 맞게 상대에 맞게, '챡'하고 꺼내고픈 아포리즘들로 벽이 빼곡한 부스도 있었다. 출판사 나무생각.  

_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이번 도서전의 특별 기획전은 '잡지의 시대'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GARM 매거진>
'건축재료 처방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즌 1 : 01 목재/ 02 벽돌/ 03 콘크리트 
'재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즌 2 :  04 페인트/ 05 타일/ 06 바닥재 
한 시즌에 3권씩 한꺼번에 나오는데 따로 낱권도 구매 가능하다. 

GARM '감'은 순우리말로 '재료'를 뜻한다고 한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주 중에서 머무는 '주'를 중심으로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에 대해 안내서를 만들고 싶어, 그 시작으로 건축의 가장 작은 물리적인 단위인 '재료'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실제로 적용해보는 응용방법까지 한 권으로 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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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춰본 매거진 안쪽은 건알못이 봐도 참 세련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엄청 감탄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누가 이걸 얼마나 궁금해할까?’ 그러니까 적은 수요에 대해 오지랖을 부리며 걱정했다.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건축학과를 나온 학생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건축과 관련되거나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 소위 '건축인'들의 구매평이 남아 있었다. 누가 읽기는. 잘 만들어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찾아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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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한 매거진은 <프리즘 오브>
한 권에 한 편의 영화를 다루는 영화 매거진이다. 크. 독특하다. 이건 읽어보고 다시 포스팅해야지. 




어쩌다 보니 올해는, 몇 번 더 도서전에 가게 되었다. 나눠서 포스팅해야겠다. 
출판사로 참여를 한 친구가 있어서, 들러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인파에 기가 쪽 빨린 듯 피곤해졌다. 너무 오랜만이잖아. 직접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와 마주치고 관계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딱 맞춰 탄 퇴근 시간 지하철은 지옥철이었다. 지하철로 출퇴근 한 건 거의 6년 전 금천구에 있는 학교 나갈 때가 마지막이니, 퇴근 시간 지옥철도 참 오랜만이었다. 내 앞에 자리가 났다. 2초쯤 고민하고 몸을 틀어 앉으려는데, 내 오른쪽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가 정말 빛의 속도로 뒤 쪽으로 돌아 왼쪽에 생긴 틈으로 끼어들어앉으셨다. 글로 설명이 되려나. 하. 자리에 앉더니, "아니 안 앉는 줄 알고" 하신다. 하. 그러면서 안 일어나는 건 뭐야. 지하철이 오랜만이니, 이 치열한 자리 뺏기도  참 오랜만이다. 잘 앉고 잘 사세요. 속으로 말하고 자리를 떴다. 



아직 해지기 전, 동네 골목에서 발견한 사랑스러움. "행복은 예쁜 색감이야!"를 외치며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 것에서나 아름다움을 발견해 대는 것이 그동안의 내 삶을 꽤 풍성하게 해왔겠구나, 좀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좀 감사하면서 살자.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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